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구제해선 안 된다는 국민청원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23일 류근혁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은 지난 8월 의료계 파업과 관련된 △의료악법 개정 △의대생 국시 재접수 반대 △의사협회 집단휴진 강력 대응 △공공의대 정책 철회 등 청원 4건에 답했다.

동의 수가 가장 많은 청원은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8월24일 게시돼 57만1995명이 동의했다. 당시 청원인은 “단체로 시험을 취소한 것은 결국 나라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구제를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단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시험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집단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인은 “추후 구제, 또는 특별 재접수라는 방법으로 의사면허를 받게 된다면 그들은 국가 방역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총파업을 기획하고 있는 현 전공의들보다 더한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일 것이며 그때마다 국민들은 질병 자체에 대한 불안함 보다 더 큰 불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구제를 반대했다.

류근혁 비서관은 “정부는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9월1일부터 9월4일에 재접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였고, 시험을 1주일 연기하였다. 이후 9월4일에 정부와 의료계가 의정협의체를 구성하여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자고 합의함에 따라 재접수 기한을 9월6일까지로 추가 연장했다”며 “그러나 2차례의 재접수 기회 부여와 시험일 연기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응시생들이 재접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8일부터 응시의사를 밝힌 438명만을 대상으로 실기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이어 “의사 국가고시의 추가적인 기회 부여에 대해서는 이미 2차례 재접수 기회를 부여한 점, 현재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점, 의사국시 실기시험 이후 실시하는 다른 직역 실기시험 일정,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여권은 ‘재응시 반대’ 여론에 힘입어 ‘원칙적인 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다.

파업을 강행한 대한의사협회에 대해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의료계 협의체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다. ‘의대생 구제 반대’ 청원과 같은 날 게시된 이 청원에는 22만3665명이 동의했다. 청와대는 “9월4일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라는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며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여,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편 △공공의료 강화 △지역의료 격차해소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을 논의하여 발전적인 정책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의료계 파업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공공의대 정책의 완전한 철회를 청원한다”는 청원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증원이 어떻게 의료질 상승으로 이어질지 합리적 근거 없음 △인구당 의사수가 경기도보다 많은 전라도(목포∙남원)에 왜 공공의대 설립 △법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당해 지역 부지 구입 및 토지보상 △선발방식이 제대로 구상되지 않음 △공공의대 3할 인력을 서울∙경기에 배치 △코로나로 국민 보건 위협받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정책 강요로 의사파업 유도 등 이유로 관련 정책을 철회하라 촉구했다. 20만7701명이 동의했다.

▲ 류근혁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23일 의료계 집단휴업(파업) 관련한 청원들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채널 갈무리.
▲ 류근혁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23일 의료계 집단휴업(파업) 관련한 청원들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유튜브

청와대는 이 청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류 비서관은 우선 “청원인께서는 공공의대라고 말씀하셨으나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사항은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이므로 국립의학전문대학원이라고 하겠다”고 용어를 정리한 뒤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정책은 지난 9월4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와의 합의에 따라 중단된 상태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앞으로 의정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발전적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류 비서관은 “청원인께서 오해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다며 크게 네 가지 근거를 댔다. △별도의 의대 정원 증원 없이 전북대∙원광대에 임시 배정돼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할 예정 △국립의전원은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 곳으로써 학생들은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교육을 받고 10년간 정부기관 및 공공병원에서 역학조사관, 필수의료분야 의사 등으로 의무복무 △일반적인 의전원 입학전형과 동일한 방법으로 선발 △국립의전원 설립은 2015년에 관련 연구용역 실시, 2018년 추진방안 발표, 제20대 국회에 관련 법안 제출 등 수 년간 전문가, 의료계와 논의해 온 사항 등이다.

아울러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공공의료인력 확충이 중요한 것임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공공의료인력을 양성함과 동시에 2018년에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2019년에 발표한 지역의료 강화대책과 함께 종합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겠으며, 관련 법률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므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되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한편 청와대는 의사면허 유지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청원(의사집단을 괴물로 키운 2000년 의료악법의 개정을 청원합니다)에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을 논의할 것으로 기대하며, 정부도 관련 논의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31일 게시된 이 청원에는 36만234명이 동의했다. “의료인은 살인, 강도, 성폭행을 해도 의사면허가 유지된다”며 “당시 이 의료악법은 ‘의사’가 발의하고, ‘의사’가 법안심사소위원장을 했으며, 보건복지위원에 ‘의사’가 5명이나 있었다. 악법을 개정하기 위해 2018년 11월 까지 총 19건이 발의 됐지만 의사들의 반발로 단 한건도 통과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내용이다.

류 비서관은 “청원인의 말씀대로 살인, 성폭행 등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의사면허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국민들이 불안해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면허가 취소된 경우라고 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면허를 재교부 받고 있는 점 또한 국민이 이해하시기 어려운 점”이라며 “다른 국가의 입법례, 다른 전문직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의사 면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이어 “현재 면허가 취소된 이후 재교부할 때에는 행정처분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에서는 위원회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하여 해당 위원회에 공익을 대표하는 인사를 추가하는 등 심의의 객관성을 높이는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서는 면허를 취소하거나, 범죄 유형과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또한 면허가 취소된 경우에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거나 재교부 금지 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