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토크쇼J는 지난 방송에서 전태일 열사를 다뤘다. 전태일을 비롯한 열사들의 노동운동으로 나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득을 얻어왔다. 그분들의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막상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가 시즌2를 마치고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부당한 계약 종료”를 당했다고 공개 글을 올린 정주현 비정규직 PD의 말이다. 정 PD는 2018년 11월 방송된 19회부터 합류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프리랜서 PD다. 

23일 정 PD가 J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KBS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사실을 J 제작진이 게시한 것. J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이 글은 더 화제였다. 정 PD는 그가 올린 글에서 “2년이 넘는 시간 J에서 제가 배운 것들은 침묵하지 말 것,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것, 약자들 편에 설 것”이었다고 했다. 

[ 관련 기사: 저널리즘 토크쇼 J 프리랜서 PD “사실상 해고 통보, KBS의 모순” ]

▲ 저널리즘토크쇼J
▲ 저널리즘토크쇼J

정 PD는 24일 미디어오늘에 “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J에서 일하면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힘겹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온 걸 봤고, 그에 비해 편안한 나의 모습을 보며 부끄럽다고 생각해왔다. 그 부채감 때문에 나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가 ‘계약해지’에 대한 공개적 글을 올린 뒤 KBS는 “표준 계약서를 사용했고 계약 위배는 아니다. 그럼에도 계약상 의무를 넘어 제작 스태프들이 개편 프로그램이나 타 프로그램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 관련 기사: 저널리즘토크쇼J, 부당 해고 주장에 “계약 위배 아냐, 의무 넘어 노력할 것” ]

J에 소속된 20여명의 비정규직 제작진들은 작가, PD, AD, 디자이너 등 각각 직군이 다르다. 일하는 장소와 각자의 계약서 내용도 다르다. 일부 제작진은 오는 12월13일 종방 전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다. 

정 PD는 KBS 입장에 대해 “방송사 입장에선 법대로 했기 때문에 부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수많은 타 제작진의 계약서를 일일이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라며 “또 KBS는 방송 특성상 개편이라는 것은 늘 있는 일이라고도 했지만, J 시즌1이 끝나고 개편이 논의됐을 시점에는 이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다 함께 새 개편 방향은 어떻게 할지 회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당시 개편 때도 일이 없는 기간이 있었지만, 스태프들은 묵묵히 시즌2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처럼 종방일 이전에 그만하겠다는 스태프들이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즌2에서 시즌3로의 개편은 달랐다. 시즌2에 이어 시즌3를 방영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개편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개편을 통보받는 상황에서 많은 스태프들이 ‘멘붕’ 상태가 됐다. 2년 동안 같이 일한 스태프에게 개편을 통보한다고 해도, 어떤 방향성 갖고 있으니까 기다려달라거나 혹 프로그램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면 아쉽게 됐다고 하든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는데 일언반구가 없었다. 부당의 기준은 양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주현 PD가 저널리즘 토크쇼 J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의 글은 삭제됐지만 현재 저널리즘 토크쇼 J 공식 카페 등에는 남아있다.
▲정주현 PD가 저널리즘 토크쇼 J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의 글은 삭제됐지만 현재 저널리즘 토크쇼 J 공식 카페 등에는 남아있다.

정 PD는 “내가 당장 억울해 죽겠다, 정규직으로 바꿔달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라며 “J를 하면서, 목숨 걸고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사안에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다들 힘든 상황인데 내가 이런 상황을 다 알고서 가만히 있는 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방송사 측에서 부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분들 생각을 바꿀 맘은 없다. 그러나 왜 이렇게까지 제작진들이 화를 내며 애정을 가진 프로그램을 그만둘까 생각해봐야 한다”며 “‘개편은 원래 그렇다’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J에는 20여명의 비정규직 제작진들이 있다. 타 방송보다 프리랜서 제작진이 많다. J가 초창기부터 유튜브 라이브를 자주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와의 소통’을 내걸었던 특성 때문이다. 뉴미디어 인력이 비정규직이나 자회사 소속으로 굳어지는 언론계의 불합리한 관행을 또 한 번 확인한 사례다. 

“J 프로그램은 뉴미디어적 특성을 중요시했다. 뉴미디어계는 정규직 제도가 안착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뉴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고, 지원자들이 많으니까 한 사람이 그만둬도, 연봉이 낮아도 악순환이 계속된다. 뛰어난 역량을 가져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KBS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영방송이다. 이 안에서도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또 다른 방송사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 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힘든 상황이지만 더 힘든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는 것 알고 있다. 우리 이야기를 통해 더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지길 바랬다.” 정PD가 J 공식 페이스북에 자기 이야기를 업로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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