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는 걸 울면서 지켜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혼 후 매일 술에 취한 엄마는 술을 마시면 손에 잡히는 모든 걸로 소년을 때린다. 이 소년은 친구를 때린다. 쓰러진 친구 모습을 찍어 온라인에 올린다. 동네 형들과 밤새 술 먹고 차를 턴다.”(사례1)

“서울에 사는 열다섯 예슬이는 친한 오빠들을 만나러 대구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비가 30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예슬이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튀었다’. 예슬이는 오빠들과 같이 중고거래 사기를 치거나 ‘몇 번 자주면서’ 거리에서 생활했다.” (사례2)

▲(왼쪽부터) 진선민·이근아·김정화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왼쪽부터) 진선민·이근아·김정화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서울신문 기자들이 직접 만난 79명의 소년범 중 2명의 실제 이야기다. 이들은 보호처분을 받았다. 경찰·법원을 담당하는 사회부 이근아·김정화·진선민 기자 등은 소년범과 관련된 사건기사와 법원 판결기사를 써왔다. 단건으로 발생 기사를 쓰고 나면 여론은 엄벌할 것을 주문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소년법 폐지, 소년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주장하자” 서울신문 기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들만의 잘못일까. 서울신문 기자들은 뉴스에 나오는 소년범들이 처한 환경은 어떤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저지른 범죄로 인해 20살 이하 소년들이 낙인찍히는 게 맞는지, 교화하려면 우리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지난 2일자 서울신문 1면.
▲지난 2일자 서울신문 1면.

서울신문은 지난 2일부터 소년범 현실을 알리는 기사를 보도했다. 앞으로 4편의 시리즈가 남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보호처분 받은 79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30명을 심층 인터뷰한 이근아·김정화·진선민 기자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소년범-죄의 기록’이라는 아이템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근아=일회성 사건기사로 쓰기엔 부족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소년범을 살펴보는 기사임과 동시에, 소년범은 피해자를 만든 가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년범에 의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한 사회의 역할이다. 가해자(소년범)에게 더 무거운 처벌을 하자는 건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가해자에게 더 무거운 죄를 지워 끝내자’는 것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모든 어른은 아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

김정화=렌터카를 훔쳐 사망 사고 낸 사건 등을 보면 10대가 옛날보다 못됐다고 여기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실제 소년범 중에서 이런 극단적 범죄는 극소수고 범죄자와 평범한 사람 사이에 있는 이들이 많다. 중간에 있는 친구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품고 갈 것이냐 문제인데, 이런 아이들에겐 관심이 필요하다.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깊게 취재하게 됐다.

진선민=소년범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욕을 먹는다. 흉악범죄 위주로만 기사화가 되고 있다. 소년범들이 처한 현실을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 보호처분 받은 79명의 아이들을 어떻게 만났나?

이근아=6호 보호처분 시설인 경기 양주 나사로 청소년의 집과 전북 고창 희망샘학교, 1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위탁하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지소와 광주 남부지소 등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처음부터 취재를 허락해주진 않았다. 시설들이 그동안 취재에 많이 응했는데, 기사가 나가면 오히려 반응이 더 냉혹했다. 보호처분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노출할수록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이야기보다 ‘이런 나쁜 놈들은 더 처벌하자’는 반응이 돌아와 취재를 꺼렸다. 하지만 수차례 기사 취지를 알리며 설득한 끝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신문 기자들이 보호처분을 받고 6호 보호처분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진=서울신문 제공.
▲서울신문 기자들이 보호처분을 받고 6호 보호처분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사진=서울신문 제공.

- 취재 과정 자체가 설득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

김정화=4월부터 기사를 준비했다.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기초 취재를 했고, 인터랙티브형 기사를 쓰기 위해 언론재단에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5월엔 지방 시설 방문을 시작으로 6월에 판사와 연구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판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기까지 메일을 수차례 보내 설득했다. 다들 매일 쓰는 기사들을 처리하며 기획을 준비했다.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무인데 3명 모두 금요일은 거의 자체적으로 반납하면서 취재했다.

이근아=설득하는 게 어려웠지만 취재하면 할수록 아이들을 교화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많았다. 소년범에게 애정 있는 판사들도 많았다. 그런 판사들은 보호처분 시설 관계자와 평소 자주 접촉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찰한다. 특히 박종택 수원가정법원장이 이번 취재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30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할 때 느꼈던 감정은?

이근아=제가 느끼기에 보통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조건 만남’을 한 친구를 인터뷰했는데 마치 일상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놀란 티를 안 내는 게 중요했다. 이 친구는 정에 굶주려 있었다. 본인 이야기를 잘 들어주자 매우 좋아했다. 핸드폰 없이 생활해야 해서 편지로 외부인과 소통하는데, 편지 한 통을 써줬더니 기뻐했다. 아이들이 자꾸 생각난다. 봉사하러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이 친구들이 다시 나오게 되면 어떤 상황에 노출될지 아니까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화=제가 운 적도 있다. 엄마가 폭행을 어렸을 때부터 너무 심하게 해 힘들어 했던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체벌하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지난 8월 31일 법무부 산하 한국소년보호협회의 강릉생활관에서 그룹 인터뷰 진행했다. 사진=서울신문 제공.
▲서울신문 기자들은 지난 8월 31일 법무부 산하 한국소년보호협회의 강릉생활관에서 그룹 인터뷰 진행했다. 사진=서울신문 제공.

-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뭘 해줘야 할까?

진선민=하나같이 아이들은 ‘세상에서 좋은 어른을 만나본 적 없다’고 했다. 인터뷰한 친구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부모가 하기 어렵다면 선생님, 주변 어른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관심 가져줘야 한다. 저 역시 ‘나는 좋은 어른인가?’라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사소한 초기 비행이 곧 큰 비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주변에서 잡아 줘야 한다. 그걸 잡아줘야 하는 건 주변 어른들 몫이다. 편견 속에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근아=시민 100명 중 10명만이라도 ‘소년범은 정말 나쁜 애들’이라는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다. 최소 현재 소년범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조금의 관심이라도 갖고 비판이든 비난이든 했으면 한다. 기사로 ‘소년의 죄’를 기록했더니 ‘우리사회의 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김정화=우리사회는 ‘한 번 잘못하면 끝까지 문제아’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더 애정을 가지고 살폈으면 한다. 소년법을 폐지하고 소년범들에게 형을 살게 하면 당장은 쉽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주의만이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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