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기서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부터 6년,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 청와대 앞에서는 여전히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하에 이른 날씨에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는 단식 45일을 맞았고, 참사로 아들을 잃은 ‘경빈엄마’ 전인숙씨의 1인시위도 1년을 넘겼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는 전국을 순회하는 ‘진실버스’ 두 번째 여정에 나섰다.

내달 10일이면 세월호 및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조사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기간이 종료된다. 이후 3개월 동안의 종합보고서 작성을 끝으로 모든 활동이 끝난다. 약 5개월 뒤인 내년 4월15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허위공문서작성, 증거인멸 등 혐의의 공소시효가 모두 만료된다.

김성묵씨와 전인숙씨의 농성장이 차려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각계 인사들의 기자회견이 이어지고 있다. 23일 ‘세월호 진상규명을 바라는 영화인들’은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니 이제야 말로 진실이 밝혀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또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11월2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45일째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 단식농성장. 기자회견을 마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김씨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11월2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45일째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 단식농성장. 기자회견을 마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김씨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영화인들은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로 부처에 지시해 세월호와 관련없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범정부 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직접 수사하게 해달라는 김성묵씨와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단식투쟁단’의 입장에 뜻을 같이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사’가 아닌 ‘수사’”라고 밝혔다. 성명에 육상효·임순례·정기영 감독, 문소리·설경구·엄정화·엄혜란 배우, 김윤미·심재명·최용배 영화제작자, 박광수·신철·이준동 영화제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인 252인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 날 오전에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이 자리에 대통령이 오셔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교협은 기자회견에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길거리에서 같이 밥을 굶고 농성을 하던, 바로 그 이가 그 사이 대통령이 되었다”며 “그 이가 대통령이 된 지 3년 반이 지났지만 세월호 304명의 희생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도훈 한양대 교수는 “공감과 연대가 합쳐져 촛불이 일어났고 박근혜 정권이 무너졌다. 모든 수혜를 문재인 정권이 받았다”며 “계속해서 대통령이 침묵하고 방관하면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대로 거센 촛불이 문 대통령에게 향할 것”이라 목소리 높였다. 민교협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부여와 활동기한 연장 및 인력 확충, 세월호 참사 관련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진상규명을 위한 대통령 기록물 공개 및 특별수사단 등을 요구했다.

▲10월16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4·16가족협의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성역 없는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 등은 '4·16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16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4·16가족협의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성역 없는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 등은 '4·16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 모두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지만 요구 사항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사참위의 실질적 활동 보장이 골자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회로 넘어간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및 ‘4·16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이 원안대로 의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참위에 대해 조사인력 확대, 사법경찰권(수사권) 등을 부여해 활동기간을 늘리는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기록물과 군·국정원 등의 관련 기록을 제한 없이 공개해야 한다. 해당 기록·문서들은 국회의원 외에 사참위 및 자문자격을 가진 피해자들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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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성묵씨가 참여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해 당사자,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하는 단식투쟁단’(단식투쟁단)은 대통령직속 특별수사단을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법적 권한으로 직접 수사를 지시하고 임기 내에 진상을 밝히며 수사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참위 조사 기간을 연장하고 사참위에 특별사법경찰관리 권한을 부여해도, 국가정부원·국군기무사령부·군 등 정부기관 수사는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대통령기록물이 공개된다 해도 열람까지의 동의와 허용, 공개범위 등 한계가 있고 외부발설과 기록의 유출 등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진상규명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분수대 앞 ‘세월호 단식투쟁단’ 농성장 앞에 놓인 팻말들. 사진=노지민 기자
▲청와대 분수대 앞 ‘세월호 단식투쟁단’ 농성장 앞 바닥에 놓인 팻말들. 사진=노지민 기자

지난 시간에 대한 실망감이 제각기 다른 요구사항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한 가지 요구만큼은 공통적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히고 책임감 있게 나서라는 것이다. 4·16가족협의회 등 단체들은 지난 21일 두 번째 진실버스 출발에 부쳐 “문재인 정부는 진상규명의 조력자가 아니라 책임자”라며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진상규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참사의 책임자이자 진상규명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단식투쟁단의 황용운 활동가는 23일 미디어오늘에 “문 대통령은 국정원과 군에 대한 임명권자다. 국무회의 때 한마디만 하면 된다”면서 “지금까지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책임을 뭉개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청와대에서는 김제남 시민사회수석이 세월호 피해자 및 단체들과 소통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분위기는 냉랭하다. 지난 16일 김 수석이 농성장을 방문한 뒤에도 ‘대화가 아닌 답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에 “진실규명과 세월호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특조위가 진실규명 노력을 계속해왔고 특조위 조사기간 연장, 권한 강화를 위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논의되고 있다. 이 법안 통과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 농성하시는 분들의 마음, 답답함을 잘 헤아리고 있다. 그분들의 요구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계속 소통을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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