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10월26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홍순탁 회계사,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지정했습니다. 그러자 이재용 부회장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재판부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이 부회장 측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가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1월10일부터 12일까지 5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를 중심으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 중립성 논란과 파기환송심 5차 공판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이재용 감형사유로 변질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 선정은 올해 1월 결정됐습니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4차 공판에서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두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용된다면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양형조건 고려와 함께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을 점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릴 것을 예고했습니다.

재판부의 양형고려 입장은 곧바로 논란이 됐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 설치가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을 바꿔 준법감시위원회를 잘 운영할 경우 형량을 낮춰줄 수 있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특검은 준법감시위원제도라는 재판부의 이례적인 요구가 ‘재벌 봐주기’라며 반발했고, 대법원에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습니다.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판단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통해 감형사유를 만들어줬다는 취지였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사유가 될 수 있다는 재판부 입장이 나오자 이 부회장 측은 적극 공세에 나섰습니다. 한겨레 <이재용 쪽 “삼성 준법감시위를 감형사유로 고려해달라”>(3월13일 고한솔 기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준법감시위원회가 감형사유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재판부의 입장 변동을 기회삼아 감형사유 피력에 나선 것입니다.

특검이 제기한 공정성 문제 외면한 재판부

대법원은 특검의 재판부 기피신청을 기각했고, 9개월만에 공판이 재개됐습니다. 하지만 재개된 공판에서도 특검과 재판부는 다시 충돌했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감시할 전문심리위원을 두고 이 부회장 측 추천 후보인 김경수 변호사의 중립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특검이 김경수 변호사의 전문심리위원 추천을 문제 삼은 이유는 김 변호사가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의혹과 연루된 안진회계법인의 변호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역시 합병과정이 다뤄지는 만큼 중립성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추천한 참여연대 소속 홍순탁 회계사를 문제 삼았습니다. 홍 회계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특검은 홍 회계사는 공익적 목적으로 한 활동이지만 김 변호사는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재판부는 두 인물 모두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제도는 법원 직권으로 결정된다. (합병)사건의 실체를 말하는 것은 전문심리위원의 점검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끝내 김 변호사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선정했습니다.

재판부와 특검의 갈등은 전문심리위원들의 심리기간을 정하는 문제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재판부는 11월 30일까지 평가를 마치게 하고 위원들의 의견진술을 듣기로 했지만, 특검은 자산 400조 원인 삼성그룹의 준법감시 활동평가를 3주 안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검의 기피신청으로 재판이 10개월간 지체된 점을 부각하며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조중동, 재판 공방조차 전하지 않았다

5차 공판이 열린 11월10일부터 3일간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의 관련보도는 8건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이 3건 보도했고 한겨레가 2건, 매일경제·한국일보·한국경제는 각각 1건씩 보도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는 한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의 위법행위로 발생한 법정 공방을 전달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 11월10일부터 12일까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 관련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1월10일부터 12일까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 관련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파기환송심 재판을 다룬 보도 대부분은 이 부회장 측과 특검의 공방을 전했습니다. 한겨레는 <‘삼성 전문심리위원’ 두고 재판부-특검 또 날선 공방>(11월10일 장예지 기자)에서 “특검과 이 부회장 쪽은 상대방의 추천인을 ‘중립적인 인물로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일보 역시 <심리위원 놓고…‘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특검 2시간 설전>(11월10일 윤주영 기자)에서 “재판 재개 이후에도 특검과 재판부의 옥신각신이 그치지 않았다. 전문심리위원 구성을 둘러싼 재판부와 특검의 신경전 탓에 예정된 다른 공판 절차들은 재판 2시간이 지나서야 진행될 수 있었다”라며 당시 재판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경향신문 <이재용·특검 측, 서로 “중립성 부족한 인사”>(11월10일 박은하 기자)에서도 같은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경향신문 ‘평가기준 미비’, 한겨레 사설로 재판부 비판 

경향신문은 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미흡하다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이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검이 재판부에 제출한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검증 평가기준을 입수한 경향신문은 11월11일 <“삼성준법감시위 실효성 검증, 이재용 측 평가기준 미흡”>(유설희·박은하 기자)<“당연한 내용들만 형식적 나열… 실질적 평가 사실상 불가능”>(유설희 기자)에서 전문가 4명과 함께 이 부회장 측과 특검팀이 재판부에 각각 제출한 준법감시위원회 평가기준을 분석했습니다.

검증에 참여한 최승재 변호사, 양채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이상훈 변호사, 이총희 회계사는 모두 이 부회장 측이 제시한 평가기준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위법행위 관여자 주요 보직 배제’, ‘준법교육 실시’, ‘위법행위 대응 및 예방을 위한 조치’ 등의 평가분야에 대해 “기업 총수 비리를 실효적으로 방지할 만한 조항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유일하게 준법감시위원회 평가와 관련해 사설을 쓴 한겨레는 <사설-‘삼성 관련 변호사’에게 준법감시 평가 맡긴 법원>(11월11일)에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올해 1월 준감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기로 한 것부터 비판이 많았는데, 활동내용을 평가하는 절차마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재판부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김경수 변호사의 안진회계법인 변호를 두고 “영리 목적으로 삼성 관련 사건을 변론하고 있다”며 “‘삼성 관련 변호인’을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놓고 어떻게 객관적이 중립적인 평가를 받겠다는 말인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 의견 ‘따옴표’로 전한 한국경제

▲ 11월10일 재판부 입장 부각한 한국경제
▲ 11월10일 재판부 입장 부각한 한국경제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을 검증한 경향신문, 재판부를 비판한 한겨레와 달리 한국경제는 재판부 의견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법원 “삼성 준법감시위, 유일한 양형요소 아냐”>(11월10일 남정민 기자)는 제목에서부터 재판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기사 본문에서도 “법원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양형 요소는 아니며 실효적인 운영이 입증될 때만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며 재판부 의견을 중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물론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 운영만으로 이 부회장을 감형해주겠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는 1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횡령과 배임사건 항소심에서도 준법감시실을 신설하라고 요구한 뒤 1심보다 낮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준법감시제도가 감형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의혹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 상태인 이 부회장의 재구속 여부는 재판장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된 감시 없이 재판부 입장을 받아쓰기만 한다면 또 한 번 ‘기업 봐주기’ 보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11월10~12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