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뉴욕 타임스퀘어는 한국에 없는 서비스와 볼 수 없는 콘텐츠가 뉴욕 전광판을 가득 메운, 그야말로 OTT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2017년 여름 뉴욕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레거시 미디어(TV, 라디오, 신문)라 불리는 방송 프로 광고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스트리밍(인터넷상에서 음성이나 동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술) 서비스와 스트리밍 콘텐츠를 홍보하는 광고로 가득했다.” (넥스트 넷플릭스 中)

타임스퀘어 전광판이 주는 의미는 크다. 현재 어떤 인물이 이슈이고 어떤 산업이 성행하는지 알아보려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3년 전인 2017년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걸린 광고와 2020년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걸린 광고가 달라진 걸 보고 임석봉 JTBC 방송정책팀장은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은 OTT 입문서 ‘넥스트 넥플리스’의 저자 임석봉 JTBC 방송정책팀장을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신사옥에서 만났다. 사진=박서연 기자.
▲ 미디어오늘은 OTT 입문서 ‘넥스트 넥플리스’의 저자 임석봉 JTBC 방송정책팀장을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신사옥에서 만났다. 사진=박서연 기자.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2011년부터 JTBC에서 쭉 일해온 임석봉 팀장은 방송 산업과 정책을 관심 갖고 공부했다. ‘미디어 기업’과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늘 관심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가 넷플릭스를 포함해 아마존, 디즈니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훌루, 피콕TV 등 ‘OTT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지식을 담은 신간을 냈다.

임 팀장의 방송 산업 및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20년 전부터다. 그는 2001년 온미디어(On Media)라는 곳에 입사했다. 온미디어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하지만 독자들도 투니버스, 온스타일, 스토리온, OCN, 바둑TV, 캐치원 등 채널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채널들 모두 온미디어 소유였다. 온미디어는 과거 오리온그룹이 만든 회사다. 2011년 3월1일 온미디어는 CJ E&M에 합병됐다.

미디어오늘은 20년간 미디어업계에서 일한 경력으로 여러 OTT를 압축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입문서 ‘넥스트 넥플리스’ 저자 임석봉 JTBC 방송정책팀장을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신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임 팀장과 일문일답.

▲신간 넥스트 넷플릭스.
▲신간 넥스트 넷플릭스.

-2020년 1월 뉴욕 타임스퀘어는 OTT 전쟁터 같았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2017년 휴가차 뉴욕에 갔다. 당시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은 미국 폭스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24시간 케이블 뉴스 ‘폭스뉴스 채널’, ‘뮤지컬’ 광고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3년 후인 2020년 1월에는 방송사나 방송사 콘텐츠 프로그램 광고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스트리밍 광고였다. 당시 스타트랙 시즌을 하고 있었는데 스타트랙 포스터 밑에 ‘NOW 스트리밍’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고였다. 전광판 대부분이 OTT, OTT 스트리밍 서비스들로 채워졌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된 것이다.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은 맨날 우리끼리 ‘지상파 대 종편’으로 싸우고 있었는데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넷플릭스 관련 책이 많다. 그럼에도 책을 쓴 이유는?

“기존 넷플릭스 관련 책과 차별점이 있다. 지난해 말부터 넷플릭스에 대항해 디즈니 플러스, 피콕TV 등 OTT가 출시됐다. 지난해부터 언론학회, 정부 등에서 OTT에 대한 의제가 굉장히 많았다. 원래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웬만한 유료 미디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장단점이 명확히 보이더라. 다른 책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플랫폼 자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플랫폼들이 갖는 파워가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더라.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사람들은 해당 플랫폼을 선택하는데 그 플랫폼이 왜 대단한지는 이야기하지 않더라. 플랫폼들이 가진 콘텐츠 입장에서 책을 쓴 사람은 없었다. 콘텐츠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플랫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1조원 들여 만드나?

“맞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콘텐츠 이야기를 하면서 OTT 이야기를 하고 싶다. 플랫폼의 외형 가입자가 늘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무슨 파워를 갖고 영향력을 늘렸는지 알리고 싶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왜 OTT를 만들고 그 OTT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1조원을 넘게 들여 시즌1을 제작하고 있다는데, 과연 얼마나 좋은 콘텐츠가 나오게 될지 봐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미쳤나?

“1월에 책을 쓰자는 제안을 받았고, 2월에 목차를 완성했다. 당시 지형들이 대충 보였고 또 서로 어떻게 싸우게 될지도 보였다. 서로 싸우기도 전에 코로나19 때문에 전체적으로 침체 분위기였다. 새롭게 변하게 된 부분들을 업데이트하려고 노력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돼 최종 인쇄 직전까지 OTT업계가 변화무쌍했다. 10분 정도의 짧은 동영상 콘텐츠를 스트리밍해 왔던 미국의 OTT ‘퀴비’가 책 인쇄 직전인 지난달 22일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퀴비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10분, 이동 중 10분 동영상을 보게 만들겠다는 기조를 갖고 ‘숏폼’ 콘텐츠를 공급했다. 국내 유튜브 등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10분 단위로 잘라 선보이는 숏폼 콘텐츠가 아니라 새롭게 찍어 만드는 것이었다. 밀레니엄 세대들이 긴 걸 싫어한다고 해서 퀴비의 성장이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아쉬웠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제작 단가(4억→8억)를 2배 이상 올려놨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옥자, 미스터션샤인 등에 거액 투자하면서 지금은 표준제작비가 한 편당 10억원 정도 될 것이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지상파는 2억원 내외로 제작비를 썼다. 미국은 한국보다 적게는 3~4배 많다고 한다. 한국이 저임금 고효율 콘텐츠인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드라마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할 길이 없다. 국내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감당할 만한 미디어 시장성이 아직 없다. 한 편 만들면 광고 및 유통 등 리쿱(회수)이 돼야 하는데 한국시장 환경상 리쿱이 안 된다. 적자를 안 내려면 제작비를 낮춰야 한다.”

