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주민들이 직접 발의·실행한 주민투표 결과를 노원구가 수용하기로 했다. 주민투표 결과, 쓰고 남은 세금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세금 페이백’ 정책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노원구가 이를 시행할 예정이다. 주민자치·직접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조직위)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세금 페이백 현실화를 위해 2021년 상반기에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를 노원구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순세계잉여금 결산 후 조례가 만들어지면 예산 범위 내에서 보편적 지원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할 전망이다. 

노원주민들은 지난해부터 ‘예산과 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주민이 가져야 한다는 원칙’하에 ‘직접정치 운동’을 시작하고 조직위를 꾸렸다. 조직위는 약 1만개의 주민들 요구안을 모은 뒤 지난해 10월 노원주민대회를 열어 10대 요구안과 주민직접정치 선언문을 발표했다. 주민 7000여명은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해고한다’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입법을 요구했다. 

▲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올해들어 1호선 월계역 개편 후 배차간격 문제를 제기해 코레일이 오전 시간대 배차를 추가하는 조치를 취했고, 마스크 대란 주민들이 마스크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데 어려움을 토로하자 정보력이 없는 주민이나 이동·줄서기가 어려운 주민들도 차별없이 마스크를 지급받았다. 노원구의 마스크 배부는 전국 최초 사례였다. 

이후 조직위는 지난해 노원구 예산을 분석해 쓰지 않은 ‘순세계잉여금’이 1042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동네주민모임, 노조, 정당 분회모임 등을 찾아 노원구 재정을 검토해 노원구 1호 복지안을 무엇으로 정할지 의견을 모았다. 

1만7500여명의 노원구 주민이 주민투표에 참여했는데 이중 가장 많은 주민(7647명)이 전년도에 남은 세금을 다음해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세금 페이백’ 제도를 선택했다. 조직위는 “코로나19로 주민 생활고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주민이 낸 세금은 행정서비스로든 현금으로든 100% 주민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원칙을 주민 스스로 천명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 노원주민투표 결과. 자료=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 노원주민투표 결과. 자료=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세금 페이백’ 다음으로는 4개의 정책이 비슷한 표를 얻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 및 전기료 지원’이 2707표(15.43%)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2460표(14.02%)를 얻은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고용보험료 지급’, 2327표(13.26%)를 얻은 ‘장애인과 자활센터 노동자에 최저임금 준수임금 지급’, 2,288표(13.04%)를 얻은 ‘독감 무료 예방접종 모든 구민으로 확대’ 등이 뒤를 이었다. 

조직위에 따르면 오 구청장은 내년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를 구의회에 제출한 뒤 “25개 자치구 공조가 필요하니 구청장협의회를 설득하고 합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모든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 및 전기료 지원’에 대해서는 “이미 구청 예산에 반영했다”며 “아파트 지원 사업 추진 시 신청사업 선정기준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 항목을 추가하는 등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3위를 차지한 ‘모든 일하는 사람 고용보험 지원’은 구청에 고용보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구청과 조직위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현황을 조사할 예정이다. 오 구청장은 “60% 가까이 가입률을 올리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장애인, 자활센터 노동자에 최저임금법 준수 임금 지급’에 대해 오 구청장은 “그 취지와 정신을 이해한다”며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모든 노원구민 독감 무료 예방접종’ 이행에는 119억이 추가로 필요해 “‘세금 페이백’ 정책과 연계해 점차 늘리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최나영 조직위원장은 “오 구청장은 1만7000주민의 의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재차 이야기했다”며 “조직위도 구청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진행 상황 얘기 나누고 주민들에게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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