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책임은 미디어에 있다. 기사를 쓴 기자들이 설리에게 직접 악플을 달지 않았지만 설리에게 악플을 달라고 판을 깔아주는 기사를 써왔다.”(이소영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방통심의위 방송소위·소위원장 허미숙)는 25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MBC ‘다큐플렉스’가 방송심의 규정 ‘인권 보호’, ‘자살묘사’ 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지난 9월10일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 ‘설리’ 편의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진=MBC 홈페이지.
▲지난 9월10일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 ‘설리’ 편의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진=MBC 홈페이지.

MBC 다큐플렉스는 지난 9월10일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편을 방송하면서 고 설리의 모친 김수정씨를 포함해 설리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방송 내용 중 설리가 가수 최자와의 공개 연애 후 이를 반대했던 김씨와 관계가 틀어졌고, 이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취지의 내용 등이 논란을 불렀다. 최자가 가해자인 것처럼 방송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설리는 죽어서도 이용 당해야 하느냐.’ ‘설리를 죽인 칼날을 최자에게 다시 휘두른다.’ ‘담당 PD는 최자가 불편했나.’ 방송 이후 MBC 다큐플렉스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이다.

민원인들은 “설리 죽음은 악성 댓글로 인한 것임에도 최자와의 연애 및 이별로 인해 설리가 변했고, 이것이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으며 최자에게 고맙다고 발언한 설리 어머니 인터뷰는 편집하는 등 설리의 자살 원인이 전 연인인 최자에게 있는 것처럼 왜곡해 최자가 다시 악성 댓글의 대상이 되고 명예가 훼손됐다”며 심의 민원을 제기했다.

이날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김진만 MBC 시사교양2부장은 “최자를 비난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다”라면서도 “대중들의 비판은 최자와 사귀면서 시작됐다. 그 부분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진만 부장은 “설리는 대중들에 의해 난도질당한 측면이 있다. 그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는데 기획 의도대로 반응이 오지 않았다. 또 60분 분량 중 최자와 관련된 분량은 6분 정도”라고 해명했다.

이소영 위원은 “MBC가 뭐길래 저들(설리와 최자, 설리의 어머니 등)의 관계를 단정적으로 정리하고 방송하느냐”며 “조심스럽고 예민해야 하는데 굉장히 거칠게 다뤘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대중들에게) 설리는 여동생 같고 단정하고 착한, 환상 속 인물인데 성적인 의미를 담은 예명을 쓴 성인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현실의 여인’이 됐다. 그 이후 (설리에 대한) 비난이 지나친 건 맞다”며 “하지만 MBC가 깊이 있는 분석 없이 부모가 반대하는 연애를 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김 부장은 “굉장히 좋은 지적”이라며 “방송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있다. 시사 다큐였다면 더 반론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는 휴먼다큐다.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 중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나와 이야기하는 다큐다. 깊이 있는 분석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심의위원 4인(허미숙 소위원장, 황성욱 상임위원, 강진숙·이소영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를,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주장했다.

강진숙 위원은 “여성 아이돌을 둘러싼 악플 문제 등을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는 고무적이지만, 방송 중 자극적 언론 기사를 부각해 시청자들이 황색 저널리즘과 악플 문제점을 간과할 우려가 있었다”고 짚었다. 

박상수 위원도 “악성 댓글 폐해는 방송사가 충분히 다룰 수 있지만, 당사자들 외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은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소영 위원은 “설리라는 인물의 죽음에 대해 여러 분석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과 미디어가 여성 연예인에게 보낸 이중적 시선들은 문제다. 굉장히 공격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표출됐던 사례였다고 생각한다”라며 “MBC는 주변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최자 입장을 반영하려고 충분하게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사안을 단순하게 다루면서 문제의식이 희석됐다”며 “시청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방송”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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