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다음날에도 여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대통령 연설과 관련해 야당은 고성을 지르며 반발하고, 여당은 기립박수쳤던 모습이 작금의 갈등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대통령경호처로부터 몸수색 요구를 받은 일에 대한 항의를 거듭했다. 29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 원내대표는 “환담장에 가려다가 수색당한 일과 그 이후의 청와대 태도는 제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면서도 “100일 전 대통령께 드린 10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까지 없고, 이틀전에 다시 드린 10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겠단 말도 없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주 원내대표는 “협치, 협치 강조하는데 문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는 청와대·민주당 따라주면 협치고, 그렇지 않으면 협치가 아니라는 ‘우리는 협치할 생각 많은데 야당이 따르지 않는다’는 프로파간다로 여겨진다”면서 “지도자의 힘은 말의 신뢰에서 나온다. 말이 현실에서 떨어지면 신뢰를 잃고 용어마저 뜻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 협치를 하려면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협치를 하고,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 협치의 본래 뜻이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앞둔 28일 국회 본청 입구에서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펀드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앞둔 28일 국회 본청 입구에서 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펀드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문 대통령이 555조8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요청한 데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 5.9%, 박근혜 정부 4.9%에 비해 문재인 정부 예산증가율은 무려 9%가 넘는다”며 “선도국가가 되면 좋지만 부채국가, 빚쟁이 국가, 채무국가만 되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어제 연설 중 민주당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친 ‘2050년까지 탄소제로국가를 만들겠다’는 것도, 임기가 20개월 남지 않은 대통령이 50년 언급한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아연실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는 국민의 힘에 대해 “국회 품격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입장할 때 국민의힘의 고성, 집단시위는 누가 보더라도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면서 “깊은 유감”을 밝혔다. “정치는 ‘거울효과’가 있다”며 “어제 국민의힘이 보여준 품격 없는 태도 때문에 유권자인 국민의 사회적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염려된다”고도 했다.

예산안에 대한 국민의힘 반발은 “이번 예산안마저 정쟁의 볼모로 삼겠다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김 원내대표는 “코로나 위기 극복, 민생경제회복, 선도국가 도약을 위해 어느 때보다 재정 역할이 중요하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 경제기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라며 “어제 국민의힘은 예산심사를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한국판 뉴딜’ 예산을 최소 50% 이상 삭감하겠다는 선포부터 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예산 심의만큼은 정쟁 대상이 아니라 정책과 대안으로 경쟁하는 생산적 국정논의의 장이 돼야 한다. 국민의힘도 국민의 민생,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좋은 사업을 발굴·제안하고 필요한 예산을 탑재하자고 제안하는 게 맞다”며 “국민의힘이 뉴딜 예산 절반이상을 삭감하겠다는 건 위기극복과 미래전환을 거부하는 걸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시대적 대전환, 거대한흐름에 역행하지않길 바랄 뿐”이라 주장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날 두 당의 회의에선 문 대통령 연설에 여당 의원들이 보낸 박수를 두고도 엇갈린 시각이 드러났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문재인 정권의 안하무인, 오만함, 무책임의 집대성이었다”며 “대통령이 내놓은 경제, 부동산, 안보문제 해법은 동문서답, 무책임 그 자체”라 맹비난했다. “집권여당의 25번 박수가 아닌, ‘이게 나라냐’는 절규를 경청할 때 대한민국 경제가 반등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어제 시정연설 과정에서 야당이 보여준 방식은 혹시나 환영소리가 안 들릴까봐 소리를 지른 것 같은데, 너무나도 그런 방식을 많이 봐서 국민들은 특별한 생각을 안 한다”고 비꼬았다. 한 의장은 “그 가운데 많은 의원들의 기립박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내용이 어느 부분인지 기억해야 한다. 바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로 나아가겠다는 대통령의 천명이었다”며 “2050 탄소중립은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9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는 내달 4일로 연기됐다. 해외순방 이후 자가격리 중인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이 불참을 통보하자 국민의힘이 반발하면서 일정이 조정됐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등은 국회 운영위 회의장에서 대기하다 일정 변경 소식을 듣고 돌아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