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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프리랜서’ 보도국 작가들 “나도 노동자” 싸움 시작됐다
‘가짜 프리랜서’ 보도국 작가들 “나도 노동자” 싸움 시작됐다
[전태일 50 ‘제2의 이재학들’] ② 부당해고 주장에 퇴직금 청구까지 올해만 3건 “창작 업무 아냐, 데스크 종속된 보도 인력”

방송사 ‘프리랜서’ 보도국 작가들이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올해 확인된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례만 2건이다. 모두 직원처럼 회사에 종속돼 일했으나 말 한마디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며 “방송작가는 무늬만 프리랜서”라고 주장한다.

‘10년 차 방송작가’ 김선영씨(38·가명)는 지난 9월 MBC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다. 그는 만 9년 동안 같은 프로그램에서 직원처럼 일했지만 전화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고 부당 해고됐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매일 새벽 6시 시작하는 MBC 아침뉴스 프로그램 ‘뉴스투데이’에서 일했다. ‘아침신문보기’ 코너를 맡아 매일 5분 분량의 보도 원고를 썼다. 당일 주요 일간지에서 보도가치가 높은 기사를 6~8개 골라 내용을 전하는 코너다. 중간에 다른 코너를 맡았던 4년을 빼면 김씨는 2011년 입사부터 5년 넘게 이 코너를 맡았다.

퇴사는 갑작스러웠다. 지난 5월 데스크가 전화해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코너를 폐지하게 됐다”며 정확히 1달 후 계약이 해지된다고 알렸다. 눈앞이 깜깜했지만 “네”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퇴사 전 1주일 동안 새로 뽑힌 작가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나왔다. 코너는 폐지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방영 중이다.

▲지난 9월 MBC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작가 김선영씨(가명) 근무 모습.
▲지난 9월 MBC를 상대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작가 김선영씨(가명) 근무 모습.
▲김선영 작가가 맡았던 '뉴스투데이' 코너 중 '아침신문보기' 갈무리.
▲김선영 작가가 맡았던 '뉴스투데이' 코너 중 '아침신문보기' 갈무리.

 

“사람을 프리랜서로만 뽑는 방송국의 문제”

그는 MBC와 1년 단위 ‘업무위탁(프리랜서)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엔 한쪽이 2주 전에만 통보하면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다. 김씨 스스로 서명했지만 내용에 동의한 건 아니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자동 퇴사인데다 9년 근속한 세월이 있으니 형식적 계약이라고 여겼다.

김씨는 “나는 ‘가짜 프리랜서’다. 직원을 뽑아 쓸 자리에 프리랜서만 채용하는 방송국이 있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관행이 수십 년 반복되며 ‘방송작가=프리랜서’라는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서 업계도, 사회도 작가들이 얼마나 방송사에 종속돼 일하는지 무관심하다고 덧붙였다.

MBC에 따르면 김씨는 독립적으로 원고를 작성한 프리랜서다. 사전·사후로 피드백은 주지만 PD가 최종적으로 프로그램 내용을 검토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서울지노위에 밝혔다. MBC가 원고 작성 등 작가의 업무 내용을 정하거나 일상적인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출·퇴근 지시도 없었으며 다른 회사와의 계약도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김씨는 원고를 독자적으로 작성해 MBC에 납품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 대화 내용을 보면 사정은 달랐다. 데스크는 원고 작성에 깊숙이 관여했고 지시도 구체적이었다. 김씨는 “코너 내용을 결정할 권한은 전혀 없다. 데스크 기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지를 정해야 일을 하는 작가였다”며 “생방송 뉴스여서 지시가 전화, 메신저, 대면 대화를 통해 더 촘촘하고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업무는 새벽 3시30분 시작됐다. 5시50분까지 원고를 마치려면 이때 출근해야 했다. 새벽에 배달된 신문 12종을 훑는 게 첫 번째 일이다. 이 중 2부씩 배달된 8종은 따로 골라 차장기자에게 갖다 줬다. 지난 밤에 보도됐거나 오늘 큐시트에 적힌 기사 목록을 먼저 점검했다. 이들과 겹치지 않으면서 보도가치가 높은 기사와 1면 단독 기사 등을 뽑았다. 보통 4시10분께 작업을 마친다.

