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이 ‘보도국 AD(조연출)’로 6년 일했다. 자료 사진 하나부터 영상 등록까지 모든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컨펌’ 받았다. 회사 필요에 따라 맡은 프로그램도 3개까지 늘었다. 거의 모든 수입을 한 방송사에서 벌었다. 1년 차 땐 매일 새벽 3~4시에 나와 하루 10~15시간씩 일했다. 이후 교대 근무로 시간은 줄었지만 최근까지도 매주 40시간은 꼬박꼬박 일했다. 그런데 회사는 법원에 이렇게 말한다. ‘주 15시간도 일하지 않은 독립 프리랜서’라고.”

청주에서 200여㎞ 떨어진 전남에 ‘또 다른 이재학’이 있었다. 2014년 한 방송사에서 6년간 일하다 지난해 퇴사한 AD 박수원(가명)씨다. 오랜 기간 ‘무늬만 프리랜서 AD’로 일한 것부터, “나도 노동자”라고 주장하자 그의 업무 경험 대부분을 부인하는 회사와 싸워야 하는 처지까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는 6년을 일했지만 계약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14년 차’ 이재학 PD도 마찬가지였다. 소속 부서는 달랐다. 박씨는 기자들이 뉴스와 보도프로그램을 만드는 ‘보도국 AD’였다.

▲자료사진. ⓒpixabay.
▲자료사진. ⓒpixabay.

 

보통의 AD보다 업무는 다양했다. AD는 각종 PD 업무와 편집·촬영을 보조한다. PD(이 경우엔 기자) 지휘 아래 작가, VJ, 리포터 등과 협업하며 기획 회의, 구성안 작성, 촬영, 편집, 검수, 송출 순으로 매회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여기에 박씨는 통상 FD(Floor Director)가 맡는 ‘스튜디오 진행 보조’도 했다. 회사에 필요한 업무를 다양하게 도맡아 업무 밀도가 높았다.

고된 새벽 출근, 그림 찾고 편집하고 FD 일까지 하고

고인이 된 이재학 PD는 “초년생 땐 방송이 즐거우니 힘든 줄 모르고 밥 먹듯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박씨도 입사 초기 격무에 시달렸다. 25분짜리 아침 뉴스 프로그램을 60분으로 개편한 때다. 7시30분 생방송에 맞추려면 적어도 새벽 4시30분 전에 출근해야 했다. 새벽 2시 출근해 저녁 6시 넘어 퇴근할 때도 잦았다. 일이 익숙해지고 새벽 4시30분 출근했고 사전 녹화와 편집·촬영까지 마치면 보통 오후는 다 갔다. 잠 잘 시간도 부족했지만 지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교대 근무가 시작되기 전 1년 8개월간의 일상이다.

박씨는 아침 프로그램에서 각종 코너 영상을 편집했다. 먼저 ‘날씨’ 코너에 쓰일 그림을 찾거나 필요한 촬영도 맡았다. 3~10월 프로 야구 시즌엔 3~5분 분량의 야구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었다. 나머지 비시즌기간엔 이 시간을 대체하는 다양한 코너 영상을 편집했다. 촬영이 필요할 땐 촬영도 나갔다. 앵커 옆 우측 상단에 뜨는 ‘어깨그림’도 찾았다. 새벽 4시30분부터 6시20분까지 이뤄지는 작업이다.

▲박수원(가명) AD가 진행 보조로 일했던 스튜디오 풍경. 관련 프로그램 엔딩 크레디트에도 'AD'로 적혔다.
▲박수원(가명) AD가 진행 보조로 일했던 스튜디오 풍경. 관련 프로그램 엔딩 크레디트에도 'AD'로 적혔다.

