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편집 없이 현장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이 영상은 6만 조회수를 넘길 정도로 주목 받았다. 

기승전 ‘유튜브’ 시대 시민단체도 유튜브에 뛰어들며 새로운 소통을 고민하고 있다.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를 통해 소통하는 시민단체·노조가 유튜브에 뛰어들면서 언론의 경쟁자가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2020 유튜브 저널리즘]

유튜브 도전하는 시민단체·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유튜브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언론사에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올리던 모니터 보고서를 ‘팟캐스트’로 선보였고, 이어 매체 환경 변화에 발 맞춰 ‘유튜브’에 옮겼다. 종편 막말 평론가 문제를 지적한 ‘퇴출이 필요한 종편 최악의 패널’ 영상은 88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서브채널인 ‘미디어 탈곡기’를 통해 미디어 비평 콘텐츠를 수시로 올리고 있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10월부터 지역언론 비평, 활동가 브이로그 등을 올리며 본격적인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 탈곡기'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 탈곡기' 갈무리.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딸인 최진주씨와 함께 ‘노으른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미디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모녀와 함께 이봉우 활동가가 출연해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뉴스를 설명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는 ‘유띵뉴스’가 대표 콘텐츠다. 모녀가 이슈에 대해 얘기하며 세대 간극을 좁히는 ‘모냐모녀 상담소’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인권센터는 ‘미픽’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 성소수자 유튜버 ‘채널 김철수’ 등 다양성 유튜버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유튜브 속 혐오표현 문제를 조명하는 콘텐츠도 제작한다. 정보인권 시민단체 진보넷은 ‘따오기’(따져보는 오늘의 기술이야기) 채널을 통해 정보인권 이슈에 대한 해설 영상을 올린다. 참여연대는 팟캐스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유튜브에도 파일을 올린다. 여성인권단체 가운데는 한국여성의전화가 기자회견, 캠페인 등을 유튜브에 적극적으로 올리고 있고, 환경단체인 서울환경연합은 환경 이슈를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로 주목 받았다.

기자회견, 집회시위를 중심으로 목소리 내던 노동조합도 유튜브 활동에 나서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는 파리바게뜨 카페기사들이 가면을 쓰고 과도한 업무량 문제 등을 폭로하는 콘텐츠를 올렸다. 전교조는 토크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데 ‘그것이 알고싶다 전교조 사건’처럼 전교조에 대해 알리는 콘텐츠는 물론 ‘선생님이 들었던 상처되는 말’ 등 교사로서 고충을 토로하는 내용을 담는다.

▲ 전교조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 전교조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 언론인권센터 '비건유튜버 초식마녀' 인터뷰
▲ 언론인권센터 '비건유튜버 초식마녀' 인터뷰

“인터넷 시대 이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아무리 우리가 운동하고 콘텐츠 만들어도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지, 무슨 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덩야핑 진보넷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동영상 시대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난해부터 유튜브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영상이 주목받는 사회적 추세에 더해, 노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안은서 서울환경연합 미디어홍보팀 활동가는 “우리 활동을 회원들에게 알리거나, 토론회를 여는 식으로 소통했는데, 유튜브를 통해 더 많고 다양한 분들과 접촉할 수 있다”며 “국제단체처럼 큰 시민단체는 인지도가 높은데, 국내단체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인력, 재원이 부족해 홍보하기 힘들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알릴 회가 적다”고 했다.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도 “시민단체는 시민과 소통하는 역할이 중요한데, 전문가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시민과 접점이 적었다”고 했다.  

유튜브에 나선 ‘노조’는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동시에 조합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노조에 파리바게트 청년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새 바람이 불었다. 뒤이어 IT 부문도 가입했다. 선전홍보 방식도 시대흐름을 따라야 하지만, 조직내부 문화도 그간 지속된 것에서 탈피해 밝은 이미지를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파리바게뜨 카페기사 이야기' 콘텐츠
▲ '파리바게뜨 카페기사 이야기' 콘텐츠

‘단독’ 올리고, 시민 참여 유도하기도

진보넷 ‘따오기’ 채널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온 콘텐츠는 ‘잘 나가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연구중단을 선언한 이유’ 영상이다. 인공지능 개발자 조셉 레드몬(Joseph Redmon)이 돌연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사물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인공지능 기술이 군사 및 감시 기술에 활용되는 걸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 이슈는 ‘따오기’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SNS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해 영상으로 만들게 된 이슈였다.” 황규만 진보넷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한국은 IT기술은 발전했는데 문제제기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보니 해외 SNS나 외신들을 주기적으로 보게 됐다”며 “한국 언론은 해외에서 특정한 이슈가 한바탕 몰아치고 난 다음에 받아쓰는 식으로 한 박자 느리기에 이런 식으로 해외 이슈를 소개했을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기자회견’ 생중계 직후 문자후원이 1000건 넘게 들어왔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당시 장소를 못 구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사무실에서 하게 됐는데, 장소 특성상 기자들이 많이 들어오지 못했다”며 유튜브 기자회견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생중계를 하긴 했는데 전체가 나가진 않았고, 지상파 등에서는 편집돼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 '따오기' 유튜브 콘텐츠  ‘잘 나가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연구중단을 선언한 이유’  갈무리.
▲ '따오기' 유튜브 콘텐츠 ‘잘 나가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연구중단을 선언한 이유’ 갈무리.

서울환경연합은 ‘쓰레기 박사’ 콘텐츠를 통해 단체 인지도가 올랐다. 서울환경연합 집행위원인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쓰레기와 관련해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답변을 하는 내용이다. 안은서 활동가는 “‘환경’에 대해 얘기하면 거시적이고, 내 일상과 동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쓰레기 박사’처럼 검색해서 찾아볼 만큼 일상에서 중요하고 직접 실천할 수 잇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와닿았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대중 접점 늘리려 악조건 속 ‘고군분투’

시민단체·노조 유튜브 채널 다수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너무 가볍게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만 할 수도 없다. 이들 단체가 겪는 이중고다. 황규만 활동가는 “시민단체는 각 분야에 전문성이 있지만, 오히려 대중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유튜브를 해도 속칭 ‘설명충’이 되기 때문에 단점이 드러난다”고 했다. 신동민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은 “(노조 유튜브 채널은)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영상과 대중에게 소구하는 영상 사이에 어떻게 할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한다”며 “1인 미디어가 하는 것처럼 독자의 흥미를 따라간다면 조회수 장사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조 채널로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의 '노으른자' 유튜브 콘텐츠 촬영 현장.
▲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의 '노으른자' 유튜브 콘텐츠 촬영 현장.

인력과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은 “유튜브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시민단체가 여력이 없다. 자원활동가들이 오면서 이들 덕분에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은서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압박 때문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는 활동가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상 제작과 유튜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쉽지 않지만 유튜브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기자가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기자회견을 한다. 시민단체는 이슈를 알리기 위해 활동을 하는데, 유튜브는 이슈를 알리기에 좋은 도구다. 성명을 쓰는 일도 가치가 있지만, 유튜브를 통하면 더 쉽고 전달력 있게, 파급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가 시민에게 알리는 방식에 고민이 필요하다. 당장은 구독자가 없더라도 계속 버티면 언젠간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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