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3회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은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고 문체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사회의 성평등 인식을 높이고 환경 조성에 기여한 인물(단체)과 문화콘텐츠를 선정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2020년 양성평등 문화상을 수상한 총 13명(팀) 중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보여준 신진 여성문화인 수상자 가운데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가 있었다.

‘닷페이스’라는 다소 생소한 타이틀로 조대표가 세상에 말 걸기를 시작한 것은 2016년 10월부터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인스타드램, 카카오브런치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하면서 웹다큐 형식의 논픽션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닷페이스의 ‘닷(dot)’은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뜻하고, ‘페이스(face)’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장면이나 새로운 기준이 될 사람의 얼굴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는 모토를 내세운 닷페이스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취재하고, 생생하게 들려주는 온라인 미디어다.

닷페이스의 콘텐츠 제작방식은 정의(justice), 페미니즘, 지속가능한 도시, 기술이 바꾸는 세상, 퀴어 등의 목소리를 담은 시리즈와 단편 등 2가지 트랙으로 진행된다. 콘텐츠의 포맷은 숏폼 형식의 다큐, 인터뷰 등이다.

닷페이스의 콘텐츠는 저널리즘을 지향하지만 전통 미디어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똑똑한 앵커나 기자가 사실을 취합하고 정리해서 전달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익숙한 ‘대화’와 ‘직썰’을 적극 활용한다. 콘텐츠의 길이도 웨비소드 방식으로 제작된다. 웨비소드란 웹(web)과 에피소드(episode)의 합성어로, N스크린으로 소비되는 다양한 콘텐츠 유통환경을 고려한 짧은 길이의 시리즈물을 뜻한다. 정해진 틀을 따라가지 않고, 이슈에 따라 포맷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그려가면서 자신들만의 표현으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와 얼굴들과 마주한다.

닷페이스의 콘텐츠 중 ‘할 말 많은 인터뷰’ 시리즈는 소방관, 어린이집 교사, 배달라이더, 간호사, 승무원, 보조출연자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직접 전하는 영상이다.

▲닷페이스의 '할 말 많은 인터뷰' 가운데 승무원 편.
▲닷페이스의 '할 말 많은 인터뷰' 가운데 승무원 편.

동료와 후배의 죽음을 목격한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다시 현장에 나가야 했던 35년 차 소방관의 울먹임, 연기경력은 수십 년이지만 단역이라는 이유로 촬영장에서 소모품 취급을 받아야 했던 연기자들의 설움, 폭염과 추위, 배달 무게와 상관없이 건당 400원을 받고 도로를 질주하는 라이더들의 고충, 몰려오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끼니도 거르고 화장실도 못 가는 간호사들의 배고픔과 방광염의 고통 등 지상파 뉴스와 방송에서는 털어놓지 못하던 그 또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본인들의 얼굴과 목소리로 직접 들려준다.

그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삶을 표현하는 미디어다. 떨림과 울림, 분노와 서글픔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콘텐츠들은 ‘누군가’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나’의 현실이기도 하다. ‘할 말 많은 인터뷰’ 시리즈의 포맷은 인터뷰의 진정성과 함께 썸네일에 표시되는 다양한 해시태그가 친절하고, 섬세하다. ‘할 말 많은 간호사들’ 편의 썸네일에 표기된 자막 형식의 태그들을 보면 #중환자실#인수인계#나이팅게일#컵라면#수면장애#태움 자막이 적혀있다. ‘할 말 많은 승무원들’ 편의 썸네일은 #매뉴얼#갑질#서비스#외모#유니폼#면세품#컴플레인#감정노동의 자막이 적혀있다. 영상 속 이야기가 담고 있는 주요 메시지와 문제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피드 형식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5~8초 안에 누군가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상품 광고처럼 버려지는 현실에서 썸네일과 해시태그는 콘텐츠 속에 담긴 절실한 호소를 표현하는 고요 속의 외침이다.

