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처에 과도하게 의존한 보도 관행이 저널리즘 품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라며 출입처 배정 인력을 대폭 축소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31일 언론진흥재단 지정주제 연구보고서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를 펴내고 이같이 밝혔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안수찬 전 한겨레 기자, 박보희 서강대 언론학 석사 연구원이 공동 참여했다. 

보고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출입처 제도 현황과 해외 언론 뉴스 생산 방식과의 비교, 한국과 해외 일간지 뉴스 품질 비교와 대안 제시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연구 결과 주요 언론사 편집국 취재인력의 70~80%가 ‘출입처 기자’로 배치되고 있었다. 대상이 근속 1~5년 기자일 경우 90% 가량이 출입처 기자였다. 연차가 낮은 인력일수록 각 정부 부처나 기업 등 출입처에 배정되는 경향이 높았다. 실제 A 종합일간지, B 경제일간지, C 지상파 방송사 등 언론사 3곳의 편집·보도국 조직도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취재 영역을 기준으로 △자유 취재(탐사보도팀 등) △영역 담당(출판 담당 등) △지정 출입(정부 부처 출입 등) △광역 출입(지역 주재·사건팀 등)으로 분류해 통상 출입처에 해당되는 지정 및 광역 출입 기자 비율을 분석했다. 세부 조직도에 근거한 출입처 인력 통계는 이번 연구팀의 단독 분석 자료다. 

▲출처=언론진흥재단 발간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보고서 갈무리(박재영·허만섭·안수찬·박보희, 2020)
▲출처=언론진흥재단 발간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보고서 갈무리(박재영·허만섭·안수찬·박보희, 2020)

 

출입 기자 규모가 월등한 영역은 법조였다. 헌법재판소, 대법원, 서울중앙지법,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을 출입하는 기자다. 연구팀이 올해 4월 법조 기자단 명단을 확인한 결과 40개사의 260명이 등록됐다. 38개사 77명이 등록된 교육부, 54개사의 134명 기자가 출입하는 국토부와 비교해 매체당 기자 수가 현저히 높다. 234명 기자가 출입하는 청와대도 등록 매체 수는 130개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출입처 기자들의 하루 취재 과정을 시간별로 기록한 일정표와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병행했다. 종합일간지 3명, 지상파 방송사 1명, 통신사 1명, 경제지 1명, 인터넷신문 1명 등 기자 7명이 이번 연구에 응했다. 

그 결과 뉴스 상품 가치 하락을 확인했다. 하루 생산되는 출입처 보도자료는 10~20건에 달하지만 인력은 오히려 줄어 출입처 기자끼리 기사를 분담하며 업무량이 늘었다. 여기에 주요 출입처 웹페이지나 페이스북 등 SNS, 전자우편이나 메신저로 취재원을 확인하는 ‘디지털 취재 순회’ 관행도 자리 잡았다. 

연구팀은 “여전히 출입처 취재 관행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갔을 뿐”이라며 “사실 검증 과정이 생략돼 뉴스 품질이 낮아지고 여러 매체가 대동소이한 기사를 동시에 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정 분야의 보도는 실종(‘뉴스 사막’)되면서 또 다른 분야 보도는 대량 생산(‘뉴스 홍수’)되는 현상도 보였다. 이를테면 뉴스 사막은 전자산업을 담당하는 기자가 시장 전반보다 삼성, LG 등 대기업 출입처 이슈만 다루게 되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매일 출입처에서 쏟아지는 방대한 보도자료를 처리하느라 기자들이 일종의 ‘양극적 선택’을 한다”고 설명했다.

▲출처=언론진흥재단 발간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보고서 갈무리(박재영·허만섭·안수찬·박보희, 2020)
▲출처=언론진흥재단 발간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보고서 갈무리(박재영·허만섭·안수찬·박보희, 2020)

 

한 국토부 출입 기자는 “한국 언론 비극은 여기에 있다. 기자는 엄청 많은데, 한 매체의 기자가 많은 게 아니라 매체들이 많고 각 매체의 기자는 적다”며 “120명이 넘는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들이 부동산 기사만 쓰고, 기자단 전체를 통틀어 교통이나 항공 기사를 쓰는 기자는 극히 드물다”고 연구팀에 밝혔다. 

