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13일 국회에서 후보자 추천을 위한 2차 회의를 개최했지만 ‘후보자 추천을 위해 추가로 확인할 사항이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오는 18일 후보자 추천을 위한 논의를 계속하기로 하고 이날 회의를 마쳤다. 

정부·여당에선 이날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후보군을 두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대화에서 ‘오늘 회의에서 시간끌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오늘 끝장토론해야 한다”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그러나 후보자를 전혀 압축하지 못한 채 일정이 미뤄졌다. 

여당에선 공수처법을 개정해서라도 연내 출범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협치를 내건 당 대표를 선출해놓고 ‘공수처장 선출에 있어 야당 비토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까지 뒤집고 공수처 출범을 강행하는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연내 출범하려는 여당, 지연전략 펴는 야당

정부·여당은 이미 지난 2018년 공수처법 연내 통과를 목표로 했지만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나 상설특검법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자”고 반대해 무산됐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가결했다.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 법정시한(7월15일)을 훌쩍 넘겼기 때문에 11월 안에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려 인사청문회를 진행해 올해 안으로 공수처를 출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수처장 최종 후보를 선정하려면 7명의 추천위원 중 6명이 찬성해야 해서 야당(2명 추천)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공수처장 추천위원 추천을 미루며 시간을 끌던 국민의힘은 공수처장 후보로 석동현 변호사를 추천했다. 석 변호사는 “공수처는 태어나선 안 될 괴물기관”이라고 입장을 밝힌 인사다. 합리적인 공수처장 후보를 뽑기 위해 협조하는 게 아닌 공수처 출범 자체를 무산·지연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백혜련 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고 국회의장이 추천권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여당이 공수처 출범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21대 총선 공약으로 공수처 폐지를 내걸었던 국민의힘은 공수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 지난 13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모습. 사진=국민의힘
▲ 지난 13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모습. 사진=국민의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대통령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아직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공수처 출범을 무산시킬 때와 비슷한 주장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을 감시하는 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이제 공수처로 대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급한 이낙연, 협치 물 건너가나

민주당의 딜레마는 협치와 공수처 출범 강행이 상충되는 모양새라서다. 이낙연 의원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언론에서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과거 개인적인 친분 등을 보도하며 ‘소모적인 정쟁이 아닌 여야 협치의 그림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짧은 당대표 임기 동안 정권 차원의 개혁과제인 공수처 출범을 성공시켜야 자신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아 향후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다. 

게다가 조국 전 장관 때부터 시작한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지속하는 가운데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상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은 측면이 있지만 내부에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비판이 과하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고 전했다. 여권에서도 연내 공수처 이슈를 마무리하면서 윤 총장과 갈등에 힘을 뺄 필요성이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여당의 공수처 타임라인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대표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고, 만약 여당이 야당의 비토권을 박탈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 ‘이낙연마저 협치를 저버렸다’고 비판할 수 있다. 공수처에 대한 야당의 태도가 강경한 가운데 이 대표의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 지난 9월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남 모습. 사진=민주당
▲ 지난 9월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남 모습. 사진=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9월 박병석 국회의장과 함께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만나 매달 만나 회동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김 위원장을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면서 이미 이 대표에게 쏠렸던 ‘협치’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상실됐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기 위해 당헌까지 개정하는 등 이낙연 당대표 체제에 득점보다 실점이 더 높은 분위기다. 

이 대표는 지난 9월말 공수처 출범 관련해 “야당에 끌려다니는 것은 협치가 아니라 굴종”이라며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 절차대로 심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건 이런식으로 공수처법 개정과 협치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과제를 다 처리하겠다는 말장난이 아니다. ‘이낙연의 독주’라는 비판을 감당하면서 국정과제를 완수하거나,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 협치의 구도에서 공수처를 출범시킬지 결단했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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