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1호기 감사는 국회가 2019년 10월1일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한수원 이사들의 배임행위에 대한 감사’를 요구해 이뤄졌다. 그리고 386일 만인 지난 20일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판단은 없었다. 그러나 또다시 정치권은 공방을 벌였다. 이 모든 공방의 중심에 언론이, 조선일보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2월24일 월성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내리자 다음날 조선일보는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억지 폐쇄했다”며 ‘공세’를 예고했다. 이후 조선일보의 ‘월성1호기’ 관련 보도 프레임은 ⓵ ‘조기폐쇄’라는 부당한 전제를 세우고 ⓶ 경제성 저평가 논란을 부각해 원전 폐쇄의 핵심원인인 안전성 논란을 없애버리고 ⓷ 탈석탄·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을 정쟁 이슈로 묶어버렸다. 그 결과가 “원칙을 무시하고 근거도 없이 추진됐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사망 선고”라는 10월20일자 국민의힘 논평이다. 

월성1호기 감사를 둘러싼 논란은 언론이 만들었고 조선일보는 논란을 주도했다. 월성1호기 영구폐쇄가 결정된 다음 날인 2019년 12월25일부터 올해 10월21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 보도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감사원’과 ‘월성’이 동시에 들어간 기사 건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조선일보는 164건으로 중앙일보(79건)와 동아일보(39건), 문화일보(90건), 한국경제(75건), 매일경제(64건)를 압도했다. 같은 기간 ‘감사원’과 ‘월성’이 포함된 단독 기사는 총 40건이었는데, 이 중 조선일보 단독이 18건이었다. 조선일보 기사 164건의 ‘연관어 분석’ 결과 △조기폐쇄 결정 △감사 결과 △한수원 △탈원전 △경제성과 같은 단어의 비중이 높았다. 

당장 국회에서 조선일보와 감사원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TV조선과 조선일보가 단독을 달고 감사원의 월성1호기 가동중단 관련 감사 보도를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감사원 내부 사정 아는 사람의 진술이나 자료 제공이 아니고선 쓸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는 감사원장 심경까지도 기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은 “조선일보에서 강도 높은 수준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이 연이어 실렸는데 칼럼 쓰신 분이 공교롭게도 (감사원장과) 동서지간이다”라고 꼬집으며 “감사 방향에 (동서지간이) 영향을 미친 바 없다고 했는데 믿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10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이 최재형 감사원장과 동서지간이다. 이날 최재형 감사원장은 “제가 (조선일보에) 기사를 줬다는 말입니까”라고 되물으며 “감사 관련 보도 내용을 보면 수많은 오보의 연속이다. 내부자가 줬다면 저런 오보가 나올 리 없다”고 답했다.

▲지난 15일 감사원 국정감사의 한 장면. ⓒ박주민TV
▲지난 15일 감사원 국정감사의 한 장면. ⓒ박주민TV

 

조선일보의 ‘경제성’ 프레임이 지워버린 ‘안전성’