뉴스 홍수 예는 유명 정치인의 SNS 글을 받아쓰는 현상이다. 특정 이슈가 생기면 ‘온라인용 기사’부터 쓰는 관행이 주요 언론사 편집국에 자리 잡았다. 온라인용 기사는 보도 가치가 크진 않지만 화제성과 시의성이 높아 인터넷으로 급히 출고하는 기사다. 연구팀은 “품질 관리가 이뤄지기 힘든 탓에 오히려 독자들이 기사를 전반적으로 불신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출입처 중심의 ‘기자단 문화’는 기존 관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국회, 청와대, 일부 대기업들은 기자실을 개방하거나 모든 언론 취재에 협조하는 방향으로 기존 출입처 제도를 바꿨다. 그러나 법조, 서울시청, 경찰청 등 주요 기관은 여전히 출입 기자에게만 출입증이나 공보자료 접근권을 준다. 기자단은 출입 기자들 허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자단에 가입하려는 기자들이 출입 기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식사를 하거나 해당 출입처 보도 목록을 정리한 ‘공적서’를 만들어 심사를 받는 일도 벌어진다. 

연구팀은 최근 관행이 된 ‘꾸미’도 출입처 관행의 연장선으로 봤다. 쉽게 말해 꾸미는 같은 출입처를 둔 친한 기자들이 서로 취재에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카카오톡방 등에서 보도자료나 일정을 공유하고 취재원과 식사 약속을 잡는다. 연구팀은 “기자단의 폐쇄성은 디지털 환경이 도래하며 상당히 느슨해졌지만 더 미시적이고 복잡한 기자 집단이 출입처마다 복수로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우린 전혀 그렇지 않다” 두 번 강조한 영국 기자

“가디언의 교육 스페셜 리포터(전문기자)는 교육부에서 특별한 발표가 있는 경우 아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육부를 찾을 것이다. (중략) 기자들은 정부 결정이 아니라 그 결정에 의해 학교, 학생, 부모들이 겪는 결과를 탐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존 헨리 가디언 기자)

“지금 한국의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큰 소리를 내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권력 기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멍멍 짖으며 자기한테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꼴이다. 실제로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모른다.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제공 받는 형식을 보면 (관공서가) 닭에게 모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방식으로는 기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출입처에 의해) 컨트롤 당할 것이다.” (최상훈 뉴욕타임스 기자)

“외국 기자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국의 기자단 문화다. 기자단 차원에서 출입 기자를 심사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윤화진 로이터 기자)

해외 언론과 한국 언론 취재 관행을 비교 분석한 대목에선 외신 기자들의 출입처 제도 비판이 비중 있게 실렸다. 연구팀은 뉴욕타임스, LA타임스, 가디언, 로이터, 아사히신문 등 전·현직 기자 5명을 인터뷰했다. 출입 기관에 의존한 출입처 제도는 이들 매체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가령 영국 가디언지 취재기자는 ‘제너럴 리포터’와 ‘스페셜 리포터’로 구분된다. 취재기자는 뉴스룸 500~600명 중 250~300명 정도다. 주로 입사 5년 미만의 기자들은 국내 데스크 아래 광범위한 영역을 취재하는 제너럴 리포터로 일한다. 적어도 3~4년은 일해야 전문 영역을 다루는 스페셜 리포터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스페셜리포터는 경쟁과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이들은 30~50명 규모로 전체 뉴스룸의 5~10%를 차지한다. 70~80%를 차지하는 한국과 차이가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3월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3월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뉴욕타임스도 한국의 ‘출입처 기자’에 가까운 기자는 소수다. 백악관, 국방부, 대법원 등 소수 기관에 전문 출입 기자가 배정됐다. 그 외엔 취재 담당 영역만 주어진다. 최상훈 기자는 “(시티 데스크 경우) 특정 담당이 정해진 기자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이 특정 담당 없이 뉴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취재 대상으로 삼는데, 이것이 뉴욕타임스의 생명”이라고 말했다. 아사히 신문에 입사한 기자들은 5년 정도 지역 주재기자로 지역 현안을 아울러 취재하는 훈련을 거친다. 

