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가 직속 시립예술단의 뮤지컬단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단원들이 피해자를 역신고하자 진위확인 절차 없이 피해자까지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논란이 인다. 파주시는 “신고자(최초 가해지목인)의 주장 외에 별도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면서도 “조사와 징계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초 신고한 여성 단원들은 앞서 예술단 내 불합리한 운영과 부당 업무지시에 대해서도 진정을 제기한 상태로, 이들이 징계위 결과 해촉될 시 예술단의 근본 운영에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1년 단위로 계약 연장 여부를 평가 받는 비정규직이다.

파주시립예술단 뮤지컬 단원인 강희정‧김진영‧이지현씨(가명)는 지난 7월 말 단원 A씨와 B씨를 상대로 성희롱 피해를 신고했다. A씨와 B씨가 연출자와 안무자의 업무상 지시를 일부 맡는 한편 인사평가에 비공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업무환경에서 다른 단원에게 성적 괴롭힘이나 비하 발언을 일삼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A·B씨의 주도로 심각한 수위의 성희롱 발언이 뮤지컬단 내에 횡행했다고 말한다. A씨는 지난 3월 10여명의 단원이 속해있는 뮤지컬단 단체톡방에 공중목욕탕에서 남성 성기를 드라이어로 말리는 라디오 사연을 담은 영상파일을 공유해 호응을 유도하고, 성적인 발언을 수시로 했다. 성희롱 신고자를 비롯한 복수의 단원에 따르면 A씨는 공연연습 중 일상적으로 여성 단원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묘사하거나 ‘○○이 큰 여자가 좋다’며 성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A씨가 지난 3월9일 파주시립예술단 뮤지컬 단체방에 남성의 성기를 찍은 영상을 공유한 대화 기록.
▲A씨가 지난 3월9일 파주시립예술단 뮤지컬 단체방에 남성의 성기 관련 라디오 사연을 담은 파일을 공유하고 B씨와 안무자가 호응하는 대화 기록.

성적 괴롭힘은 개인 대화에도 이어졌다. A씨가 이지현씨와 나눈 대화 기록을 보면, A씨는 B씨에게 대화 맥락과 무관하게 “오늘 오빠랑 뜨밤띠(뜨거운 밤)?”(지난해 8월) “(B씨가 여행 다녀왔다고 하자) 조카 생김?”(올해 1·3월)을 비롯한 성희롱 발언을 했다. 복수 단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해 출산 뒤 복직하고 체조를 하고 있는 김진영씨에게는 “애를 잘 낳아서 그런지 골반이 잘 벌어진다”고 말했다. 단원 D씨는 “여성 단원들은 그럴 때마다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적극 저항하지 못했고, A씨는 그것을 보고 재밌어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단원들과 공연 연습 중 성적인 농담을 한 뒤 “나만 쓰레기냐”고 동조를 구하거나, 키가 작은 남성 단원에게 “X만아”라고 부르는 등 A씨에게 적극 동조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요약해 신고했고, 파주시는 가해자 조사에 들어갔다.

상황이 일그러진 건 가해자로 조사받던 A씨가 8월10일 외려 고발자 3명을 성희롱으로 맞고발하면서다. 뒤이어 B씨, 연출자의 지인으로 단원에 채용돼 총무단장을 맡는 C씨도 여성 단원들을 신고하고 나섰다. A·B씨는 11월 초 단원들이 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파주시립예술단지회의 김정훈 지회장도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지난 2018년 9월~2020년 3월17일 A씨가 뮤지컬단원인 이지현·강희정씨 개인톡방과 뮤지컬 단체톡방에서 업무와 무관한 성적 농담을 한 캡쳐 기록.
▲지난 2018년 9월~2020년 3월17일 A씨가 뮤지컬단원인 이지현·강희정씨 개인톡방과 뮤지컬 단체톡방에서 업무와 무관한 성적 농담을 한 캡쳐 기록.

A씨는 △이지현씨가 전 애인 관련 성적 발언을 했고 △김진영씨가 “임신이 안 된다”고 말하자 자신은 성적 수치심에 “아무데서나 성행위를 하면 된다”고 답한 바 있으며 △강희정씨가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찍어보내며 살이 쪘다고 했다는 것 등 총 10가지 피해를 주장했다.

