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박지선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 중 조선일보 보도를 놓고 말이 많았다. 조선일보는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씨 모친의 ‘유서 메모’ 일부를 공개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어느 때보다 사망 보도의 윤리적 문제 준수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조선일보는 유서 공개에 따른 후폭풍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강행한 것은 기성 언론 보도 관행이 변하지 않은 탓이 크다.

첫째 조선일보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인의 죽음에 대한 배경을 공개했을 수 있다. 유족의 공개 의사와 상관없이 공인의 유서를 확보하면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 사명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동종업계의 비판이 흔치 않은 기자사회에서 독한 비판이 나왔을 정도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를 두고 “언론 윤리는 아예 휴지통에 처박은 듯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입장에선 굴욕적이다.

둘째 조선일보는 박씨 죽음에 대해 여러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파편화된 조각 정보 일부(유서 내용)를 팩트로 알리는 게 혼란을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망자와 유족은 찾을 필요도 없이 보도의 책임성은 전혀 고려치 않은 주장이다. 편집국장-부장-취재기자로 이어지는 상하 지시 관계에 따라 뉴스 생산이 이뤄지는 게 언론사의 일반적인 뉴스 공정인데 취재기자와 데스크 사이 소통, 그리고 자율 자정능력이 존재했다면 조선일보 보도는 윤리적 갈등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문제였다. 이 말은 곧 조선일보 내부에서 해당 보도를 ‘문제’로 여길만한 커뮤니케이션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셋째 조선일보 보도는 언론의 윤리규범을 팩트 보도의 하위 범주로 분류한 경우다. 언론사 윤리 강령상 “배려와 존중의 원칙”이라는 말의 성찬일 뿐 팩트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모친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등의 문구를 봤을 때 조선일보 보도는 ‘확보한 유서’라는 팩트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더욱이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는 윤리를 동반했을 때 힘을 갖는 것이지 무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디어 수용자가 적극 지적하는 시대다.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넷째 선정적 주제의 보도 빈도수를 높여 포털상 트래픽을 늘리고 광고 단가를 상승시키는 일이 언론사 생존의 법칙이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사망 보도는 사람의 호기심을 극단으로 자극시키는 소재이고, 이를 활용해 트래픽 상승을 꾀한다. 지난 10월 네이버 포털은 자동 알고리즘이 배치하는 ‘많이 본 뉴스’ 페이지를 폐지하고, 언론사별 많이 본 1위 뉴스를 배치하는 것으로 개편했다. 조선일보 박지선 보도는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1위 뉴스로 네이버 뉴스 페이지 화면에 하루 이상 걸려있었다. 포털이 뉴스 유통의 책임자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언론사 내부 많이 본 뉴스로 노출시키는 것에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어떤 특정 사실을 토대로 보도하는 것은 이제 설명하고 선명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지 저널리즘의 마지막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미디어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리고 포털은 항상 어떤 뉴스 소비자가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생각하며, 더 비판적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은 언제든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이 그리고 포털이 여전히 집착하는 지엽적 사실보도는 자극적 클릭은 유도할지 몰라도 그들의 일에 직업적 차별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저널리즘 모포시스)고 지적했다.

다섯째 조선일보가 박지선 보도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조선일보 기자협회나 노동조합에서 해당 보도를 도마에 올려놓고 성찰의 목소리를 낸다면 언론사 구성원의 자정능력을 확인하고 조직 자율성을 회복하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경영진이 해당 보도를 트래픽 높은 기사로 분류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추진할 수 있다. 두가지 극단의 선택지에 대한 답은 1등 신문인 조선일보 구성원에 달려 있다. 어떻게 보면 쉬운 답이 나올 수 있다. 해당 보도에 달린 댓글 중 하나는 ‘당신은 가족이 없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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