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일보 사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지역 기업인·정치인 비리를 다룬 자사 기사를 수시로 삭제하거나 무마시켰다는 폭로가 나왔다. 

기호일보 노동조합은 2일 성명에서 한아무개 사장이 편집권을 침해했거나 침해한 정황이 보이는 사례 8건을 공개하며 “한 사장은 정언유착과 지면 사유화를 중단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에 따르면 기호일보는 2018년 3월9일 인천개인택시조합이 인천시장 출마 예정자였던 A씨 출판기념회에 참가하면 돈을 주겠다며 임원진을 집단 동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기사는 개인이 책을 사지 않고 제3자가 배포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상 ‘제3자 기부행위’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한 사장은 기사가 나간 다음날 취재 기자에게 전화해 ‘A씨 측이 곤란해 한다’며 취재 경위를 물었다. 이후 기사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삭제됐다. 

▲기호일보.
▲기호일보.

 

노조는 “기호일보는 믿고 제보해준 취재원들 사이에서는 ‘기호일보가 A후보를 밀어주려 한다’는 얘기가 공식화되기 시작했다”며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행위가 본보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대외적 신뢰를 추락시켰다”고 주장했다.

2018년 12월10일 한 인천시 국회의원 보좌관 B씨의 억울함을 다룬 기사는 후속 보도가 제지당했다. B씨는 이 의원의 빚 1억원을 대신 내줬으나 받지 못했고 의원 대신 실형을 받고 수감된 의원의 최측근 옥바라지에 수천만원을 썼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취재 기자는 3편 이상 기사를 내려 했으나 첫 번째 기사 준비 때부터 사장에게 쓰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 기자는 기사 한 편만 내고 후속 보도는 하지 못했다. 노조는 이에 “한 사장은 의원과의 친분을 내세워 1편부터 기사를 쓰지 말라고 압박했다”며 “이 때문에 1편을 쓸 때도 데스크가 의원과 한 사장 전화를 번갈아 받아가며 기사를 겨우 내보냈다”고 밝혔다. 

작성된 기사가 편집 과정에서 사라진 사례도 2건으로 나타났다. 2019년 10월23일 보도를 준비한 인천 소재의 한 버스회사의 이윤 편취 사건이 하나다. 업체가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개 가족들을 임직원으로 앉혀 10년간 30억원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노조는 “지역신문이 감시해야 할 공공기관의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쓴 기사였으나 한 사장은 지역 토착세력의 연락을 받고 편집국장에게 기사 삭제를 지시했다”며 “편집국장은 편집권 독립에 대한 의견 개진도 하지 않고 삭제했다. 이 일로 직원 한 명은 자괴감에 사직했다”고 밝혔다. 퇴사한 직원은 해당 보도를 데스킹했던 부장이다. 

이 밖에도 노조의 폭로 내용을 보면, 한 취재 기자는 2016년 11월23일 인천시의 한 고위공무원이 또 다른 고위공무원인 자신의 남편과 한 병원에서 수백만원대 공짜 진료를 받았다는 기사를 준비했으나 보도하지 못했다. 노조에 따르면 편집까지 끝난 상태였지만 사장이 가로막았다는 것. 

과거 지자체 보조금 사업 관련한 한 사장의 횡령 전과를 다룬 시민단체 기사도 막혔다고 노조는 폭로했다. 기자는 인천주민참여예산 정상화를 주장했던 이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취재했으나 '사장과 감정이 안좋다'는 사측의 제재를 듣고 기사를 쓰지 못했다. 

▲8월25일 뉴스타파 "[언론의 '공짜 취재'] ③ 김영란법 이후에도 계속됐다" 보도 중 관련 내용 갈무리. 기호일보가 인천관광공사에 지역언론 사장단 외유성 출장 경비를 요청해 논란이 됐다.
▲8월25일 뉴스타파 "[언론의 '공짜 취재'] ③ 김영란법 이후에도 계속됐다" 보도 중 관련 내용 갈무리. 기호일보가 인천관광공사에 지역언론 사장단 외유성 출장 경비를 요청해 논란이 됐다.

 

노조는 또 지난 9월7일, 10월8일, 10월23일자 특정 기사와 관련 “한 사장과 친분이 있는 지역 단체나 인사들이 취재 기자와 데스크도 모르는 취재 지시를 역으로 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며 “‘윗선에서 이야기가 됐다’는 단 한마디에 기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취재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이사회에 “언론 편집권 독립에 대한 개념도, 회사를 운영할 자격도 없는 한 사장을 즉각 해임 조치하라”며 “노조는 사장이 사퇴하거나 이사진이 (사장을) 해고한 뒤 공모제를 통해 내·외부에서 새 사장을 뽑을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기호일보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편집국 관계자는 “2019년 7월 편집국 임원이 바뀌어 이전의 사항은 사실 확인을 해줄 수 없다. 이후 사례들은 모두 편집국 회의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 기사 가치 판단인데 노조가 오해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는) 계속 사장이 편집국장에게 지시했다고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편집국 회의에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게 비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며 “보도가 중간에 무마됐다는 건 편집국 회의 자체 판단 결과다. 사장과 친분 있는 지역 인사를 취재하라는 지시도 따로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사장은 4일 입장을 묻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4일 인천참언론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사이비·범죄 행각을 일삼는 지역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며 “기호일보 서강훈 회장과 이사진, 직원들은 현재 지역사회에 불붙고 있는 투쟁의 불꽃이 조만간 기호일보로 옮겨붙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조의 충정 어린 요구를 받아들이라. 노조와 성실한 대화로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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