강씨와 김씨, 이씨는 A씨와 B씨 등의 신고 내용이 사실무근이라 관련 기록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 촬영과 공유 등 일부 행위는 성적 함의가 없을 뿐 아니라 A씨가 촬영 앞뒤로 호응했고, A씨가 평소 스스로 옷을 젖히고 ‘살찌지 않았느냐’며 만져보라고 요구하는 등 분위기를 주도한 맥락에 비춰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들 여성 단원은 뮤지컬단의 연출자와 안무가의 불합리한 운영이 평단원 사이 권력관계를 싹틔웠다고 말한다. 연출자와 안무자는 대부분 자리를 비우며 A씨와 C씨에게 연출 혹은 안무 업무와 업무 지시를 맡겼다. 인사 평가에선 A씨와 C씨를 비롯한 일부 단원 의견에 의존했다. 이에 평단원인 A·C씨가 이들의 인사평가에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같은 평단원 사이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이 발생해도 내부 제지가 어려워졌다.

문제는 맞고발을 접수한 파주시의 대응이다. 파주시는 지난달 13일 A·B·C씨의 피해 주장에 사실관계를 조사하지 않은 채 첫 신고자들을 모두 성희롱 가해자로 인정했다. 파주시는 지난 8~9월 각 신고자(6명)의 주장을 취합한 뒤 성고충 심의위원회에 제출했고, 심의위는 9월28일 한 차례 심문을 거친 뒤 6명 모두에게 성희롱 가해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여성 단원들은 자신들의 가해 혐의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단원 면접을 비롯한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씨 등 3명은 재조사도 신청했지만 거부됐다.

▲파주시청. 사진=파주시청 홈페이지
▲파주시청. 사진=파주시청 홈페이지

강씨와 김씨, 이씨는 파주시가 조사 없이 사건을 끝맺는 데에 ‘파주시가 문제의 뿌리인 시립문화예술단 내 연출자와 안무자의 직무유기를 근본 해결할 의지가 없어서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앞서 7월16일 파주시 감사과에 연출자와 안무자의 직무유기와 이로 인한 성희롱 문화, 추가근무 강요, 부당 업무지시, 모성보호의무 위반, 폭언과 욕설 등에 진정을 제기한 상황이다.

이씨는 미디어오늘에 “예술단 내에 만연한 성희롱과 인권침해적 업무환경에 관리소홀을 시정해달라 요구했지만 보복성 성희롱 맞접수가 돌아왔고, 해촉 위기에 처했다”며 “파주시의 직무유기이며, 예술단의 근본 운영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주시 문화예술과는 이날 강씨, 김씨, 이씨와 A씨, B씨, C씨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파주시립예술단지회는 같은 날 징계위가 열리기 앞서 파주시의 시립예술단 관리감독 부실과 피해자 징계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공공운수노조 파주시립예술단지회는 같은 날 징계위가 열리기 앞서 파주시의 시립예술단 관리감독 부실과 피해자 징계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공공운수노조 파주시립예술단지회는 같은 날 징계위가 열리기 앞서 파주시의 시립예술단 관리감독 부실과 피해자 징계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파주시립예술단지회 제공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파주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주장의 진위를 조사하지 않은 채 주장을 담아 심의위에 넘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심의위원회는 전체적인 논거를 따져 심의위원회에서 종합 검토했고, 평단원 사이의 쌍방 성희롱으로, 단원 간 권력관계에서 비롯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고충위원회 심의위원장을 맡은 파주시 복지정책국장은 “서로 성적으로 지나친 농담을 하다가 갈등이 불거지고 나니 서로 신고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각 신고자 주장이 사실인지를 가리기 위해 예술단 단원 등 참고인 조사 필요성을 두고는 “진행하지 않았고, 필요성도 없다고 본다. A씨와 C씨, B씨의 주장이 일치해 서로 뒷받침해 사실로 판단했다”고 했다.

A씨는 통화에서 “성적인 것을 암시하는 발언조차 한 적이 없다”며 “그들은 증거가 없고, 나는 있다. 오히려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성희롱 정황이 담긴 대화 기록이 존재한다는 지적에는 “시작은 그 단원들의 불법 녹음이었다”고 했다. B씨와 C씨는 취재에 응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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