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요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자막이 규정 위반이라며 법정제재를 추진하자 한국PD연합회가 26일 “살아 있는 언어를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반발했다.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지난 22일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MBC ‘놀면 뭐하니?’, SBS ‘박장데소’, 채널A ‘도시어부’, JTBC ‘장르만 코미디’,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등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송심의 규정 조항(방송언어)을 위반했다며 법정제재 ‘주의’를 의결했다. “신조어와 인터넷 용어를 자막으로 사용해 방송 품위를 저해하고 한글의 올바른 사용을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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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제재 확정 여부는 다음달 전체회의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들 방송은 ‘덕후’ ‘찐 성덕’ ‘오빠 말씀 is 뭔들’ ‘저는 그런 얘기 many 들어쒀요’ ‘Aㅏ...반려동물...?’ ‘Go! 조지 Go!’ ‘This is 나전칠기~오케이?’ ‘so 당황’ ‘I love 지미유’ ‘Hey! Don’t 무시해 me’ ‘부캐’ ‘핵인싸’ ‘HIP한 데이트’ 등 영어와 신조어, 온라인 유행어를 자막으로 조합해 방송했다.

한국PD연합회는 26일 성명에서 “우리는 욕설, 비속어, 혐오 표현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 법정제재를 가하려는 방통심의위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다음달) 본회의에서 불행한 결정을 내리지 말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 지난달12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
▲ 지난달12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

PD연합회는 “‘덕후’, ‘찐 성덕’, ‘소장템’, ‘HIP한 데이트’, ‘빵덕’, ‘부캐’ 등 이번에 문제된 자막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이라며 “현실에서 사용하는 살아 있는 말들을 배제한 채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방통심의위가 법정제재를 강행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PD연합회는 “예능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과 달리 훨씬 더 다양하고 미세한 감정 표현과 상황 묘사가 필요하다”며 “새 표현 방식을 통해서 감성과 사고가 더 유연하고 풍성해지는 측면도 있다. 이런 언어가 사회에서 상당 기간 공감과 생명력을 얻는다면 새로운 표현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PD연합회는 “이번에 제재 대상에 오른 ‘덕후’, ‘핵인싸’ 같은 단어도 국어학회는 새로운 단어로 인정해 국어사전에 올린 지 오래”라며 “‘헬조선’, ‘1도 없는’, ‘지못미’, ‘법알못’, ‘늘공’, ‘어공’, ‘노잼’처럼 일상회화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을 제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들 때문에 우리말이 망가졌다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말의 생명력과 포용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방영된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지난달 12일 방영된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PD연합회는 “프로그램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통용될 수 있는 말들에 규제의 가위를 들이대는 게 능사가 아니다”며 “예능 프로그램 언어가 우리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PD들이 제작에 임할 때 취해야 할 적절한 중간선 또는 균형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올바른 우리말을 위해 한발 앞서서 노력해야 하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부정하는 PD는 없다”며 “차별 언어와 혐오 표현은 강력히 규제하라. 그러나 살아 있는 일상 언어에 재갈을 물리는 건 곤란하다. 방통심의위는 예능 프로그램 언어에 법정제재를 가하지 않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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