 

직후 스튜디오로 나갔다. 6시20분부터 사전녹화가 진행됐다. 박씨는 생방송이 끝날 8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방송 진행 보조(FD)를 했다. 촬영장 스튜디오와 PD가 ‘큐사인’을 날리는 부조정실을 연결하는 가교다. 머리에 인터컴을 쓰고, 쉴 새 없이 전달되는 PD 지시를 즉각 전달하면서 앵커가 대본을 보고 읽을 수 있게 프롬프터도 다뤘다. 출연진을 안내했고, 스튜디오 스태프들의 긴급한 요구를 현장에서 처리해주거나 PD에게 보고했다. FD 역할이 없으면 생방송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이 일 하다, 저 일도… 보도국 일 도맡은 AD

방송이 끝나도 바로 퇴근할 수 없었다. 입사 초기엔 매일 오후 사전 녹화를 진행하거나 내일 영상에 쓰일 촬영도 나가야 해 오후 내내 일한 적이 많다. 2년 정도 후 이 일과는 거의 사라졌지만, 다음날 새벽에 나갈 기사나 영상을 편집해 서버에 등록하고 나서야 퇴근했다. 적어도 하루 6시간 이상씩 방송국에서 일했다.

한 회사 관계자는 “박씨는 착실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잘해 보도국에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8년 5월 회사로부터 공로패도 받았다. 차차 맡은 프로그램도 늘었다. 입사한 지 2년이 지나자, 보도국 기자의 제안으로 월 1회 꼴로 방영되는 특집 토론 프로그램 편집을 맡았다. 또 10개월이 지나자 매주 1회 편성된 대담 프로그램(50분 분량) 편집에 참여했다. 그렇게 2017년 7월부터 퇴사 전까지 보도국 프로그램 3개를 동시 작업했다.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업무 흐름은 바뀌었지만 최근 3년 근무 형태는 거의 일정했다. 아침 뉴스 프로그램을 맡은 월·수·금요일엔 새벽 4시 30분 출근해 일정을 소화했다. 아침 프로그램이 끝나도 사전 녹화 촬영이나 나머지 프로그램들 편집을 보고 퇴근했다. 화·목요일엔 점심시간 즈음에 출근해 특집토론과 대담 프로그램 편집 업무를 봤다. 이날도 적어도 4시간씩은 방송국에 붙어서 일했다.

이렇게 일한 박씨를 두고 회사는 “일한 시간이 일주일에 15시간도 안된다”고 고용노동청과 법원에 주장한다. 나아가 “박씨는 긴밀한 지휘·감독 없이 독자로 일한 프리랜서다. 우리 회사에는 AD란 공식 직책도 없다. 명함은 스스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다. 우리가 채용한 적 없고 그 당시 제작담당자가 채용했다”고도 주장한다.

▲ 제작진 명단에 박씨가 'AD'로 등록됐다. 관련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 제작진 명단에 박씨가 'AD', '촬영·편집' 등으로 등록됐다. 관련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매 과정 컨펌없인 진행 안 되는데 독자 프리랜서?

AD 직책은 박씨가 맡았던 프로그램 몇 개만 찾아봐도 확인된다. 퇴사 2일 전인 지난해 12월29일 방영된 특집 프로그램 제작진 명단엔 ‘AD 박수원’이 적혀있다. 특집 프로그램 2016년 방영분들도 마찬가지고, 나머지 대담 프로그램 엔딩 크레디트에도 ‘AD 박수원’이 적혔다. 보도국 제작편집부 카카오톡방에서도 박씨는 AD라고 불렸다.

회사는 박씨가 법원에 명함을 증거로 내자 본인 스스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씨 휴대전화엔 작가, VJ, AD들 명함을 일괄로 만들겠다는 한 PD의 지시 메시지가 남아있다.

“영상 편집 다 했어? 작가에게 소스 줘서 자막 나오게 하고.” “의뢰서 만들어놨으니 들러서 확인하면 돼.” “타이틀과 중간 브릿지 영상 되도록 빨리 넘기자.” “(야구) 경기장면 와이드로 한 장, A선수와 B선수를 한 판에 넣어서 한 장, 이렇게 두 장으로 하자.” 박씨가 일상적으로 들은 보도국 업무 지시다.

보도 프로그램 특성상 AD는 자료 사진 하나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배경 그림 하나 고르는 것부터 삽입할 문구 작성, 코너 영상 편집, 종합편집 후 영상 재편집 등 모든 제작 과정에서 기자들 ‘컨펌’을 받았다. 확인을 받지 않으면 그 이후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특히 스튜디오 진행에선 PD 지시에 따라서 움직였다.

