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다. 그러다 17일 당직자 만찬에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처음 밝혔다. 안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에 선을 그으며 2022년 대선 출마만 주장했을 때도 언론과 정치권에선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안 대표의 대선 직행이 녹록지 않아서다. 

김종인-안철수 주도권 다툼?

최근 안 대표 관련 기사를 보면 “김종인-안철수 줄다리기”(한국경제), “김종인·안철수 신경전”(아시아경제), “안철수·김종인 냉기류”(뉴시스) 등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 대표가 야권진영에서 기싸움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국민의힘은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1차경선을 100% 여론조사로 하기로 결정했다. 당 밖의 후보, 특히 안 대표를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자 안 대표는 신당창당을 말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신당창당이라기 보다 국민의힘에 흡수되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에 가깝다. 그 외에도 김 위원장이 안 대표 관련해 물으면 ‘관심없다’는 식의 답변을 내놔 둘 간의 기싸움 양상이 자주 언론에 나타난다.  

▲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하지만 이는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주도권 다툼 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 김 위원장과 비대위체제에 비판적인 당내 중진의 갈등이 안 대표와 관계를 두고 나타나는 측면도 있다. 

보궐선거 지역인 부산시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영남권 중진들 사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들이 안 대표와 손을 잡는다면 영남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안 대표와 연대를 기대할 수 있고, 동시에 당내에서 주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김 위원장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물론 전제는 안 대표가 야권의 대권주자가 아닌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위치설정을 할 때다. 

결국 김 위원장이든 당내 중진들이든 국민의힘에서는 안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뛰어 불쏘시개가 돼 주길 바랄뿐 대권주자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철수 주변에서도 대권직행 원하나

안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적극 부인하며 대권도전을 시사하는데 과연 국민의당 등 안 대표 주변에서도 비슷한 생각일까. 안 대표는 지난 대선기간에 한때 2위를 기록하며 문재인 당시 후보와 양강구도를 이루며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이후 체급을 낮춰 2018년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역시 거대양당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선 국민의당이 비레대표 3석을 얻는데 그쳤다. 

즉 안 대표 주변에선 안 대표의 당선 경험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여권에게 유리해보이는 대선 판에서 야권의 소수정당 대표가 대선판을 뒤흔들긴 어렵다. 이번에 서울시장에 도전해 당선된 뒤 다음 차기 대선을 노려보는 게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시장이라도 돼야 존재감을 드러내고 소위 ‘자기사람을 챙겨줄 여지’가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 대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제로(0)는 아니다”라고 말했고 이후 국민의힘과 접촉하며 야권 재편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당 일각에선 아예 국민의힘과 합당을 주장하는 세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12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사진=국민의힘
▲ 지난 12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사진=국민의힘

 

안철수발 반문연대의 어려움

안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대화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같은 분이 혁신 플랫폼에 들어오면 야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가 신당창당 주장을 철회하고 야권의 혁신 플랫폼을 제안한 가운데 윤 총장에 손을 내민 것은 안 대표가 이른바 ‘반문연대(반문재인연대)’의 구심점을 자처한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을 수사했지만 문재인 정권에도 대립하는 인사다. 안 대표가 꾸준히 위치해 온 거대양당이 아닌 제3지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즉 윤 총장에 대한 러브콜은 국민의힘으로 당장 가긴 어렵지만 현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층을 포섭하기 위한 메시지다. 다만 이 역시 안 대표가 반문연대를 하나로 엮어내긴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를 ‘계약’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도’로 요약했다. 이를 차용하면 향후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려면 구도상 반문세력이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국민의힘과 안 대표로 대표되는 제3지대의 화학적 결합을 가능하게 할 ‘계약’이 성사돼야 하는데 이 둘을 모두 충족할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1야당과 제3지대가 대선 승리시 권력을 공유하겠다는 일종의 계약이든, 두 세력이 함께 만들어가는 정책연대 등 콘텐츠가 부재한 상태다.  

반문연대가 쉽지 않다면 안 대표가 대선으로 직행하긴 어려워진다. 조건상 안 대표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울시장 출마로 기울 수밖에 없다. 

용의 머리를 고집하는 안철수, 김종인과 악연도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대권에서 연대가 어려운 배경에는 안 대표 개인 캐릭터도 영향이 있다. 안 대표는 오랜 기간 CEO, 즉 최고결정권자로 살아왔다. 정치를 시작할 때도 높은 지지율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실상 킹메이커 역할을 하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고, 새정치민주연합·구 국민의당·바른정당·바른미래당에서도 당대표급 리더 위치로만 지내왔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합당하거나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는 순간 원외인사로서 비슷한 여러 주자들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악연도 두 세력간 화학적 결합을 방해하는 요소다. 문화일보는 12일 김 위원장이 2011년 8월 안 대표가 서울대 교수 시절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사연을 전했다. 김 위원장이 ‘정치 뜻이 있으면 국회의원 선거에 먼저 나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먼저 배우라’고 했는데 안 대표가 국회의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며 자리를 뜬 사연이다. 

안 대표는 문화일보에 “당시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을 뿐인데 김 위원장이 그냥 나갔다”고 말했는데 서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첫 만남부터 유쾌하지 않았던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은 기자들이 안 대표 관련 질문만 하면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불성실하게 답해왔다. 

김 위원장이 내년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 킹메이커 역할까지 맡겠다고 나선 가운데 안 대표가 국민의힘 대권주자와 연대하기엔 쉽지 않은 여건이다. 그렇다고 안 대표가 야권의 서울시장 단일 후보가 돼 당선까지 될 가능성이 높다고만 볼 수도 없다. 

안 대표는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로 끊임없이 하락세를 보였고, 차기대권 지지율도 한 자리수를 기록하고 있어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시사저널 기고에서 “국민의힘 입장에서 안철수는 ‘계륵’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안 대표를 향한 언론의 과한 관심은 국민의힘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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