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의 노예.” 언론사 경영진과 편집국 데스크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한국 언론은 포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뉴욕타임스 콘텐츠로 기억되지만 우리 종합일간지 기사는 ‘포털 기사’의 하나로 인식한다. 아무리 특정 언론사가 브랜드를 강화한다고 외쳐도 기사 유통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포털의 길목 앞에서 좌절하곤 한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솔루션 저널리즘 형태로까지 나아간 번뜩이는 콘텐츠와 공세적인 SNS 하나를 인용해 수십분 만에 뚝딱 나오는 콘텐츠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지만, 후자 콘텐츠가 포털에서 더 쉽게 눈에 보인다. 좋은 콘텐츠가 설 곳이 없다는 호소는 ‘자동 알고리즘’이라는 포털의 항변에 묻히기 일쑤다. 언론사는 포털 노출 빈도수를 높여야 광고 단가가 올라간다. 자극적 제목과 내용의 콘텐츠를 올리고, 기사가 포털에 노출되면 ‘영향력 확산 콘텐츠’라고 자위한다.

포털 노예가 된 언론계에 괴이한 모습마저 목격된다. 인터넷신문 컨설팅 전문이라고 표방한 한 회사는 포털뉴스 검색 제휴 준비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포털 제휴사로의 진입과 퇴출을 심사하는 곳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심의위원회인데 이 기구 평가 방식과 기준에 맞춰 심사에 합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대입 설명회와 비슷하게 신생 인터넷 언론들을 대상으로 포털 제휴사가 될 수 있는 ‘직행 티켓’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포털 제휴사가 되면 연간 억대의 광고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인터넷 언론사 대표는 포털 제휴사가 될 수만 있다면 심사위에 로비를 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한 언론은 통신사 지위의 포털 제휴 요건을 맞추기 위해 하루 수백 건의 비슷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포털뉴스’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 지상 목표가 돼버린 언론계의 씁쓸한 풍경이다.

▲ 포털 네이버와 다음 로고.
▲ 포털 네이버와 다음 로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통제되지 않은 시장에서 좋은 품질의 콘텐츠는 사라지고 나쁜 콘텐츠가 득세하는 악순환을 끊을 ‘묘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학계와 언론계에서 이미 검증된 좋은 콘텐츠를 포털 상위에 노출하고 포털 전송 뉴스 개수를 제한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포털이 과연 ‘가두리 안의 물고기’를 줄일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포털 횡포에 맞서겠다며 또 다른 보도 유통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있지만 포털 대항마가 되기엔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좋은 저널리즘에 대한 보상 체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포털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디지털 퍼스트를 내세워 혁신 콘텐츠를 내놓고 평가받겠다는 매체가 있고, 묵묵히 기획 기사 시리즈를 보도하고 정책 변화를 이끈 매체도 있다. 포털 제휴를 ‘상수’로 넣지 않고 자신들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 11월24일 오후 17시경 네이버뉴스 PC화면
▲ 11월24일 오후 17시경 네이버뉴스 PC화면
▲ 11월24일 오후 17시경 다음뉴스 PC화면
▲ 11월24일 오후 17시경 다음뉴스 PC화면

반면 여전히 포털 영향력을 콘텐츠 영향력으로 보는 언론이 대다수다. 최근 포털 네이버의 뉴스 카테고리별 랭킹 기사를 분석한 보도에 여러 매체가 통계를 인용해 자화자찬식 보도를 내놨다. 포털 노출 랭킹 기사가 많은 것을 두고 매체 영향력이라고 판단했다는 건데 안을 들여다보면, 나쁜 품질(가십, 베껴쓰기, 인용보도) 콘텐츠가 포털 안에서 많이 유통된 흔적이 널려 있다. 포털 안 생존 경쟁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네이버는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 빈도를 결정하는 ‘많이 본 랭킹 뉴스’를 폐지하고 독자의 직접 평가를 받아 포털 노출 빈도를 결정하는 ‘언론사별 가장 많이 본 뉴스’ 페이지를 신설했다. 언론사별 다양한 콘텐츠를 반영하고 매체 브랜드를 강화한다는 취지이지만 벌써부터 트래픽 유발을 위한 맞춤형 전략짜기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럴 바에 디지털 퍼스트니 뉴스룸 개편이니 같은 말에 숨지 말고 트래픽 유발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포털의 노예임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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