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에서 비구승(남성 승려) 중심의 종단문화를 비판한 비구니승(여성 승려) 칼럼을 삭제하는 등의 논란이 일었다. 조계종은 칼럼 작성자이자 불교신문 논설위원이었던 정운스님(조계종 비구니 중앙종회 의원)에 대한 징계동의안을 중앙종회(국회 격)에 상정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운스님에 대한 징계동의안은 소명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내년 3월로 이월된 상태. 이 사태를 두고 조계종의 성차별을 드러난 사건이자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운스님은 지난 8월15일 불교신문에 “전국비구니회를 보는 비구스님들의 인식”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비구니승들의 최고 법계인 ‘명사’(明師) 추천 권한을 전국비구니회에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중앙종회에 제출했다가 철회됐던 일을 꺼냈다. ‘전국비구니회는 종법 기구가 아니다’라는 일부 종회의원 스님들 이의 제기로 정운스님 안건이 철회된 것. 

정운스님은 “전국비구니회가 임의단체라는 주장은 자구에만 매달린 편협한 주장이다. 전국비구니회는 사실상 종법기구 역할을 수행 중”이라며 지난 1994년 종단 개혁 후 종단이 비구니 중앙종회 의원 10명에 대한 추천권을 전국비구니회에 부여해온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현실을 부정한다면 임의단체에 불과한 우리 종단(조계종)에게 부여한 전통사찰보존법상 권한도 무효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격이 된다”며 “비구승 중심의 종회나 집행부는 전국비구니회가 종법기구가 아니라고 선을 그을 뿐 보완할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정운스님은 지난 8월15일 불교신문에 “전국비구니회를 보는 비구스님들의 인식”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조계종 내의 성차별 문제를 비판했다. 이 칼럼은 삭제됐다.
▲ 정운스님은 지난 8월15일 불교신문에 “전국비구니회를 보는 비구스님들의 인식”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조계종 내의 성차별 문제를 비판했다. 이 칼럼은 삭제됐다.

칼럼은 비구니회가 행사하던 조계종 ‘명사’ 추천권을 지난 7월 임시총회 때 종단 산하 25개 교구 본사에 부여한 개정법에 대한 비판으로, 정운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실체를 인정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사안이 복잡해지는 것은 비구 스님들이 갖고 있는 비구니 차별심 때문이라고 본다. 현행 종법은 비구승 중심이고 비구니를 위한 행정 관련법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짚었다. 자신이 속한 종단의 성차별 민낯을 드러내고 성찰을 촉구한 것. 

칼럼이 보도된 후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일부 비구승들이 칼럼 표현 중 “임의단체에 불과한 우리 종단”이라는 대목을 문제 삼아 ‘해종 행위’라는 비판을 제기했고, 조계종 측이 “불교신문에 논설위원 해촉 요구 등 압박을 했다”(조계종 민주노조)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정운스님은 지난달 21일자 불교신문 광고면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실었다. 그는 “저는 비구 스님들이 조금만 더 비구니 스님들을 이해해준다면 비구니 어른 스님들을 잘 모실 수 있을 것이라는 애종심에서 그 내용을 썼으며 종단을 폄훼할 의도가 추호도 없음을 밝힌다”고 해명했다. 정운스님 칼럼은 삭제됐고, 불교신문 논설위원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전국 비구니회 50주년 기념 법요식 모습. 사진속 인물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전국비구니회 50주년 기념 법요식 모습. 사진속 인물들은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불교신문 사장인 정호스님과 김아무개 편집국장도 지난 12일 조계종 중앙종회에 출석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법보신문에 따르면 이날 정호스님은 “미처 살피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김 국장도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11월5일 편집국장 사임계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현재 김 편집국장의 사임계는 지난 18일자로 반려됐다. 현재 국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조계종 조처에 불교계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비구니회는 지난 9일 “참담한 심정으로 우려를 담아 이번 징계동의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정운스님에 대한 징계가 실행된다면 비구니에 대해 지나치게 처벌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옥복연 성평등불교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2일 여성신문 기고에서 “‘전국비구니회’의 합법성을 요구하는 글을 쓴 것인데, 일부 비구스님들은 핵심 주장은 거론도 않고 조계종단이 임의단체라는 표현만을 문제 삼았다”며 “이것이 종단을 욕보이는 해종 행위라는 것인데, 실상은 비구니승가의 권리 주장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옥 대표는 “그 비구니스님은 해당 신문에 사과문을 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호법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논설위원 사퇴 압박도 받고, 해당 칼럼도 삭제됐다. 참으로 심각한 인권탄압이자 언론탄압”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호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19일자 칼럼에서 “역시 비구는 힘이 셌다. 해당 칼럼은 온라인에서 삭제됐고, 정운 스님은 이후 불교신문에 해명과 참회의 광고를 실었다”며 “조계종 총무원은 정운 스님 징계동의안을 종회에 제출했다. 승려의 자격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닌, 단지 종단의 오랜 과제인 성차별을 거론한 글을 놓고 징계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불교신문 사장인 정호스님은 20일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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