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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영광 뒤, 작은 극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생충’ 영광 뒤, 작은 극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성상민의 문화뒤집기] 봉준호 감독이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 다시 되짚어봐야

202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그야말로 찬란한 영광의 연속이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201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대상과 맞먹는 영예를 지닌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까지 4관왕을 휩쓴 덕분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마치 백상예술대상처럼 국제적인 시상식이 아니라 국내 시상식이지만, 미국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국제적으로 거센 영향력을 미치는 영화 산업을 보유한 국가이다.

이전에도 한국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소위 ‘3대 국제영화제’라 불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계속 선망하는 상은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3대 국제영화제’들이 실제 개봉 여부에 상관없이 ‘영화의 예술적 성취’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의 예술성은 물론 산업 내부에서 거둔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상이다. 한국 영화는 오랜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를 원했고, 수없는 도전 끝에 ‘기생충’을 통해 한국 영화는 길고 길었던 한을 풀었다.

‘기생충’의 수상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러나 ‘기생충’의 등장은 갑자기 맨 땅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솟아오른 것이었을까. 대다수의 관객은 봉준호를 ‘살인의 추억’으로 처음 기억하지만, 그가 영화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졸업과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학업을 이어나갔던 영화진흥위원회 산하의 ‘한국영화아카데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수많은 문화 산업 중에서 영화 산업을 별도의 지원 기구로 편성할 정도로 ‘국책 사업’으로 여겼던 군사 정권의 산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주목이 있었기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배우는 이들은 다른 영화 교육 기관보다 단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흥행이나 대중성을 신경쓰지 않아도, 일단 자신의 생각을 영상으로 풀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존재했기에 자신만의 감각을 갖추는 것이 가능했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싱글즈’의 권칠인 같이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통해 등장한 것은 그러한 환경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현장.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기생충'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현장. 사진=네이버영화.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아카데미 정도가 수행할 수 있던 ‘독립적인 영화’ 제작의 기능은 1990년대 말의 영화 사전 검열 중단과 함께 상대적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제작과 유통, 배급이 자유로워지면서 조금씩 범위가 확장되었다. 상업영화와 달리 수익을 신경쓰지도, 대중성을 생각하지 않은 영화들이 대다수지만 누군가는 상업영화로 진출하기 전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기 위한 ‘포트폴리오’로서, 누군가는 철저히 상업적인 흐름과 멀리 떨어져 자신만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유지하기 위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영화를 감상할 관객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영화는 성립한다. 1990년대 한국 영화의 질적인 확장은 1987년 6월 항쟁 등으로 인해 조금은 유화적으로 변한 사회적 환경, 1997년경 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 검열 위헌 판정과 같은 제도적인 변화도 한몫해지만 ‘작은 영화’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작은 극장’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화예술극장, 동숭아트홀, 코아아트홀과 같은 독립예술극장에 있어 선구적인 존재가 된 극장의 존재는 관객과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2000년대를 지나며 이들 극장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작은 영화를 중심적으로 상영하는 극장들은 계속 명맥을 유지하며 존속했다. 광화문 씨네큐브나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 같은 극장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극장들의 존재는 현재는 종로3가 서울극장과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인디스페이스나 강릉 신영극장, 대구 오오극장과 같은 독립영화전용관의 등장을 가져왔고, 다시 KT&G의 홍대입구 시네마 상상마당이나 CGV아트하우스와 같은 대기업 계열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등장을 낳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흐름은 서울시 관악구의 자체휴강시네마나 부산의 모퉁이극장과 같은 공동체 중심의 ‘커뮤니티 시네마’로도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 이들 극장들의 사정은 자꾸 어려워져 갔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문화 예술 정책의 혼란과 결부되어 지원 제도의 불안정성이 이유로 지적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로도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점차 감소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이 없이는 이들 극장은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이 되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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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불안했던 상황은 결국 2020년이 되어 단숨에 도미노처럼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2020년 1월 CGV는 서울 대학로와 경기 동수원의 CGV아트하우스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작년 말, CGV아트하우스 차원의 영화 제작 및 배급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진 결정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CGV는 수익 악화를 이유로 순차적인 지점 감소를 선언했고, 첫 운영 중단 대상으로 선정된 7개의 극장 중에는 관 전체가 CGV아트하우스 전용관으로 지정된 ‘CGV 명동씨네라이브러리점’이 있었다.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CGV아트하우스 전용관 3곳이 사라진 것이었다.

뒤이어 KT&G 시네마 상상마당과 태광그룹 계열의 미디어 자회사 ‘티캐스트’가 운영하는 광화문 씨네큐브가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KT&G는 이미 2019년에는 영화 편집, 색조정(DI), 음향 후반 편집 작업 등을 전문으로 하는 CineLab사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지난 9월 부산에 신규 개관한 ‘상상마당 부산점’의 영화관 자리에는 홍대 시네마 상상마당의 분점 대신 CGV의 입점이 결정되어 많은 의문을 낳는 상황이었다.

티캐스트 역시 작년 12월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마지막으로 영화 수입, 배급이 장기간 중단된 상황이었다. 영화 산업이 사실상 두 곳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 두 곳을 대표하던 극장이 운영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발이 점차 거세지자 KT&G와 티캐스트 모두 영화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문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인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많은 언론들은 ‘기생충’이 상을 탈 때 한국 영화가 재차 세계로 알려지며 르네상스를 맞이할 것이라면서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이들 언론은 ‘기생충’이 나오기 까지 어떠한 과정과 절차, 조건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에 어떤 요인들이 있었으며, 그 요인들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살피지도 않았다. ‘기생충’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인정받았지만, 극장을 비롯하여 한국 영화의 생태계는 지금도 건강히 유지되고 있는가.

물론 코로나19가 낳은 타격은 결코 적지 않고, 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영역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위기는 존재하고 있었으며, 코로나19는 그 위기와 균열을 가속화시켰을 뿐 그 자체만이 문제가 아님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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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2020-11-15 18:07:28
Time
And tide Wait

For no Human~~~~^^

바람 2020-11-15 16:19:23
영화에는 감독/스태프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프라와 국민도 핵심이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맞게 시대와 영화산업도 변한다. 이는 누가 명령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가 퍼짐(기술, 가치, 산업, 전염병)에 따라 사람의 인식도 바뀌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하는 게 옳을까. 일본의 도장/팩스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를 정부가 예산으로 보호하는 게 맞을까. 물론, 역사는 매우 소중한 가치다. 가치는 보존하는 게 맞지만, 시대 상황이 변하면 그에 따라 시스템도 변하는 것이고 역사를 보존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나라마다 강력한 산업이 있고, 약한 산업이 있다. 다 발전할 수 있는가. 선택이 강요된다면, 역사적인 것은 잘 보존하고 발전하는 산업은 키우는 게 더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