▲김선영 작가가 '스마트리빙' 코너를 맡았을 때 썼던 원고. 검은색 글씨는 데스크의 수정내용이다.
▲김선영 작가가 '스마트리빙' 코너를 맡았을 때 썼던 원고. 검은색 글씨는 데스크의 수정내용이다.

 

“차장님, 아이템 뽑아 봤습니다.” 1차 검수는 차장기자에게 받았다. 차장기자가 자신이 고른 아이템과 비교 검토해 10여개를 선정하면 김씨는 다른 제작진이 미리 편집을 준비할 수 있게 MARS(MBC 기사 송고 시스템)에 송고했다. 4시30분, 출근 전인 데스크에게 카카오톡으로 기사를 보내면 곧 전화가 왔다. 김씨는 매일 아래 같은 지휘를 받았다.

“○○일보 기사를 먼저 배치하지 마시고요. ●●일보 것이 앞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일보 기사는 빼세요. ◆◆일보 기사는 말이 안 되는 보도예요.”
“부자 증세는 회사 논조와도 관련이 있어서 민감한 부분이 있어 일단 그 기사는 빼고요. 5번, 6번 아이템은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사는 모 이익집단과의 관계가 있어서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김선영씨가 원고를 마감하면서 데스크로부터 받는 이런 피드백을 수시로 받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관리자의 지휘·감독이 한 종류였다고 주장하지만, MBC 측은 지노위에 "회사가 구체적으로 업무를 결정하거나 작성 방법론을 정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결정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김선영씨는 원고를 마감하면서 데스크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일상적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MBC 측은 지노위에 "회사가 구체적으로 업무를 결정하거나 작성 방법론을 정하는 등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결정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데스크가 기사 6~8개를 최종 확정하면 원고 작성에 돌입한다. 마감은 늦어도 새벽 5시50분이다. 데스크 판단이 바뀌면 아이템은 이 와중에도 수시로 바뀌었다. 마감을 몇 분 남겨두지 않고 바뀔 때도 있어 항상 긴장 상태로 일했다. 기사 단신과 유사한 원고는 문장 구조가 간단해 많은 퇴고를 거치지 않았지만 데스크의 수정을 반드시 거쳤다. 최종 출고되면 다른 제작진들에게 알리고 인쇄본을 방송센터에 전달했다.

김씨의 일은 생방송 보도 준비인데다 상황 변동이 잦아 현장 제작진들과 즉각적인 소통이 필요했다.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적어도 3시간 전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입사 당시 확인한 채용공고에도 ‘새벽 3시~8시’가 근무시간이라고 적혀있었다. “출·퇴근 지시, 근태관리를 한 적 없다”는 MBC 입장에 김씨는 “매일 새벽 3시 MBC 7층 보도국으로 출근해야 업무가 가능했다”고 답했다.

MBC는 “실상 아이템 최종 선정 정도에 PD가 개입했을 뿐이고, 김씨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아이템 10여개 선정도 온전한 김씨의 몫이었다. 원고 작성도 작가 재량에 맡겼고 회사가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는 등 작성 방법을 결정한 바는 없다”고 지노위에 반박했다. 또 “방송은 타겟 시청자의 요구와 트렌드를 반영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기에 같은 작가를 십수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며 프로그램 개편은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영씨가 퇴사 전 후임 작가에게 적어 준 '아침신문읽기 코너 작가' 업무 인수인계서. 작가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이 적혀 있다.
▲김선영씨가 퇴사 전 후임 작가에게 적어 준 '아침신문읽기 코너 작가' 업무 인수인계서. 작가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이 적혀 있다.

 

뉴스 카메라 뒤에 작가가 있습니다

보도국 작가는 역할에 비해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뉴스 제작이라고 하면 기자, 앵커, PD, 영상편집자 등 드러난 직군만 떠올리기 쉽지만 AD, FD, 음향보조 등 화면에 나갈 사진·영상을 일일이 찾아 놓거나 제작진 사이 가교 역할을 해 생방송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발로 뛰는 다양한 스태프가 있다. 