▲박씨가 보도국 기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했던 업무 지시·보고 내용을 재구성.
▲박씨가 보도국 기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했던 업무 지시·보고 내용을 재구성.

 

출·퇴근 관리는 어떨까. ‘위장 프리랜서’들이 판사에게 실질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이들은 취업규칙 없이 스스로 성실한 근태를 지키기 때문이다. 퇴직자 ㄱ씨는 “한 VJ가 실수로 영상 편집본을 약속 시각보다 늦게 보냈더니 이후 업무량을 확 줄여서 수입이 5분의 1로 준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출근해야 할 시각에 보이지 않으면 작가나 주변 사람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온다”고도 밝혔다.

회사는 박씨의 출근 시간이 “새벽 4시대, 5시대, 6시대로 다양하다”며 “용역계약상 업무 처리에 지장 없는 시간에 나왔지 회사가 관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상 정규직 PD도 프로그램 제작 중엔 불규칙하게 출·퇴근할 때가 적지 않다. 박씨는 “오랜 기간 새벽 4시30분에 출근했고 첫 출근 때 PD가 이 시간을 정해줬다”며 “2교대 출근, 프로그램 구성 변경 등으로 예상 편집 시간이 바뀐 측면이 있지만 사전녹화 시작 전엔 무조건 업무를 마쳐야 했다”고 반박했다.

무늬만 프리랜서 설움… ‘진상조사보고서’ 남긴 이재학 PD

박씨는 이 모든 주장이 억울하지만 ‘15시간 미만 일했다’는 말에선 지난 6년의 삶이 부정당한 좌절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두세 번 새벽 출근을 했고 6년 가까이 일하면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사람을 능력에 따라 쉽게 버리는 방송 현장에서 6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며 “지난 업무와 커리어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모든 관계도 부정당하는 경험을 홀로 마주하고 견디며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용노동청은 회사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박씨의 퇴직금 진정 사건을 기각했고, 검찰에도 무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사건을 넘겼다. 박씨는 지난 4월경 지역 고용노동청과 법원에 각각 퇴직금 지급 진정·고소 및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고용노동청은 지난 7월 “박씨가 평균 주 15시간 이상 일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프리랜서임을 인식하고 근무를 시작하는 등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고의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청주방송 편집실에서 영상 편집을 보고 있는 고 이재학 PD.
▲청주방송 편집실에서 영상 편집을 보고 있는 고 이재학 PD.

 

소송은 진행 중이다. AD는 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적이 있다. 2012년 청주방송 AD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이윤재씨 산재 인정 1심 판결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13년 10월 “그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이 담당 PD에 의해 결정됐고 그의 지시·감독을 받았다”며 회차 당 받은 보수에 대해서도 “업무 결과에 따라 보수가 변하지 않았고 프로그램마다 용역계약을 체결해 수수료를 지급받았다고 보기 어려워 근로 제공의 대가”라고 밝혔다.

“삶이 부정당했다”는 말은 이재학 PD도 남겼다. AD로 일하다 PD가 된 그는 기획 회의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든 과정에 정규직 PD의 ‘컨펌’이 필요했다. 자신이 독자적으로 편집할 수 없었으나 청주방송은 법원에서 “지휘·감독을 받지 않은 프리랜서”라고 밝혔다. 실제 업무지시를 했던 국장도 법정에서 제작 지휘를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유서에 “억울해 미치겠다. 왜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썼다.

고 이재학 PD 사망의 경위가 담긴 ‘진상조사보고서’는 최근 검찰에 참고자료로 제출됐다. AD를 비롯한 각종 방송계 비정규직 업무 환경이 상세히 분석된 자료다. 노동자 1명이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업무 환경을 입증하는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부터 청주방송의 자료 은폐와 허위 주장 분석도 자세히 담겼다. 박씨를 대리하는 이소아 변호사는 “방송 업무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방송 제작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 보고서 AD 설명 부분이 박씨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더라.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실제 어떤 지휘·감독을 받는지 등 이들이 처한 상황도 상세히 설명돼있다”고 제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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