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로 돈을 버는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정보통신사업자에 개인정보 보호 책임을 지우기 위해 ‘국내대리인 지정제도’가 신설됐지만 정작 방송통신위원회는 대리인에 관련 조치를 한 차례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부의장이 방통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통위는 지난해 3월 국내대리인 제도가 시행된 뒤 1년 6개월 간 대리인에게 자료제출이나 시정조치를 한 차례도 요구하지 않았다. 방통위는 또 신설 당시 지난해까지는 계도기간을 운영한 뒤 실태점검과 사실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김 부의장실에 따르면 이뤄지지 않았다.

▲김상희 국회 부의장. 사진=민중의소리
▲김상희 국회 부의장. 사진=민중의소리

개정 정보통신망법(32조5)은 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사업자가 자격을 갖춘 법인을 국내대리인으로 지정해 △이용자 고충 처리 등 정보보호책임자로서 업무 △개인정보 유출시 사실 통보 △정부조사시 자료제출을 비롯한 협조를 맡기도록 의무화했다. 적용 대상 기업은 전년도 매출액이 1조원 이상이거나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한 사건 사고가 발생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어 방통위에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사업자다.

올해 6월 기준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에어비앤비, 라인 등 32개의 업체가 국내대리인 지정 대상 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김 부의장은 23일 방통위 국감에서 “굉장히 많은 국내외 논의를 통해 어렵게 만든 제도인데 어떻게 방통위가 유명무실화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규정을 적극 해석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지난 1년 간 우리 사회에 디지털성범죄 관련해 국민적 걱정이 엄청났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시행성과가 어떻게 0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대리인 제도가 시행된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디지털 성범죄 적발 건수는 5만 686건이다.

▲2020년 6월 정보통신망법 32조의5에 따른 국내대리인 지정 현황. 김상희 국회 부의장실 제공
▲2020년 6월 정보통신망법 32조의5에 따른 국내대리인 지정 현황. 김상희 국회 부의장실 제공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자료 제출이라는 게 사업자에 많이 부담이 돼, 법 위반 혐의가 있을 때 자료 요청한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사업자들이 부담을 가지라고 이 제도를 만들었다”며 “이용자 피해 문제가 수없이 많이 제기되는데도 자료 요청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전기통신사업법에도 관련 제도가 올해 말 시행 예정이고, 국회가 N번방법을 통과시켜 성과 낸 것처럼 얘기했는데 실제로 정부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혐의점이 있을 때 자료 요청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적극 운영할 방법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김 부의장은 넷플릭스가 대리인 지정 대상 사업자 목록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넷플릭스는 국내 사업자로 등록했다”고 답했다. 

김 부의장은 “넷플릭스를 이번 국감에 증인 신청하려 하자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대표 레지날드 숀 톰슨이 해외에 체류한다는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유불리에 따라) 어떨 땐 국내 사업자, 어떨 땐 해외 사업자처럼 행동해 책임을 회피한다”고 말했다.

김 부의장은 “방통위가 해외 통신사업자들에 대해 국회가 법을 제정해도 제대로 운영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시정하려 어렵게 만든 게 대리인 제도”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내 대리인 제도에 대한 말씀에 충분히 공감한다. 적극 제도를 활용하도록 방법을 계속 고민하겠다”며 “넷플릭스의 경우 국내 사업자로 돼 있어 국내법 준수 의무를 진다. 그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적극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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