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야간작업 하다 숨진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2주기가 다가왔다.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산안법을 고쳤지만, 정작 김용균이 일했던 곳엔 적용되지 않는다. 고 김용균 2주기 추모위원회가 오는 12월 6~12일까지 추모주간을 마련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하며 릴레이기고를 시작한다. - 편집자주

 

아빠가 떠났다. 서류를 한가득 들고 집을 나간 아빠의 얼굴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뉴스에 아빠가 나오고 라디오에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신문을 보면 거기에도 아빠가 있었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숨졌다. 사진 속 청년은 며칠 전 아빠가 집에 가지고 와 보여 주었던 피켓을 들고 있었다. 정부에게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바로 그 피켓이었다. 아빠는 죽음이 잊히지 않게 부단히 노력했다. 세상이 시끄러울 만큼 억울한 죽음이니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8살이었던 나는 이런 게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 사진=이한비씨 제공.
▲ 사진=이한비씨 제공.

2019년, 가족 모두가 길 위에 올랐다. 아빠는 계속 뉴스에 나왔고 계속 바빴다. 모든 걸 지켜본 나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 걸려야만 하는 일일까. 오늘도 위험에 빠지는 생명을 방치해야 할 만큼 어려운가. 죽지만 않게 해 달라는 요구가 힘겨운 싸움이 되는 이유가 뭘까. 

나까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길 위에 서서 깨달았다. 이 일은 오래 걸릴 것이다. 오래 걸림에도 불구하고 치열함을 잃지 않아야만 겨우 가능한 일이다. 안락한 집 안에서는 몰랐던 이야기였다. 그것이 벌써 일 년 전이다. 

나는 스물네 살이 되어 간다. 그러나 김용균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간은 그 언저리에 멈추어 있다. 멈추지 않은 것은 죽음의 외주화 뿐이다. 사람은 여전히 죽어나간다. 아빠는 여전히 바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는다. 참 여전하다. 

그렇게 빙 돌아 다시 12월.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가 다가온다. 집회에서 “우리가 김용균이다”를 외쳤다. 세상은 이제 겨우 이름 하나를 안다. 우리는 김용균인 동시에 김용균이여선 안 된다. 수많은 이름들을 등에 업고 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 사진=이한비씨 제공.
▲ 사진=이한비씨 제공.

초등학생 때 아빠의 회사인 한국서부발전에 갔던 것을 기억한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아주 멀리에서도 보였다. 누가 무엇을 태우고 있기에 저런 연기가 나나 궁금했던 나는 이제 그곳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심리 미술에서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갈등을 뜻한다고 한다. 검색 엔진에 ‘굴뚝’과 ‘갈등’을 검색하면 곧장 75m 굴뚝 위에서 426일간 농성했던 파인텍 노동자들의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절박하게 기록된 노동자의 삶은 발에 채이게 많다. 이를 목도하며 사회는 비참함을 느껴야만 한다. 그리고 일어나야 한다. 다시 일어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살자. 고 김용균 노동자에게 가슴깊이 추모의 뜻을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 사진=이한비씨 제공.
▲ 사진=이한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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