▲넷플릭스가 공급하는 콘텐츠인 킹덤, 인간수업(위쪽부터)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가 공급하는 콘텐츠인 킹덤, 인간수업(위쪽부터)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리스가 만드는 킹덤, 인간수업 등을 티빙이나 웨이브가 못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이다. 넷플릭스 자체는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독점 콘텐츠)가 있다. 투자 단위가 다르다. 넷플릭스는 억만 가입자(누적)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시장성이 있기 때문이다. 티빙이나 웨이브는 한국 방송사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방송 편성을 목표로, 5000만 국민 위주로 만든다면, 시장성에서 넷플릭스와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형 콘텐츠들은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에서 인기가 굉장하다. 동남아 넷플릭스 콘텐츠 점유율 1~10위까지 한국형 콘텐츠들이다. 한국은 제작 파워가 상당하고, 넷플릭스는 바잉 파워가 있어 동남아에 우리 콘텐츠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넷플릭스 킹덤은 좀비물 특성상 잔인하고,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범죄가 소재다. 국내 방송사가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다. 국내 방송사들이 혁신적 콘텐츠를 시도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 JTBC ‘부부의 세계’는 당시 폭력성 논란에 휩싸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1500건 넘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 콘텐츠 제작 시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스튜디오, 한국은 방송사 중심으로 커 간다. CJ가 스튜디오드래곤을 만들고, JTBC가 JTBC스튜디오를 만들었다고 해도, 두 곳도 방송사를 기반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 방송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 형식과 내용 모두 규제가 심하다. 인간수업 같은 청소년 성범죄 내용은 방송사에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다. 방송법상 규제가 심하다. 사전적 규제를 많이 받다 보니 자기검열이 세진다. 내용상 필요한 19금 소재가 있는데도 법으로 규제하고 있고, 시청자도 방송사가 이런 내용을 방송하면 선입견을 갖기도 한다.”

▲JTBC ‘부부의 세계’ 포스터. 사진=JTBC.
▲JTBC ‘부부의 세계’ 포스터. 사진=JTBC.

-한국 방송사가 넷플릭스 의존적이라는 말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넷플릭스는 거대한 유통채널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넷플릭스 의존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유통 채널로 활용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미국의 프렌즈 시리즈를 구입하며 6000억원을 지불한다. 한국의 경우 어떤 콘텐츠를 살 때 가치를 인정해주나? 넷플릭스가 우리 콘텐츠를 높은 가격에 사서 전 세계적으로 유통된다면 한국에도 좋은 마케팅 전략이 된다. 결국 콘텐츠 파워를 키워 넷플릭스와 잘 협상하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토종 OTT들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VOD 업로드 시스템 등 기술력이 약한 것 같다.

“글로벌 테크기업이든 AI기업이든 기술 측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넷플릭스도 UI 변천사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첫 시작을 알리는 ‘두둥’이라는 소리도 기술력이다. 다양하고 멋진 경험을 하게 해주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한국은 여전히 넷플릭스 시작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기술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돈이 너무 없다 보니 ‘투자를 하면 가입자 수로 이어질까’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투자 마인드를 갖고 기술에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시장성을 먼저 생각해 투자로 이어가지 못한다. 통신 3사가 기술에 얼마나 투자할지 의문이다. 최근 정부가 넷플릭스 같은 미디어 기업 5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식의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어떤 비전을 갖고 만들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공허한 메아리 같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 프로그램을 만든 PD도 넷플릭스로 갔다. 방송사 유명 PD들이 넷플릭스와 계약한다.

“한국이 글로벌 시장성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제작 능력을 영국과 거의 엇비슷하게 보고 있다. 미국, 영국, 한국 순으로 본다. 그 정도로 발전이 있다. 한국에서만 놀아선 안 된다. 몇 년 전엔 넷플릭스가 아니라 한국 PD들이 한창 중국으로 넘어갔다. 당시 정부도 ‘중국’을 중요시 여기던 때였다. 당시 중국은 한국보다 최소 3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더 줬다. 한국은 매번 ‘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이나 해외로 PD들이 넘어가면 뺏겼다고만 생각한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국내에서 연봉을 얼마 더 받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 PD들의 해외 진출은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체적 전략과 비전을 제시해달라.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 한국이 콘텐츠를 잘 만들고 있는데 더 잘 만들 수 있도록, 말뿐인 규제 완화가 아닌 실질적 규제 완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한국은 규제가 너무 많다. 그리고 모호하다. 지켜야 하는 규제인가 의문이 든다. 차라리 규제를 전반적으로 완화하고 절대 어겨서는 안 될 규제 몇 가지를 강하게 두는 게 미디어 산업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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