닷페이스의 썸네일은 취재 콘텐츠의 단순 요약이나 소개가 아니다. 인터뷰이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삶의 맥락이자 콘텐츠의 배경 무대다. ‘할 말 많은 라이더들’ 편의 경우 해가 진 어두운 골목길에 배달 오토바이를 세운 두 명의 배달 라이더가 썸네일에 떠 있다. 어두운 주택가 골목은 주소도,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난코스다. 인터뷰 장소이자 썸네일 속 어두운 골목 이미지는 소비자들이 콜센터에서 발송된 도착 시간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리는 사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에서 사고의 위험, 추위와 더위, 서비스 지연 압박에 시달리는 라이더들의 현실을 상징한다.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 관련 영상.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 관련 영상.

2020년 코로나19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된 가운데 닷페이스가 기획한 ‘온라인퀴퍼’ 프로젝트 역시 해시태그를 통한 새로운 연결과 공감을 보여준 사례다. 매년 6월에 개최되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코로나 여파로 무기한 연기되자 닷페이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기획한다. 참가방식은 쉽고 간단했다. 우선 ‘온라인퀴퍼’ 페이지에 접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아바타를 선택하고, 옷과 머리, 아이템을 선택한 후 인스타그램에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온라인퀴퍼#닷페이스 해시태그와 함께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기본 헤어와 의상, 탈 것과 깃발 외에도 자신만의 메시지와 표현을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도 업로드가 가능했다.

퀴퍼들은 행렬에 필요한 생수, 우산, 뻥튀기, 반려동물, 음악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공유하면서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각자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해시태그를 통해 하나의 도로 위에서 행진하는 이미지로 모아져서 긴 행렬을 이루었다. 6월23일부터 7월4일까지 12일간 진행된 프로젝트에 참여한 온라인 퀴퍼는 총 85,767명이었다. 직접 고른 머리와 옷, 아이템을 장착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유롭게 도로 위에서 만나 소통하고, 공감했다.

지난 10월 22일 닷페이스 유튜브 채널에서는 ‘추적단 불꽃’ 인터뷰를 라이브로 진행했다.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사건의 최초 보도자로서 1년 넘게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을 추적해 온 젊은 기자 지망생들이다. 닷페이스는 ‘더썸머쇼(THE Summer Show)’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추적단 불꽃의 멤버들을 초대해서 N번방 사건의 취재 과정과 뒷이야기, 현재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활동하는 추적단 불꽃 멤버들은 각각 ‘단’과 ‘불’이라는 닉네임으로 닷페이스가 준비한 종이 탈을 쓰고 출연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착취물과 폭력의 공간이 세상에 공개되는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취재 당사자들조차 공포와 트라우마가 뒤엉키는 시간이었다. ‘추적단 불꽃’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야 했던 젊은 두 여성들의 두려움과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었던 성착취범들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은 사회적 연대와 제도 마련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썸머쇼의 진행을 맡은 조소담 대표 역시 올 2월 닷페이스 기획취재를 통해 N번방 사건을 접한 후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인터뷰 도중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N번방 가해자들의 처벌과 관련 법안 마련의 후속 조치가 이러지는 가운데, 닷페이스는 지난 6월2일부터 보름 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함께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며 만난 디지털 성폭력 피해경험자를 위한 일상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하루’를 기획했다. 피해 회복 과정을 지원하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자아를 회복하고, 일상을 지속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설계했다. 펀딩을 통해 총 1782명의 힘으로 4403만원이 모여 총 55명의 피해 경험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되찾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콘텐츠를 통해 만나고, 소통하고,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의 콘텐츠 액티비즘이다.

썸머쇼 인터뷰 말미에서 ‘추적단 불꽃’의 N번방 취재기를 담은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소개하던 조소담 대표가 즉흥 이벤트로 썸머쇼를 보고 닷페이스에 가입한 40명에게 추적단 불꽃의 신간을 구매해서 선물하겠다고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단’과 ‘불’이 아이처럼 좋아한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출판사 관계자도 현장에서 20권 후원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출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단’이 말한다.

“같이 옆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닷페이스와 ‘단’과 ‘불’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언제나 작은 신호에도 눈과 귀를 열어두고 기다리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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