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4일 전태일 열사 50주기 전국언론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언론사의 노동문제 특히나 대주주의 언론사유화는 언론사를 어떻게 망가뜨리나가 그 주제였다. 그에 해당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내 많은 지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올 한해 유난히 대주주리스크를 걱정하는 방송계의 목소리가 많다.

한 PD의 비극적인 죽음부터, 대량해고와 편법승인까지… 방송사 곳곳에서 볼멘 소리들로 넘쳐난다.

문제가 되는 방송사들은 민영방송사라는 것과 대주주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잘지키고 있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방송사 어디도 폐업을 노조겁박용 카드로 쓸 뿐 내가 다녔던 경기방송처럼 실제로 폐업을 해버린 경우는 없다. 그래서 경기방송은 유일하게 욕할 대주주조차 남아있지 않다.

지난 봄 3월16일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방송은 방송권을 자진반납했다. 1997년 개국이후 23년간 경기도 유일의 종합편성라디오로 존재했던 경기방송이지만 문을 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세히는 노동조합에 이사회의 결정문을 통보했던 2월 20일부터 주주총회에서 폐업이 결정된 3월16일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경기지역에서 유일하게 음악, 뉴스, 교통과 재난을 포함한 안전정보를 제공하던 99.9Mhz는 3월 30일 정파가 됐다.

▲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폐업이후 해마다 주주배당을 하며 호의호식하던 대주주는 100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일괄해고하고 방송을 통해 얻은 부지에 대한 시세차익 포함 막대한 잉여금을 가지고 유유히 달아났다. 방송사를 관리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현행 방송법상 방송사주의 자진폐업을 막을 방법도 청취권 침해에 대해 방송을 유지시킬 권한도 없다는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방통위가 한 일이라곤 그저 미비한 현행법을 보완하고 조속히 새 사업자를 찾겠다는 보도자료를 3.26일자로 내보냈을 뿐이다.

경기방송이 안좋은 선례가 되는 걸까. 최근 지역의 한 방송사주는 노동조합에게 경영진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경기방송처럼 폐업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주방송, OBS, SBS 그리고 최근에는 MBN까지… 대주주는 이익극대화와 경영권 장악을 위해 불법을 서슴치 않으며노동자들을 핍박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난 그 빌미를 제공한 건 방송통신위원회라고 생각한다. 

방통위의 안일한 법 제도 집행과 계속되는 호의 앞에 방송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경기 중에 선수가 반칙을 하는데도 휘슬을 불고 경고를 주지 않으니까, 반칙하는 플레이어는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고 그 수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방통위는 경기방송에 지난 10년간 경영투명성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쳤다. 적극적인 개선의지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작년 말에도 경영진은 재허가는 문제없다고 조합에게 전직원의 탄원서만 써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들의 말대로 결국 조건부 재허가가 났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조건부 재허가를 내어준 이유는 이번 MBN과 놀랍도록 똑같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 시청자와 청취자의 권리보장’

혹시 방통위는 어느 누구의 적도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설픈 법 집행의 명분으로 노동자 핑계를 대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만약 방통위가 원칙대로 재허가 취소를 했었다면? 

경기방송은 정해진 법률에 따라 1년간 방송을 유예하며 새로운 사업자를 안정적으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1350만 도민들의 청취권이 박탈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도덕한 대주주를 욕하기 전에 방통위는 그들이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다시는 불법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처벌을 해야한다. 그래야 질서가 바로 선다.

자본에게 관대하고 노동자에게 냉혹한 법 집행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잘못은 대주주가 했고, 처벌은 방통위가 잘못했는데, 왜 그 피해는 노동자들이 받아야하는가.

방송을 자신들의 명함과 권력으로 사유화 시키는 여러 방송사들의 대주주를 보면서 그리고 그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를 보면서 폐업된 경기방송 노동자로서 지난 7개월 후회와 반성을 많이 했다.

왜 나는 다른 방송사 언론인들처럼 회사가 살아있을때 강하게 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나.

왜 강하게 부딪혀보지도 못하고 꺽여버렸나.

인사보복을 비롯한 징계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의 안락함에 빠져 방통위에서 같은 사항을 지적받는 10년동안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는 10월28일 경기도청 앞에서 과거 경기방송을 청취했던 경기도민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경기방송지부 제공
▲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는 10월28일 경기도청 앞에서 과거 경기방송을 청취했던 경기도민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경기방송지부 제공

경기방송 지부는 현재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해 공공성과 지역성 노동존중을 3대 가치로 하는 새로운 방송국을 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방통위에서는 공모계획조차 나오지 않았고 생계문제도 달려있지만 경기방송을 사랑해주었던 청취자들의 자발적 모임을 보면서, 뜻을 함께해주는 도민들을 양분삼아 나아가고 있다. 올바른 언론사가 경기지역에 뿌리내릴 때까지 경기방송 지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부도덕한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언론동지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제발 이겨달라고… 이겨서 보여달라고…

방송법을 지키는 것은 상식이고, 방송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사회의 공기이며 잠시 허가받은 공공재라는 것을 알려달라고.

마음 속으로 같이 외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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