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개그맨 박지선 씨가 어머니와 함께 사망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곧바로 사망 소식을 다루는 보도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여전히 유명인의 죽음을 악용하는 보도행태를 보였습니다. 고인의 사망 원인을 섣불리 추측하는 보도부터 유서와 사생활을 공개하는 부적절한 보도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유서 공개, ‘단독’까지 붙인 조선일보

▲ 11월3일 고인의 병명까지 넣어 유서 내용을 ‘단독’이란 표기까지 붙여 보도한 조선일보.
▲ 11월3일 고인의 병명까지 넣어 유서 내용을 ‘단독’이란 표기까지 붙여 보도한 조선일보.

고 박지선 씨 사망 관련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언론은 조선일보였습니다. 조선일보 11월3일자 <단독-박지선 엄마 유서 ‘○○○ 힘들어한 딸만 보낼 수 없다’>(권순완 기자)는 고인의 어머니가 남긴 유서 내용을 ‘단독’까지 달아 보도했습니다. 유서에 포함된 고인의 병명 등을 여과 없이 제목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기사 본문에서 “현장에는 박씨 모친이 쓴 것으로 보이는 노트 1장짜리 분량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이 메모에는 ‘○○○(유서내용)’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며 유서 내용을 여과 없이 전했습니다. ‘단독’이란 표기가 붙은 조선일보 기사는 기본 윤리는커녕 자살보도 권고기준까지 어긴 보도였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보도하자마자 유서 내용을 담은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유서공개 거부한 가족 뜻마저 무시

조선일보의 ‘단독’ 유서 보도는 언론의 윤리성마저 무너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디어스 <유족 반대에도 보도된 박지선 모친 메모>(11월3일 송창한 기자)에 따르면 서울마포경찰서는 “사건현장에서 박씨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 1장 분량의 메모를 발견했으나, 유족 뜻에 따라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기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즉, 조선일보는 유족의 요구조차 무시하며 ‘단독’을 붙여 유서 내용을 공개한 것입니다.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자살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므로 원칙을 지켜서 보도’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서와 관련된 보도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유서 내용 보도로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권고기준을 넘어 유족의 요구조차 무시한 채 유서를 노출했고, 사망 이유를 추측하여 고인의 사생활을 침해했습니다. 기자로서 갖춰야 할 취재윤리를 넘어 인간으로서 윤리조차 저버린 태도입니다.

지병에 대한 기사 쏟아졌다

조선일보의 단독 유서 공개 보도는 다른 매체로 퍼져나가 문제 보도를 양산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인이 앓고 있던 지병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경우입니다. 고인의 지병은 대중이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님에도 다수 언론이 지병에 집중하면서 11월 3일 해당 병명은 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유서 내용을 가장 먼저 공개하며 물의를 일으킨 조선일보는 고인의 지병에 초점을 맞춘 보도까지 연달아 내놨습니다. <박지선, 엄마와 함께 숨져 유서엔 ○○○ 힘들어 해>(11월 3일 원우식‧권순완 기자)에서 고인이 6년 전 방송에서 언급한 지병을 다시 들춰냈습니다. 제목에 병명을 언급한 것도 모자라 고인이 앓았던 지병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까지 실었습니다.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은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를 흉내 내기 바빴습니다. 이데일리 <박지선, 생전 호소한 ‘○○ ○○○○’… “○○ 얘기 나오면 운다”>(11월3일 박지혜 기자)는 “고 개그우먼 박지선이 지병으로 앓고 있었다던 ○○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성조선 <고 박지선 괴롭혔던 ‘○○ ○○○○’ 증상은?>(11월3일 이태연 기자)은 “지난 11월2일 모친과 함께 세상을 떠난 박지선이 평소 앓던 ○○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 ○○○○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헬스조선 <박지선 사망...지병 ‘○○ ○○○○’ 어떤 질환이길래>(11월3일 이해나 기자)은 “박씨의 지병이었던 ○○ ○○○○는 어떤 질환일까?”라며 고인의 지병을 화젯거리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또한 고인의 8년 전 SNS 내용까지 기사화하며 지병 보도에 앞장섰습니다. 2012년 고인이 지병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SNS까지 찾아낸 <박지선의 기록 “화장 못하는 딸 위해 엄마의 화장대도 가난해졌다”>(11월3일 손호영 기자)는 사생활에 속하는 지병 관련한 이야기까지 들춰냈습니다.

▲ 11월3일 고인의 지병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조선일보
▲ 11월3일 고인의 지병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조선일보

과도한 사망 원인 추측

고인의 지병을 사망 원인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MBN <“왜 이렇게 홀연히”… 박지선 모친 유서에 언급된 ‘○○○’ 때문?>(11월3일)은 제목에서부터 고인의 지병을 사망 원인으로 추측했습니다. MBN은 고인의 주변인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며 사망 원인을 궁금해했고, 심지어는 “많은 이들은 고인이 무엇 때문에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증과 함께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며 사망 원인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밖에도 고인의 사망 원인을 추측하는 내용을 제목에 사용한 기사는 더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참 쉽죠~잉” 박지선, 공부도 웃음도 다 잘했는데 왜…>(11월 2일 손호영 기자), 매일경제 <“웃기는 게 행복하다”던 박지선, 어쩌다 이런 선택 했을까>(11월2일 전종헌 기자)도 사망 원인을 추측하는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았습니다. 두 매체 모두 “박씨는 평소 앓고 있던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치료를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와 같이 고인의 지병을 같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유명인 사망 ‘클릭 장사’ 멈춰라

고인의 사망 원인을 섣불리 추측하는 보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인의 사생활도 보호되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내용을 양산하고, 고인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보도는 죽음 자체를 선정적으로 소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입증하듯 여성조선, 헬스조선 등은 고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지병을 악용해 선정적 제목을 달았고, MBN 등은 고인의 지병을 사망 원인으로 연결시키는 보도를 했습니다.

이런 보도는 고인의 죽음을 기사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클릭 장사’에 이용하는 저급한 행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그동안 유명인의 죽음을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온 언론의 나쁜 보도행태를 지적해왔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언론의 장삿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죽음 앞에 최소한의 윤리마저 지키지 못하는 언론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존립할 이유도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11월 2~3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고 박지선 씨 사망 관련 보도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고인의 지병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보고서에서 인용된 기사 제목과 본문에 고인의 지병이 들어간 경우 ‘○○○’으로 대체했습니다.
※ 헬스조선 측의 요청으로 보고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표현을 11월10일 수정했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