조선일보는 지난 1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받은 삼덕회계법인의 용역보고서 초안 등을 근거로 한수원이 월성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3번에 걸쳐 축소·은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도는 3707억 원, 1778억 원, 224억 원이란 각각의 금액 변화가 적용 변수 차이에 따른 것으로 조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한수원과 산자부의 반론이 실리며 마무리됐는데, 이 같은 보도는 월성1호기 폐쇄 논의를 ‘경제성 논란’ 프레임으로 묶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조선일보의 지난 21일자 사설 첫 문장도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서 경제성 평가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적었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는 21일 성명을 내고 “감사원은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의 문제를 감사 범위에서 제외했다. ‘월성1호기가 안전한데도 조기 폐쇄해 경제적으로 손실’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가지고 월성1호기를 감사한 것”이라며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해바라기’는 “감사원이 ‘안전성’을 감사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월성1호기 안전성’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면 조기폐쇄가 타당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해바라기’는 또한 “감사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을 평가하려고 했다면 한수원의 판매단가와 원가만을 따지는 회계적 관점이 아니라, 여러 발전원간의 원가비교가 가능한 균등화발전원가 산정방식으로 경제성을 평가해야 한다”며 “월성1호기가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고 경주지역이 지진위험이 높은 점에 비추어, 감사원은 한국전력의 균등화발전원가 보고서에서 추산한 월성원전 중대사고 시 약 1420조 원의 손해비용을 경제성 평가에 반영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감사원은 월성1호기를 계속 가동하기 위해 투입했어야 할 안전성 확보 비용을 경제성 평가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 잘못도 저질렀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경제성 논란은 왜 벌어졌나. 환경 전문 변호사 출신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와 관련, “계속 운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경제성 평가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보니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논란”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주도한 월성1호기 경제성 프레임은 감사대상에서 ‘안전성’을 제외한 대목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았다. 1983년 등장한 월성1호기의 내진 설계는 국내 최저 수준이었고, 월성과 멀지 않은 경주지역에선 대규모 지진이 있었으며, 노후 원전인 탓에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기준이 적용되지도 않았던 사실이 조선일보가 강조한 ‘경제성’ 논란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모두들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원전’ 언론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

▲폐쇄된 월성 1호기. ⓒ연합뉴스
▲폐쇄된 월성 1호기. ⓒ연합뉴스

 

정작 ‘월성1호기 수명 연장의 불법성’은 묻혔다 

이러면서 정작 필요한 지적은 가려졌다. 월성1호기는 이미 2012년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됐다. 2015년 이뤄진 월성1호기 수명 연장의 불법성은 이미 2017년 2월 박근혜정부 시절 서울행정법원이 인정했다. 朴정부 한수원은 월성1호기 설계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허가가 나기도 전에 약 7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런데 여태껏 처벌·징계받은 사람이 없다. 언론은 혈세를 날리며 위법까지 저지른 월성1호기 수명 연장 과정부터 감사원이 제대로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 ‘친원전’ 언론은 불법 수명 연장을 저지른 朴정부 한수원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물론, 수명 연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조기폐쇄’ 프레임으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월성1호기 적자 규모는 2008~2017년 총 8799억원 수준(추정)이다. 가동이 멈춘 시기를 제외한 10년간,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도 늘 적자였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수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중수로 원전 이용률에서 월성 1호기는 2015년 95.8%, 2016년 53.3%, 2017년 40.7%로 박근혜정부에서도 매해 눈에 띄는 하락세였다. 이용률이 매우 높았던 2015년에도 월성1호기는 840억원 가량의 적자를 봤다. 

양이원영 의원은 이번 감사와 관련한 20일 논평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월성 1호기는 경제성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은 원전이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매년 1000억 원가량의 적자가 발생하고, 주변 지역 주민들의 몸속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끊임없이 검출된다”며 “이제 월성 1호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영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감사원은 어떤 정책이 좋은 정책이냐 나쁜 정책이냐 이걸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감사원은 공무원들의 위법·부당 행위나 비위 사실을 밝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통상적인 감사에 불과한 이번 감사를 마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심판대인 양 논란으로 만든 것은 최재형 감사원장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지만, 더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세대의 대변인’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20일 국내 언론(한겨레)과 첫 인터뷰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으나, 묻혀버렸다. 

조선일보는 2018년 12월11일 “한국전력이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가 언급한 사업은 동북아 수퍼그리드 프로젝트로, 박근혜정부에서 이미 추진 중이었다. 조선일보는 2016년 6월26일자 ‘통일한국은 에너지 대박’ 기사에서 “한국전력은 동북아 수퍼그리드가 구현될 경우 발전소 신규 증설의 대체효과는 물론, 국가 간 전력요금 차이를 이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긍정 보도했다. 월성1호기 감사를 둘러싼 일련의 보도는 ‘동북아 수퍼그리드’처럼 정파적 보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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