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징역17년이 확정돼 재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론으로 흥했고, 언론으로 망했다.

이 전 대통령이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린 계기는 1990~1991년 KBS 주말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다. 드라마는 현대건설 시절 이명박을 조명했다. 그의 ‘샐러리맨 성공신화’는 시청자 눈을 사로잡았다.

유인촌이 연기한 이명박

유인촌씨가 이명박을 모티브로 한 박형섭 역을 맡아 1990년 KBS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때 인연을 시작으로 유씨는 MB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에도 이명박 미화 논란이 거셌다. 조선일보도 이 드라마를 비판했다.

▲ 조선일보 1991년 8월25일자.
▲ 조선일보 1991년 8월25일자.

조선일보는 1991년 5월28일 “KBS 2TV주말극 ‘야망의 세월’이 회를 거듭할수록 특정기업 성공담의 소개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며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가족사로 치환해 묘사할 것이란 당초의 기대를 저버리고 야망의 세월이 이처럼 문제있는 극 진행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청률을 의식한 제작진의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찾을 수 있으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 격인 방송위원회도 “특정 기업을 미화했다”며 KBS에 사과명령 조처를 내렸다.

나연숙 야망의세월 작가는 당시 동아일보에 “70년대를 설명하면서 H그룹을 뺄 수 있느냐”며 “구체적으로 그룹 이름을 지칭하지도 않는데 ‘홍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에서는 운동권들이 “운동권 출신인 주인공 박형섭의 성장제일주의적 사고방식은 60~70년대의 독재정권이 국민들을 장악하기 위해 퍼뜨렸던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라고 대자보를 붙였다. 이씨는 1992년 정계에 입문했다. 이 시기 내놓은 책이 ‘신화는 없다’다.

MBC 영웅시대도 논란

“‘영웅시대’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경계선을 교묘히 넘나들면서 기업인은 언제나 옳은 일만 하고 박해만 받는 존재로 그리는 등 왜곡과 미화를 서슴지 않았다.(중략)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정주영, 이병철, 박정희도 아닌 이명박이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은 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내레이터와 주인공의 2중 배역을 맡고 있으며, 극의 전개 역시 이명박을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2005년 2월2일 노보에 자사 드라마 영웅시대를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노조위원장은 ‘MB 저격수’ 최승호 현 뉴스타파 PD였다. 최 PD는 PD수첩 PD 시절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통해 ‘4대강 사업’으로 포장된 MB 대운하 사업을 비판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최 PD는 2017년 MB정권의 언론장악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을 연출했다.

▲ 2004~2005년 방송된 MBC 드라마 영웅시대. 배우 유동근씨가 이명박을 모티프로 한 박대철 역을 맡았다. 사진=MBC 제공.
▲ 2004~2005년 방송된 MBC 드라마 영웅시대. 배우 유동근씨가 이명박을 모티프로 한 박대철 역을 맡았다. 사진=MBC 제공.

2004년 7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전파를 탄 MBC 드라마 ‘영웅시대’는 삼성·현대그룹 창업주들이 주인공이었다. 이명박 역할의 박대철(유동근)은 조연이었으나 비중이 점차 커지며 서울시장이던 이씨를 미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영웅시대 작가 이환경씨는 2005년 1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드라마 조기종영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시장을 미화했다는 것 때문 아니겠느냐”며 “대선 주자 후보여서 이(명박) 시장은 못 다루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그리지 말아야 하고. 그렇게 박근혜, 이명박이 무서운가. 참 한심하고 불쌍하다”고 MBC를 비판했다.

두 공영방송 드라마에 한민 문화심리학자는 책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통해 “영웅시대는 산업화의 영웅들을 그린, 10여 년 전 야망의 세월의 확장판이었다. 전작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에게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썼다.

▲ 2018년 3월 이명박씨가 뇌물수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2018년 3월 이명박씨가 뇌물수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다스는 누구 겁니까’

이씨는 미디어로 흥한 정치인이었지만 언론이 제기한 돈 비리를 밝히라는 국민 여론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주진우 전 시사IN 기자는 2007년 이명박 BBK실소유주 논란 당시 에리카 김 인터뷰를 보도했고, 2017년에는 ‘MB 프로젝트’로 이씨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MB 구속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언론인이다. 보도 이후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이 유행어로 번지며 이씨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샐러리맨 성공신화’라는 영웅 서사는 이씨를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시켰으나 ‘비리 정치인’이라는 이씨의 맨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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