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과속 질주’를 하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박대변인이 방송 개혁 방향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서 방송개혁위원들의 문제제기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박대변인은 구랍 23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 강연회에서 “KBS를 실질적으로 공영화하기 위해 2TV의 광고를 폐지할 방침”이라며 “중장기적 과제로 2TV를 분리해 민영화할 방침이며 광고 폐지에 따른 수입 감소는 시청료 인상으로 보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MBC와 SBS 등 다른 공중파 방송은 중간 광고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박대변인은 이같은 발언이 “방송개혁위원회의 활동 방향을 거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대변인 스스로도 방송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될 내용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박대변인의 이런 발언은 곧바로 방송개혁위원회쪽의 반발을 샀다. 구랍 28일 남한강 수련장에서 있은 방송개혁위원회 실행위원 워크샵에서 강대인 부위원장은 “(박대변인측에)항의했으며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아냈다”며 “만일 재발될 경우엔 위원회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방송개혁위원회측의 반발은 박대변인이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대변인의 발언은 당초 정부 여당이 방송개혁위원회를 발족하게 된 취지와 상충된다.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월 방송 노조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방송계 구조개편과 관련한 논의는 완전 무효”라고 밝혔다.

김의장은 “모든 것을 새롭게 논의하자”며 방송개혁위원회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방송 노조 등도 이런 정부 여당의 ‘선의’를 받아들여 구랍 22일 방송개혁위원회에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대변인이 방송개혁위원회의 ‘활동 방향’을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은 방송개혁위원회 구성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전 각본설’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모든 것을 새롭게 원점에서 논의하자며 방송 개혁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방송개혁위원회에 위임한다고 해놓고 권력 핵심부에서 딴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방송 노조와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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