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저격리즘’에 파묻혀버린 언론
‘저격리즘’에 파묻혀버린 언론
[미디어오늘 1274호 사설]

한 군인 출신 인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유튜브에서 ‘인성에 문제 있어’라고 한 발언이 소위 뜨면서 그는 지상파 방송에 출연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위력이 확인되면서 광고시장에도 진출했다. 그리고 그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의 ‘폭로’로 시작된 각종 추문과 거짓말 주장을 기성언론이 가세해 보도하면서 말 그대로 뉴스가 쏟아졌다. 한국경제를 전망하는 대학교수 발언을 기사화한 보도엔 ‘낚였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대학교수와 군인 출신 인사의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의 무차별적 폭로로 언론 관심이 집중되고 덩달아 폭로에 폭로를 이어가는 현상이 계속되자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난 견인차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사이버 렉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발굴한 사실관계 하나만으로도 파급력이 큰 폭로는 저널리즘의 힘으로 통한다. 폭로 형태의 보도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거나 의혹 단계여도 교차 확인이 가능한 정황을 확보했을 때 힘이 실렸다. 사회 인식을 바꾸거나 교정하는 것이 뚜렷하고 나아가 치부를 드러내 자기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 등이 폭로 저널리즘의 조건이었다.

역설적으로 기성언론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튜브 등 여러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1인 미디어가 각광을 받았다. 1인 미디어가 폭로 저널리즘의 원형을 회복시켜주리란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유튜브 채널의 폭로는 ‘저널리즘’을 붙일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오로지 상대방 ‘저격’만이 목표가 되면서 미확인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기자 출신 인사가 만든 유튜브 채널이 유독 저격에 목을 매며 저널리즘 원칙에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기성 언론에서 검증을 바탕으로 한 취재 경험이 전무하지 않을 테지만 상대방을 저격해 관심을 끄는 것이 곧 돈이 된다는 것을 동물적으로 익혔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실은 유튜브 채널의 저격에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는 기성 언론 모습이다. 실력이 없거나 눈치가 보여 폭로 저널리즘을 행동에 옮기지 못할지언정 ‘누가 누구를 저격했네’라며 떠들썩하게 뉴스를 쏟아내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무차별적 주장의 신빙성을 가리고 검증하는 게 언론 역할이지만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의 자극적 주장을 퍼 날라 장사하고 있는 셈이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 추미애 법무부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립 구도로 놓고 쏟아내는 뉴스 역시 양쪽의 ‘저격’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싸움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게 언론의 속성이지만 정파적 입장을 물씬 풍기는 대립 구도형 보도는 정작 필요한 뉴스를 우리 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지난 9월 인천시 한 빌라에서 초등학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가 발생한 사고다. 초등학생 형제는 큰 화상을 입었고, 결국 사고 한 달 만에 동생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한국 사회 돌봄 제도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촘촘한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이 이를 촉구해야 하지만 근 한 달 동안 언론은 화재사고부터 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을 ‘비극’의 소재로 활용하는 데 바빴다.

“서울의 종합병원 환자가 레지던트 파업으로 하루 이틀 치료를 못 받는 것에 격분하는 기자는, 이 나라의 1342개면 가운데 거의 반절인 630개 면이 의사 없는 무의촌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1971년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50년 전이지만 2020년 현재 기자 사회를 향한 비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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