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같은 소재로 얘기를 시작하는 것에 미리 용서를 빈다. 무려 ‘가족오락관’ 얘기다. 가족오락관을 기억하는 오래된 독자라면 전설의 게임 ‘고요속의 외침’을 기억할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헤드폰을 쓰고 옆 사람이 한 말을 전달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 전달될 때마다 말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게임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은 전달될수록 항상 강렬하고 단순해진다. 물리학은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한다고 하지만 말은 전달될수록 자극성이 증가한다.

기자들은 일요일 출근이 많다. 과거 일반 직장인들이 일요일 하루만 쉴 때, 기자들은 토요일 하루만 쉬었다. 일요일에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월요일 신문을 위한 일요일 출근은 기자의 숙명이거니 했다. 그런데 일반 직장인들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쉬게 돼도 기자들은 일요일을 온전하게 쉴 수는 없다. 월요일 신문은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자가 일요일에 정상 출근할 수는 없으니 보통 조를 짜서 일요일에 출근한다. 동료가 늦잠 자는 일요일 출근을 해서 기삿거리를 찾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가족오락관을 본다고 해도 웃을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일요일에는 보도자료도 별로 나오지 않으니 기삿거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이럴 때, 15일 일요일 오전 새벽 5시에 올라온 연합뉴스의 “내년 정부예산안, 상임위 예비심사서 11.4조원 늘어”라는 기사는 단비와 같은 뉴스다.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가 한창이다. 16일 월요일부터 예결위 예결소위가 시작한다. 예결위 소위 심의를 앞두고 상임위 심의 결과를 전하는 뉴스는 가치가 있다.

▲ 국회. 사진=민중의소리
▲ 국회. 사진=민중의소리

문제는 연합기사가 재생산될수록 강도가 세진다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처음 올라온 연합뉴스의 기사는 비교적 건조하다. 상임위에서 11조원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드라이하게 전하면서 ‘불어났다’, ‘지역구 민원 예산’ 등의 단어를 통해 행간에서만 살짝 부정적 뉘앙스를 뒀다. 

그런데 연합뉴스를 처음 받아쓴 서울경제 제목은 “556조 슈퍼예산 깎겠다더니...국회, 상임위서 11.4조원 늘려”로 변했다. 기사 리드는 “국민의힘이 15조원을 삭감하겠다고 밝힌 2021년 예산안이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11조원 넘게 불어났다.” 국회가 깎지는 못하고 증액한 것은 잘못됐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생산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16일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정부 예산 감시하랬더니 ‘묻지마 증액’한 국회 상임위 작태” 한층 강해졌다. 비장미까지 엿보인다. 화룡점정은 한국경제 사설 제목이다. “재정파탄 견제는커녕 ‘묻지마 예산증액’하는 무책임 국회”다. 숭고미까지 느껴진다.

문제는 상임위 11조원 증액은 국회 예산안 논의과정 절차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3차 추경 세출 규모는 24조원이었다. 국회 상임위 예비심사를 통과하면서 3조원이 증가했다. 추경 때는 정부안 대비 12%이상 증대했는데 이번에는 2%남짓 증대했다. 그런데 12% 증대된 3차 추경 상임위 예비심사액은 예결위 본심사를 거치며 정부 원안보다 약간(0.2조원) 감액돼 최종 통과됐다. 

정부 예산안은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쳐 예결위 본심사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그런데 각 상임위 위원들은 자기 상임위 사업을 증진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복지위 위원들은 복지위 예산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국토위 위원도 국토위 예산이 늘기 바란다. 그래서 각 상임위에서 예비심사를 거치면 일반적으로 예산 금액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예비심사를 마친 예산안이 예결위에서 본심사를 다시 하는 이유다. 예결위 본심사는 감액 위주로 심의하게 된다. 예결위 증액심사는 감액심사가 다 완결된 이후에나 논의된다. 그러나 보통 감액심사가 다 완결되기 전에 국회는 파행을 겪고 예산안처리 시한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서 증액심사는 예결위 회의석상에서 단 한마디도 이뤄지지 않은 채 막을 내리게 된다. 실제 증액은 소소위라는 이름의 밀실협의에서 이뤄진다.

결국, 좀 거칠게 말하면 상임위 예비심사는 증액 위주로, 예결위 본심사는 감액 위주로 논의된다. 그래서 증액 위주의 예비심사 결과 증액된 것을 ‘묻지마 증액’, ‘작태’ 또는 ‘재정파탄’, ‘무책임 국회’라는 단어를 써서 비판하는 것은 어색하다. 실제 지난해 이맘때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도 10조원 이상 순증됐다. 지난해에는 상임위에서 10조원 증액에 이런 거센 표현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일요일 새벽에 연합뉴스가 기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나만 더 지적하자. 작년 예산안 기사를 찾아보니 “이어진 예결위 소위 감액심사에서는 상임위에서 넘어온 감액 의견을 더불어민주당이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다”는 한 유력 언론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상임위가 감액한다면 예결위에서는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법이 그렇다. 그래서 저 기사는 틀렸다. 그러나 상임위 증액 의견은 예결위에서 거의 무시하고 정부안 원안에서부터 논의하곤 한다. 이를 예결위원들의 특권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예결위원들의 꼰대 같은 관행이 있다는 사실을 언론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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