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 PD와 이재학 PD는 가장 많이 닮았던 사람 같습니다. 이재학 PD는 제가 가족으로 생각했던 그보다 더 강인하고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저와 한빛 PD 아버님도 이재학, 이한빛 PD와 다른 곳에 있지만 그 뜻과 의지, 마음은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동생 이대로씨)

오는 26일 고 이한빛 PD 4주기를 앞두고 이한빛 PD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 주최로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한빛센터 라운지에서 진행됐다.

이한빛 PD는 2016년 CJE&M에 입사해 프로그램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 업무 과중과 비정규직 해고담당 등 부당한 업무 강요, 인격모독 등을 고발하며 생을 마감했다. CJE&M은 이한빛 PD 근태 불량을 주장했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꾸려져 방송제작 환경의 부당행위가 드러났고, CJE&M는 공식 사과와 함께 책임자 징계,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센터 이사장은 “한빛 엄마는 지금도 한빛이가 곁에 없다는 것을 때로 실감하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할 때, 멋진 옷을 입고 지나가는 청년을 볼 때다. 특히 TV와 드라마를 보지 못한다”며 “저는 한빛이가 상암DMC 어디선가 ‘아빠’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한빛센터가 방송노동자 인권지킴이로 자리 잡은 건 온전히 대책위 때부터 함께해 준 수많은 분들의 지원과 응원 덕”이라고 말했다.

▲24일 이한빛 PD의 4주기 추모제에서 이한빛 PD의 부모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혜영씨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4일 이한빛 PD의 4주기 추모제에서 이한빛 PD의 부모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과 김혜영씨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서울대 민주동문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오는 26일 이한빛 PD 4주기를 앞두고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한빛센터 라운지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서울대 민주동문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오는 26일 이한빛 PD 4주기를 앞두고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한빛센터 라운지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추모제에선 제1회 이한빛 PD 미디어노동인권상 시상식이 열렸다.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와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공동 수상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 일하다 2018년 제작진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그는 프리랜서 PD들에게 적용할 판례를 만들려 소송을 택해 법적 다툼하다 숨졌다. 청주방송은 △공식사과·책임자 조치 △명예회복 △비정규직 고용과 노동구조 개선 등 6개 의제에 합의했지만 ‘책임자 징계’와 ‘항소심 협조’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사측이 아나운서 중 여성만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온 사실을 공론화해 인권위에 진정한 뒤 1개 프로그램을 빼고 하차 당했다. 대전MBC는 인권위 권고를 일부 수용해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고 이재학 PD를 대리해 수상한 동생 이대로씨는 “제가 노동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왔던 사람은 아니다. 이한빛 PD와 이재학 PD는 가장 많이 닮았던 사람 같다”며 “이재학 PD는 제가 가족으로 생각했던 이재학보다 더 강인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앞으로 형과 이한빛 PD의 뜻을 잘 이어가고 꼭 그들이 원했던 방송현장을 개선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앞장서서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잠시 침묵한 뒤 목메인 소리로 “이해는 아직까지 잘 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다 안 된다. 그래도 그 뜻을 이어 그들이 원했던 그대로 따라가고 함께 하겠다”며 “동료를 위해 굳이 소중한 인생을 바친 이한빛, 이재학 PD를 대신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가 24일 제 1회 이한빛 PD 미디어노동인권상을 수상한 이재학 PD의 상을 받은 뒤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가 24일 제1회 이한빛 PD 미디어노동인권상 수상자 이재학 PD의 상을 대리수상한 뒤 이 PD를 떠올리며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24일 제 1회 이한빛PD 미디어노동인권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24일 제 1회 이한빛PD 미디어노동인권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유 아나운서는 “내가 겪은 일이 부당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시작한 일인데 싸움 끝에 노동인권상이란 큰 상을 주셔서 부끄러움이 앞선다”며 “개인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임을 배우고 싸우며 성장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아나운서는 “회사에 문제 제기한 뒤 혼자 싸움에 남겨진 상황이었다”며 “공동대책위가 꾸려지고 많은 분이 한 마음으로 함께해 인권위가 좋은 결정을 내려줬다”고 했다. 유 아나운서는 “함께 외친 분들의 마음과 일터에서 아프고 부당한 일들 겪는 다른 이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방송현장 개선 우수사례 공모전에선 댕댕이(대상), 고아영씨·방송작가유니온의 붉은달(최우수상), 김민경씨·대구MBC 다온분회의 윤인아씨(우수상)가 수상했다. 이들은 각각 방송제작사에 입사해 대체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해고 당한 뒤 부당해고를 다투는 과정, 방송작가로 겪어온 부당한 고용·노동 양태와 차별에 대한 경험, 방청과 보조출연 ‘알바’ 노동 경험 등을 수기로 썼다. 영상 부문에선 방송국 비정규직 노조를 세운 뒤 1인 피켓시위 등으로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모습을 담은 언론노조 대구MBC 다온분회와 조명 스태프로 경험을 독백한 전승현씨가 수상했다.

▲방송현장 개선 우수사례 공모전 영상부문에 수상한  대구MBC 다온분회와 전승현씨. 사진=김예리 기자
▲방송현장 개선 우수사례 공모전 영상부문에 수상한 대구MBC 다온분회와 전승현씨. 사진=김예리 기자

이승한 TV칼럼니스트는 이날 추모 발언에서 “직접적 이해관계에 얽혀있지 않다면 얼마든지 정의롭고 입바른 소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밥줄과 커리어, 안위가 걸리는 순간 사람들은 ‘밖에 볼 땐 몰랐는데, 내부 사정이 있다’고 말한다”며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건 사람들이 남일에 정의로운 만큼 내 일에도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는 “이한빛 PD는 사람이 사람에 가혹해선 안 된다고 끝까지 목소리를 내길 택했고, 우리가 지금 여기 모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가 24일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승한 TV칼럼니스트가 24일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이한빛 PD의 친구 이지윤씨가 24일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이한빛 PD의 친구 이지윤씨가 24일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이한빛 PD의 친구 이지윤씨는 “한빛이는 언제나 소수자성에 대해 항상 가까이 가려, 또 어떻게 함께할지 고민했다. 익숙잖은 의상을 소화하기도 하고, 화장을 하기도 했다”며 “대책위가 만들어지고서 (CJENM에) 한빛이가 화장하고 다니는 게 낯설고 이상해보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일터에서 얼마나 사람을 가르고 차별하고 폭력을 만드는지 그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 시와가 24일 고 이한빛 PD 4추기 추모제에서 노래 공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싱어송라이터 시와가 24일 고 이한빛 PD 4추기 추모제에서 노래 공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청년유니온의 이채은씨는 “4년 전 고 이한빛 PD 관련 기사를 쉽게 읽어내릴 수 없었다. 그가 겪은 욕설과 구설, 비정규직을 자르는 일이 아직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의 따듯한 온기가 식지 않도록 일터에서 외롭고 힘든 사람이 있다면 손잡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추모제는 싱어송라이터 시와의 노래공연과 이한빛 PD를 기리는 추모가 상영이 이어진 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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