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MBC PD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이 가정폭력을 정당화하고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내용으로 비판에 휩싸였다. 한겨레 편집국과 김민식 PD는 공동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민식 MBC PD는 10일 한겨레 정기기고 코너 ‘숨&결’에 ‘지식인의 진짜 책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김 PD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상황을 묘사하며 글의 주제의식에 빗댔다.

김 PD는 기고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독서량이 많았다고 밝힌 뒤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을 감지한다. 당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생각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고 썼다.

김 PD는 이어 “나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공부란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내가 책에서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적용하면 그건 폭력”이라고 쓴 뒤 “애정이나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충고나 조언은 조롱이나 멸시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그걸 정서적 폭력으로 받아들이셨다. 더 똑똑한 어머니가 한발 물러나서 부족한 아버지를 감싸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기고는 말미에 지식인의 오만함을 지적하며 “책을 읽어 내 자존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것이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문장으로 끝맺었다.

▲한겨레와 김민식 MBC PD가 10일 기고 ‘지식인의 진짜 책무’ 칼럼 웹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한겨레와 김민식 MBC PD가 10일 기고 ‘지식인의 진짜 책무’ 칼럼 웹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해당 칼럼이 발행된 직후 수많은 인사가 공개적으로 비판 의견을 밝혔다. 지식인이 남을 비판하는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가정과 사회 내 약자인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제시한 뒤 폭력의 원인을 약자에게서 찾아, 폭력을 행사한 이의 입장에서 폭력행위를 미화한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예술사회학자이자 한겨레 기고자 이라영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글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폭력’이라 명명하지 않고 ‘손찌검’이라 부르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지적인 우월감을 드러내어 ‘정서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며 “이런 수준의 글을 신문에 싣는 것도 권력행위”라고 지적했다. 시사평론가이자 한겨레 정기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박권일씨는 “지식인이 싫어서 부모마저 욕보인 글. 반면교사 삼기도 민망한, 반지성주의적 배설물”이라고 썼다.

뉴스 댓글란에도 비판글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아버지가 어머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과 두 분의 독서량은 사실 하등 상관이 없다”며 “그건 때리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자격지심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누리꾼은 “한겨레 데스크는 가정폭력을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고 여성의 지적 추구를 멸시하는 이 글을 당상 삭제하고 독자에게 사과하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날 오후 웹페이지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겨레는 “가정폭력이 옹호될 여지의 칼럼을 필자와 충분히 상의하거나 걸러내지 못했다.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김민식 PD는 이어지는 사과문에서 “독자 반응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아버지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PD는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주제로 글을 쓰다 정작 저 자신이 그 자세를 놓친 것 같다. 아직 공부가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무엇보다 철없는 아들의 글로 인해 혹 상처받으셨을지 모를 어머니께도 죄송하다”고 했다. 김 PD는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르침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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