작가도 핵심 인력 중 하나다. 작가는 지상파 3사,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를 막론한 모든 뉴스프로그램에 있다. 프로그램별로 역할은 다양하지만 자료를 취합하고 출연진을 섭외하고, 토론 원고를 미리 작성하는 일을 보통 맡는다. 속보 자막을 치는 등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큐시트에 변화가 생기면 즉각 원고를 수정해 모든 제작진에게 전달한다. 스튜디오 보조, 출연비 입금 등 행정업무를 맡기도 한다. ‘1인 다역’이다. 

방송은 유행에 민감하니 개편이 잦을 수밖에 없다는 방송계 인식에 김씨는 “뉴스 프로그램의 보도 관련 업무가 유행에 휘둘리면 얼마나 휘둘리느냐”며 “불명확한 통념이다. 정규직 인력들의 근속연수가 프리랜서들보다 오래된 경우가 더 많은 게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방송계 일각에선 김씨 사례를 두고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노동자성을 찾는 싸움을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방송사 보도국에서 일하는 5년 차 작가 A씨는 “보도국 작가는 작가 중에서도 특히 회사에 종속된 정도가 높다. ‘보도’ 특성 때문인데 원고 내용부터 논조, 아이템 선정 등 업무 과정과 내용이 데스크에 종속돼있다”며 “사실관계를 다루니 ‘창작 업무’라 보기 힘들고, 업무 구조도 기자들과 유사하다. 보도 인력이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방송계 프리랜서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비례대표)이 45개(MBC·KBS 제외) 공공부문 방송사 프리랜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1925명 중 910명(47.2%)이 작가였다. 전체의 85.5%가 여성이다. 올해 8월 기준 1인당 평균 월급은 172여만원이고 최고 금액은 259만원이다. JTBC 뉴스룸 작가였던 임경빈씨는 저서에서 “2003년 라디오국에서 일을 시작할 때 월급이 120만원이었는데 2011년에도 그대로여서 놀랐다”며 프리랜서들이 월 300만원 이상을 벌려면 10년차 무렵에야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작가 업무 천차만별, 그중 ‘보도국 노동자성’ 관심 커

한 JTBC 보도국 작가는 올해 초 고용노동청에 퇴직금 체불 진정을 내 ‘퇴직금 지급’ 결정을 받았다. 프리랜서 경우 고용노동청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진정이 기각되는 경향이 높다. 이 작가는 이례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돼 퇴직금 지급 결정을 받은 것. 고용노동청은 JTBC를 근로기준법 위반(퇴직금 체불)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씨의 동료 작가인 이지은(가명)씨는 김씨보다 1달 먼저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이씨도 MBC에서 일한 ‘10년차’ 작가다. 2011년 입사해 뉴스투데이의 국제 뉴스 코너 ‘이 시각 세계’를 줄곧 맡았다. 이씨는 김씨가 ‘해고’ 전화를 받은 지 5분 후 같은 전화를 받았고, 김씨와 함께 계약 해지됐다. 이씨도 데스크의 긴밀한 지휘·감독 아래 일했다고 주장했으나 지노위는 지난달 21일 이씨 사건을 각하했다. 이씨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청구를 검토 중이다. 

(관련기사 : 10년차 뉴스 작가의 눈물 “한 순간 해고… 누가 우리 말 들어주나”)

서울지노위는 오는 16일 작가 김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심문회의를 거쳐 판정할 예정이다. MBC 관계자는 11일 김씨 주장에 “차주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심문회의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받아 볼 예정”이라며 “다만, 최근의 유사한 주장에 대해 (10월21일) 서울지노위가 사실관계와 법리에 입각해 합리적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작가 김씨와 이씨는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조합원이다. 원진주 방송작가지부장은 “방송 콘텐츠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이제 ‘방송작가’라는 단어 하나로 작가들의 근로 실질을 획일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방송사와 법원, 고용노동부가 인정해야한다”고 규탄했다. 또 “보도국 작가처럼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데스크 관리 감독을 받는 등 종속성이 상당한 이들을 드라마 작가와 같은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불법행위”라면서 “두 피해 작가들의 복직을 위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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