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 보도가 세계적 망신을 사고 있다.
사안에 대한 기초 지식없이 보도자료를 무작정 베끼는 우리 언론의 고질병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지난 15일자에서 경희의료원 연구팀이 인간복제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1면 머릿기사 등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특히 동아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은 한결같이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로슬린연구소에 이어 세계 두번째”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영국의 로슬린연구소가 행한 실험은 인간이 아니라 양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인간의 난자를 갖고 직접 복제 실험을 한 것은 경희의료원이 처음이었다.

한국언론의 ‘무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영국의 로슬린연구소는 16일 BBC방송을 통해 자신들은 인간복제 실험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나 우리 언론은 이마저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이처럼 ‘망신’을 사게 된 이유는 경희의료원 연구팀의 보도자료를 사실 확인없이 그대로 베꼈기 때문.

언론은 연구팀이 새로운 의학기술이 개발되면 관련 학술지에 먼저 논문을 발표, 국제적 공인을 얻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둘러 보도자료를 뿌린 연유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급기야 워싱턴포스트 등 외국 언론이 실험결과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이를 인용보도하는 처지에 빠져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 보도에서 윤리성이 실종됐다는 점. 언론은 경희의료원의 실험결과를 전하는 일보에서 그것이 미칠 파장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는데 미흡했다.

오히려 일부언론은 <인간배아 국내 첫 성공, 난치병 치료 획기적 계기될 듯>(대한매일)이라고 보도, 인간의 난자를 갖고 직접 복제를 시도한 실험이 윤리적 측면에서 얼마나 문제가 많은 것인지, 따라서 세계적으로 얼마만큼 큰 파장을 가져올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언론은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아사히,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유수 언론과 국내 시민단체들이 인간복제의 ‘패륜성’을 문제삼고 나서자 그제서야 이 문제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한국언론의 문제점이 집약된 이번 ‘인간복제’ 보도에 대해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분야는 전문분야여서 사실 확인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거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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