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집회 4일 만에 300명 확진… 광복절 땐 ‘반사회적’, 이번엔 침묵”

18일 오후 조선일보 온라인 보도 제목.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늘어난 것과 지난 14일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를 무리하게 연결했다.

이 신문은 “지난 14일 민주노총이 전국 40여곳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를 연 지 3일만에 확진자가 300명을 넘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극우 세력과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8·15 광화문 집회 시기 때 “확진자가 300명을 넘긴 것은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 닷새 만인 (8월) 20일로, 이때는 하루 32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보수·극우 단체 집회와 민주노총 집회를 동일선에서 비교하며 둘 중 민주노총 집회가 더 심각하다는 투다. 보수단체 광화문집회 때는 ‘5일’ 만에 하루 확진자가 300명을 넘겼는데 민주노총 집회는 그보다 더 짧은 ‘3일’ 만이었다는 논리다.

보도에는 ‘근거’가 빠져 있다. 민주노총 집회가 현재 코로나 감염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인과관계가 없다. 조선일보 보도 제목을 보면, 민주노총 집회가 코로나 확산 주 원인 인양 보도했지만 본문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없다.

근거를 대신해 지면을 채운 것은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응이다. 조선일보는 정부·여당이 광복절 집회 참가자와 주최 측에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특정 교회의 반사회적 행위’(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극히 일부의 몰상식이 한국 교회 전체의 신망을 해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는 등 날선 비판을 쏟았는데 정작 “민노총 집회에 대한 정부와 여권의 반응은 보다 ‘차분’했다”는 것이다.

▲18일 오후 조선일보 온라인 보도 “민노총 집회 4일 만에 300명 확진… 광복절 땐 ‘반사회적’, 이번엔 침묵”. 사진=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18일 오후 조선일보 온라인 보도 “민노총 집회 4일 만에 300명 확진… 광복절 땐 ‘반사회적’, 이번엔 침묵”. 사진=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기사 말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교회나 보수단체 집회였다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을 것”, “역시 ‘탓할 집단’이 없으니 못 올리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민주노총이 집회를 개최한 연유나 배경을 취재하기보다 정부·여당을 비판하기 위한 ‘노조 비난’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마치 민노총 집회에서 300명이 나온 것처럼 말하네 조선XXX 못된 버릇 여전하네”, “집회와 연관성이 있는지 기자 양반 확인했소?”, “민노총 집회로 인해서 300명 나왔냐? 4일 만에 300명 참 어거지로 짜맞춘다” 등 일부 비난 댓글도 있다.

월간조선 보도는 조선일보 기사보다 수치를 더 높여 보도했다. “민노총 대규모 집회 5일 만에 코로나 확진자 400명 돌파한 듯”이라는 제목이다. 월간조선은 “정치권에 따르면 18일 18시 기준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412명”이라며 “만약 400명을 돌파했다는 정치권의 주장이 맞는다면 지난 14일 민주노총이 전국 40여 곳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를 연 지 5일 만에 확진자가 400명을 넘긴 셈”이라고 했다.

이 기사에서도 민주노총 집회가 코로나 확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대규모 집회를 비판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김태년 대표, 문 대통령 발언으로 지면을 채웠다.

민주노총도 두 매체 기사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9일 성명을 통해 “이제껏 조선일보의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적이고 악랄한 기사에 대해 논하거나 대응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았다”며 “이유는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 등 조선미디어그룹 모든 매체를 취재거부 대상으로 정한 바 있다”고 설명한 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 기사는 도를 넘어섰기에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는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두 매체 보도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할 예정이다.

▲ 19일자 민주노총 성명. 사진=민주노총 홈페이지.
▲ 19일자 민주노총 성명. 사진=민주노총 홈페이지.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19일 통화에서 “두 매체 기사는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 확진 원인이 민주노총에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며 “민주노총의 이번 집회를 수구단체들의 8·15 집회와 동일시하며 물타기하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민주노총은 정부가 권유하고 권고하는 선 이상으로 방역 조치를 하며 집회를 준비했다”며 “민주노총을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면서 ‘낙인찍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 매체가 빠뜨리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 노동자들이 코로나 시국에 비난을 감수하면서 왜 거리로 나왔는지다. 14일 민주노총이 연 전국노동자대회는 전태일 열사 정신을 기리는 행사로 전태일 50주기 임에도 예년과 비교해 소규모로 열렸다. 이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전태일 3법’ 처리를 요구했다.

▲ 11월14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열사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대회’에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를 쓴 민주노총 관계자가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1월14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열사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대회’에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를 쓴 민주노총 관계자가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대변인은 “코로나 재난 국면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있다”며 “사회안전망 확충과 ‘전태일 3법’ 입법이 절박하다. 코로나 시기가 아니었다면 10만명이 운집할 대규모 집회를 이어갔겠지만,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 집회를 열게 됐다. 그 역시 각 지자체가 허용하는 선에서 방역 지침을 준수한 정상적 집회였다”고 말했다.

이어 “집회 개최한 지 1주일여, 현재까지 코로나 관련 이상징후는 없지만 잠복기를 감안하면 속단할 순 없다”면서도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무시한 채 두 매체는 악의적 보도로 ‘민주노총 악마화’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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