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방영 전 기획 기간엔 방송작가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거나 삭감하는 ‘기획료’ 관행을 시급히 근절하라는 국회 지적이 나왔다. 작가들은 프로그램 방영만 기대하며 상황을 감내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다수 프로그램 방영이 지연·취소된 올해 더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은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코로나19가 방송계의 약자인, 프리랜서라는 이름에 맞는 자유로운 노동 형태가 아닌, ‘비정규직에 가까운’ 처우로 제공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조차 지불받지 못하는 방송작가들을 더 힘들게 한다”며 “노동의 대가가 미지급되는 문제는 비단 막내작가만이 아닌, 프리랜서 방송인 전체의 문제이므로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국정감사 중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발표자료.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종합국정감사 중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발표자료.

이 의원이 말한 방송작가 기획료 미지급 문제는 프로그램 방영 전 프로그램명, 기획 의도 및 방향성, 출연진, 아이템 등을 정하는 ‘기획 기간’에 작가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다. 통상 1~2년 차 취재작가는 기존 임금의 100%, 3~5년 차 ‘서브작가’는 70%, 5년 차 이상 서브작가는 50%, 10년차 이상의 메인작가는 0~30% 정도를 받는다. 작가들은 방영 이후보다 더 강도 높게 일하지만 임금은 삭감된다며 ‘공짜노동’이라고 오래 지적해왔다. 

작가들 수입 삭감은 코로나19 때문에 더 심화됐다. 이 의원이 전국언론 방송작가지부로부터 확인한 설문자료(응답자 152명)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기획하거나 신규제작 중이던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가 취소됐다’는 응답율은 26%에 달했다. ‘섭외·촬영 불가로 방송일이 연기됐다’는 응답도 21%였다. 방영 후 정상 수입을 기대했지만 프로그램 취소 등으로 수입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 의원은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근 방송작가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작가는 “3~4월 기획했고, 5월부터 상근했으나 6월28일 기준, 단 한 번의 기획료와 페이(임금)도 못 받았다”고 밝혔다. “기획 단계 2달 간 임금없이 일했다. 노동하면서도 적금을 깨가며 생활하는 작가들 실상을 알아주면 좋겠다”거나 “12주 일하고 3.5주의 임금을 받는 정도이고, 지급일이 다음 달 말이면 무임금 기간은 엄청 길어진다”는 호소도 있었다. 

이 의원실은 “2020년 8월 기준, 프리랜서 월평균 소득은 202만 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소득으로 생활한다”며 “특히 작가 직군의 월평균 소득은 172만5000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방송작가지부가 펴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방송작가 피해 설문조사결과 보고서' 중
▲지난 4월 방송작가지부가 펴낸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방송작가 피해 설문조사결과 보고서' 중
▲2019년 방송작가지부가 조사해 6월 발표한 ‘2019년 방송작가 유노동 무임금 실태조사’ 결과 중 기획료 언급 부분.
▲2019년 방송작가지부가 조사해 6월 발표한 ‘2019년 방송작가 유노동 무임금 실태조사’ 결과 중 기획료 언급 부분.

이 의원은 또 “기획료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KBS, MBC, EBS는 명확한 지급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획료 지급 현황에 대해 세 방송사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BS는 “기획료는 제작자와 해당 작가의 협의 하에 작가 경력, 제작 기간, 숙련도 등을 고려해 책정한다”고 답했다. EBS는 “기획료와 원고료를 따로 분리하지 않아 관련 통계 집계가 어렵다”고 답했고 MBC는 ”계약서상 비밀유지 의무 및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했다. 

이 의원실은 나아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위원과 협업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부문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지원에 활용하는 비정규직 약 8000명 중 15.9%가 프리랜서고, 이 중 약 35%에 달하는 방송작가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이와 관련 KBS와 MBC는 방송사 프리랜서 인력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본 의원실에 송부했다”고 꼬집었다.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 방송 4개사는 언론노조와 2018년 9월 산별협약을 맺고 방송사 계약직, 프리랜서, 파견·용역·도급 노동자 고용 실태와 처우 개선 방안 연구에 착수한다고 합의했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 “2020년인 현재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지상파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 고용구조 및 처우개선이 미이행된 것은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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