이들은 출입처, 출입기자란 단어를 낯설어했다. 윤화진 로이터 기자는 “한국 기자들에게 출입처는 ‘주둔’하는 곳이지만 (로이터의) 비트 리포터, 즉 출입기자는 전문기자를 뜻한다”고 밝혔다. 최상훈 뉴욕타임스 기자는 “출입처 기자실에 있는 한국 기자들을 보면 세입자 같다”고도 말했다. 

연구팀은 한겨레와 뉴욕타임스를 표본으로 골라 보도를 비교한 결과 취재 관행 차이가 보도 품질 차이로 이어진다고 결론 냈다. 특정 기간의 교육, 정치, 경제 정책 등 3개 분야 기사를 골라 △보도 성격 △취재원 △서술(전달방식) △심층성·독창성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연구팀은 “(교육의 경우) 한겨레는 출입처·기관·대학·행정에 우위를 뒀고 뉴욕타임스는 수용자·시민·대학생·사적 경험에 중점을 뒀다. 서술면에서 한겨레는 출입처 보도자료를 참고한 뒤 홍보 담당자를 추가 취재해 기사를 내보내는 출입처 기사 작성 패턴을 보였고, 뉴욕타임스는 상류층 대학생과 저소득층 대학생을 섭외해 카메라 앞에 세우는 취재 노력을 보였다. 어떤 것도 모방하지 않은 독자적 정보로 매체 가치를 고양했다”고 평했다. 

“출입처 인력 일단 줄여봐라, 과감히”

연구팀은 ‘출입처 관행 혁파’를 제안한다. 연구팀은 제너럴 리포터들의 독창적 기사를 독려하는 해외 사례를 참조해 “뉴스룸 내부의 집단의식을 바꿔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법조, 산업, 정치 같은 주요 출입처를 섭렵한 경력을 뉴스룸 내 요직 인선 시 우대하는 관행이 있다면 혁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들 업무량이 적지 않은 데 대해 연구팀은 영국 언론처럼 통신사 기사를 적극 활용하라고 제안했다. “많은 기자를 출입처에 보내 통신사 기사와 같은 기사를 쓰게 하지 말고, 통신사가 어떤 정책 기사를 냈다면, 이 기사에 없는 ‘정책에 영향받는 사람들의 현장 목소리’를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출입처 관행을 편하게 여기는 한국언론 특성상, 지금 당장 모든 출입처는 혁파하는건 힘들지만 출입처를 담당하는 모든 기자를 4~10년차 이상 기자들로 교체하는 건 가능하다”며 “출입처를 세분하는 대신 비슷한 분야의 출입처를 묶어 ‘광역 기자’ 방식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둘러싼 외부 환경 변화도 필요하다. 연구팀은 법조·경찰 영역이 ‘출입처 중심을 유지해야 하는 매우 강력한 동기’를 언론사에 제공한다며 “이 두 출입처 운영 개선 없이는 전체 출입처 문제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획기적으로 개방형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이 정보 공개 제도에 소극적인 문제도 거론됐다. 연구팀은 “인터뷰 조사 결과 기관들이 비공개를 결정하는 일이 많고 공개해도 너무 늦게 한다”며 “시급히 이슈를 다루는 언론 특성을 고려하고 불필요한 단독 경쟁을 막으며 효과적인 공보 활동을 돕기 위해서라도 유명무실화된 정보공개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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