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청구·직무배제를 조치하자 야당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법무부의 권한으로 검사징계위원회를 여는 ‘기술적’ 문제에 불과한데 왜 대통령까지 나서냐는 의견도 있지만 검찰총장의 직무배제가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대통령에게 입장을 묻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장관 시절부터 법무부와 검찰 간 충돌이 길어지면서 대통령에게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전혀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 등을 지내며 과거 검찰개혁 과정을 본 경험에서 비롯한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여정부 임기 2년 차인 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가 벌어졌고 4월 총선에서 여당(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정부·여당에 힘이 실렸다. 당시 정부는 검찰개혁 과제로 수사권·기소권 분리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을 핵심 제도적 과제로 내걸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 법무부의 문민화, 검찰의 기수문화 파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을 함께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과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었다. 

▲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004년 6월은 지금처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신문지면을 도배하던 시기였다. 정부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들고 나오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차라리 내 목을 치라”며 반발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은 검찰의 힘을 빼는 조치인데 그 저의가 무엇이냐’는 검찰과 야권의 원성이 높을 때였다. 

6월16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하루 전인 15일 당시 노 대통령은 반발하는 송 총장에게 “국민들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기강 문란해지는 것 아니냐”라고 질책했다. 노 대통령은 “검찰총장 임기제는 수사권 독립을 위한 것이지 정부 정책에 발언권을 행사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송 총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누가 나가라고 했느냐”며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질타한 것인데 그 정도 얘기도 못하냐”고 논란을 수습했다. 물론 노 대통령은 강 장관에게 “검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도록 당부한다”고 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이 사건으로 검찰 내부, 특히 대검에서 검사들의 반정부 정서가 커졌다.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갈등의 주체가 법무부와 검찰이 아닌 청와대와 검찰로 치환됐다. 청와대가 검찰을 직접 비판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독립성을 말하던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 민정수석, 탄핵 때 노 대통령의 변호인을 거쳤고 해당 논란 당시 시민수석으로 청와대에 있으면서 이를 지켜봤다. 

후보시절부터 검찰개혁을 준비해 온 정치인 노무현은 임기 초반인 2003년 검찰과의 대화에 나서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여당이 허약했고 검찰의 반발도 지금보다 컸기 때문에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선봉장으로 역할했다고 볼 수 있다. 탄핵 역풍으로 대통령 지지층이 모였고 열린우리당은 이례적으로 과반의석을 얻어 정부·여당의 세가 커졌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가기강문란’ 발언 이후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에는 힘이 빠졌다. 

강금실 장관은 끝내 공수처 카드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고, 이 사건 직후 여권 내부에서 강 장관 교체설이 나왔다. 당시 뉴시스 보도를 보면 “갈등이 표면화될 때마다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 등 검찰조직을 다스려야 하는 강 장관의 조직장악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분석이 나왔다. 강 장관은 한달 만인 7월말 교체됐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 추미애 법무부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해 발언하는 순간 대립구도는 ‘법무부vs검찰’에서 ‘청와대vs검찰’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25일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직무배제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윤 총장 해임을 건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조계의 해석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공을 떠넘기는 부담을 주지 않고 추 장관이 사실상 해임과 같은 효과를 내는 조처를 취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윤 총장이 대검 국정감사에서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임기를 채우라고 했다’고 주장하거나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직무를 정지해도 전혀 코멘트를 하지 않는 이유다. ‘조국사태’ 내내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이듬해인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을 때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2004년 당시 상황을 중심으로 파악해보면 대통령이 직접 법무부에 힘을 실어주며 검찰을 제압하려 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송 총장의 측근인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정권의 칼을 들이댔고 검찰개혁은 정치인 노무현의 선의와 무관하게 청와대와 검찰의 육탄전으로 변질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쪽은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쪽은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주려 했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고 회고했다. 다른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선 “검찰을 장악하려는 시도만 버린다면 검찰 민주화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봤다”며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평했다. 

이전 정부들이 검찰 등 사정기관을 장악해왔으니 참여정부는 검찰을 장악하지 않으려 권력을 자제했다는 뜻이다. 동시에 정권이 검찰을 장악하지 않는 것만으로 검찰개혁이 성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 표현이다. 

현재 야당은 검찰개혁의 핵심과제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즉 검찰의 독립성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야당과 일부 언론에선 대통령에게 입장을 묻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추 장관의 행보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문 대통령은 당장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보다는 법무부가 검찰 인사권을 적극 행사해 검찰의 악습이나 반인권적 태도를 고치는 쪽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기에 객관적인 여건은 현재가 참여정부 때보다 낫다. 참여정부 당시 실패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을 수 있고, 여당의 의석이나 화력도 그때보다 더 세다. 추 장관도 각종 비판과 논란 속에 있지만 조 전 장관 때보다는 무난한 편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말을 아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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