‘죽고 난 뒤의 팬티’라는 시가 있다. 오규원 시인 작품으로, 가벼운 교통사고 뒤 겁쟁이가 됐는데 어느날 타고 있는 자동차 속도가 빨라지자 자신이 속옷을 언제 갈아입었는지 확인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시인은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라고 했다. 

이 시를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은 지 석달이 흐른 집, 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고추냉이가 든 초밥을 삼킬 때처럼’ 역한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다. 모든 틈을 청테이프 등으로 막고 착화탄을 피운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의 집이다. 그가 화장실 바닥에 흩어진 착화탄 재를 쓸어 담으며 한 생각, ‘화로 근처에 있어야 할 점화장치가 없다.’

현관문 옆에 있는 분리수거함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불을 피운 금속 토치램프·부탄가스 캔은 철 모으는 칸에, 화로 포장지와 택배 상자는 납작하게 접어 종이 칸에, 부탄가스 캔의 빨간 마개는 플라스틱 칸에 잘 담겨있던 것이다. 그는 놀랐다. 어떻게 자살 전에 분리수거까지 한 걸까. 

그는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며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자신의 몸을 비롯해 주변을 치우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으면서도 자신과 자신의 흔적을 치울 사람을 걱정하고 배려한다. 

산다는 건 몸에 난 구멍을 부여잡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죽으면 산 사람이 잠을 자듯 몸이 유지되지 않는다. 심혈관계이나 허파 질환으로 사망하면 2~3일 뒤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나오고,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나면 온갖 오물을 배설해놓는다고 한다. 죽으면 신체에서 박테리아가 번식해 장기가 부풀어 오르고 팽창하다 복부가 터져 온갖 액체가 몸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고독사는 ‘겨우’ 죽고 난 뒤의 팬티 정도를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 죽은 자의 집 청소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분리수거를 한 뒤 죽은 이의 이야기는 특수청소 서비스회사 ‘하드웍스’를 설립한 김완 작가가 쓴 책 ‘죽은 자의 집 청소-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에 나온다. 특수청소는 일반청소와 다르다. 일반청소는 세법상 하나의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특수청소는 아직 그렇지 않다. 다만 대한민국 ‘직종별 직업사전’에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2018년에 등록됐다. 그만큼 생소한 직업군이다. 

글쓰는 이들은 타인의 삶을 내밀하게 보고 싶어한다. 친분을 쌓고 심층 인터뷰도 하고 심지어 같이 생활해보기도 한다. 이를 ‘대면 취재’라고 한다면 특수청소는 ‘비대면 취재’다. 죽고 떠난 당사자를 만나진 않지만 그가 남긴 물건과 흔적은 인생을 자세하게 말해준다. 김 작가는 저서에서 특수청소를 하러 가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죽음과 고독, 가난과 삶에 대해 썼다

특수청소는 혼자 사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방치된 채 부패하던 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다반사다. 저자는 주로 가난한 이들이 혼자 살다 고독사하지, 호화주택에 살다가 금은보화에 둘러싸여 혼자 세상을 떠난 이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고독사 선진국인 일본에선 고독이라는 감정 판단이 들어간 어휘인 고독사(孤獨死) 대신 고립사(孤立死)를 쓴다. 

김 작가는 각 사례마다 집주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그들에게 말을 걸듯, 혹은 현장에 다녀온 뒤 자신의 일기를 쓰듯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후기를 남긴다. 우편함에 쌓인 각종 독촉장과 미납고지서를 보고 그의 가난을 짐작한 뒤 고인의 물건들이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듯한 모습이다. 이미 끊긴 수도나 전기 탓에 임시로 불을 켜 집청소에 돌입하는 슬픈 이야기도 등장한다. 

▲ 김완 작가. 사진=김영사 유튜브 갈무리
▲ 김완 작가. 사진=김영사 유튜브 갈무리

저자는 꼭 시신이 부패한 고독사 현장만을 가진 않는다.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만들어놓은 집이나 오줌을 페트병 수천개에 담아 집 안에 진열해 놓은 집도 있다. 악취 탓에 방진마스크를 벗고 방독마스크로 바꿔 쓴 뒤 샴페인처럼 ‘펑’하는 소리로 뚜껑이 튀어 오르면 오줌을 피하지 못한 채 뒤집어 쓰기도 한단다. 죽은 자의 집을 치우는 것보다 더 괴롭다는 죽은 고양이를 거두러 간 사연. 특수청소를 소개한 자신의 블로그 글을 보고 ‘자살예고자(?)’가 청소비용 견적을 묻는 전화통화나 범죄를 저지르고 현장을 깨끗하게 치워달라는 요구 등 특수청소 종사자의 업무 범위는 크고도 넓다. 

지난 8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는 특수청소를 하는 김새별씨가 출연했다. 김씨는 경찰 등의 요청으로 사망사건 현장을 청소하다 이때 들이닥친 유족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사례, 고인의 귀금속 등 소위 ‘돈 될만한 물건’부터 찾아간 사건 등을 전했다. 

특수청소에 종사하는 이들이 전하는 ‘사망 현장의 증언’을 듣다 보면 ‘누구나 죽게 되니 하루를 소중하게 살자’는 수준의 다짐이 아닌 죽음을 둘러싼 남겨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인간은 죽고 나서 자신의 몸뚱이 하나 스스로 치울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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