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최대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가·회계를 조작했다며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22일 시작됐다.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은 통상적 경영 활동을 범죄로 몰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임정엽)는 22일 오후 2시 서관 중법정 311호에서 삼성물산 불법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임직원 11명에 대한 1회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피고인 11명은 모두 불출석했다. 검찰에선 이 사건 공소유지를 맡는 특별공판2팀의 김영철 부장검사를 비롯해 검사 10명이 나왔고, 피고인 측에선 법률 대리인 15여명이 법정에 출석했다. 

방청석엔 기자 40여명과 방청객 22명이 자리했다. 22명 방청객은 지난 21일 법원에서 열린 방청권 공개 응모에서 당첨된 시민들이다. 법원은 이밖에 510호 소법정을 중계법정으로 지정해 방청권 응모에 뽑힌 또다른 시민 17명에게도 방청을 허가했다.

법원은 이 사건 방청 수요가 높은 점을 감안해 “일반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방청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전 추첨제로 방청권을 배부키로 했다. 2017년부터 시작된 뇌물 사건 재판은 선착순으로 운영해 기자, 삼성그룹 관계자, 일반 시민들이 새벽 3~4시경부터 법원 출입구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민중의소리

 

공소 사실에 대한 양측 의견 진술은 다음 재판으로 연기됐다. 다만 이 부회장의 대리인 안정호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기본적인 입장만 밝힌다며 “통상적 경영 활동인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범죄라는 검찰 시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공소 사실도 인정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다음 재판 기일 지정을 두고 대립했다. 검찰은 빠른 시일 내 다음 재판 날짜를 정하고 주 2회씩 재판을 열자고 요청했다. “사회경제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으로 신속한 집중 심리가 필요하며 변호인단이 수사기록도 모두 열람·등사한데다 이 사건 주요 쟁점과 증거를 이미 많이 파악하고 있다”는 이유다. 

삼성 측은 최소 3개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증거기록은 책 368권으로 편철됐고 전체 양이 19만여쪽에 달한다. 또 수사를 받은 조사자만 300명을 넘는다. 변호인단은 “하루 1000쪽을 봐도 며칠이 걸리고, 2000쪽씩 봐도 마찬가지”라며 “수사심의위나 구속 전 피의자신문을 참여했다고 해도 사실관계 일부만 파악한 수준이다. 방대한 기록을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수 분 가량 협의 후 11주 뒤인 내년 1월14일에 오전 10시 2차 공판준비기일을 정했다. 이날 오전엔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발표하고 오후엔 피고인 측이 4시간 가량 자신의 혐의에 대한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이 사건은 11명에 달하는 피의자 수만큼 대리인단 규모도 상당하다. 선임계가 법원에 제출된 변호인만 36명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및 태평양, 화우, 세종 등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선임됐다. 이 부회장을 대리하는 변호사만 18명으로 대부분 복수의 피고인을 대리하고 있다. 이중 태평양의 송우철·권순익·이경환 변호사 등은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 사건도 처음부터 맡아 왔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월1일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다. 핵심 혐의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이다.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전 차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이왕익 전 부사장과 김용관 전 부사장 등 5명과 삼성물산의 최치훈 전 사장, 김신전 사장, 이영호 현 사장 등 3명,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김태한 사장과 김동중 전 재무이사 등 2명도 함께 기소됐다. 

한편 김태한 사장과 김동중 전 재무이사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소속이었던 안중현 부사장과 함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지난 12일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2018년 7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검찰에 고발하자 김태한 사장 등이 ‘부회장 통화결과’ 등 공용폴더에 저장된 2100여 개의 파일 삭제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을 조직적으로 지시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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