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블랙홀의 생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공로로 로저 펜로즈 옥스퍼드대 교수가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블랙홀 연구로는 고 스티븐 호킹 박사나 영화 인터스텔라를 자문한 킵 손 교수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노벨위원회는 로저 펜로즈 교수가 실제로 기여한 바를 인정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일부 학자는 유튜브 등에서 로저 펜로즈 등의 노벨상 연구업적을 조명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카이스트는 21일 오전 ‘2020년 Nobel Prize 수상 업적 해설 강연’을 교내 학부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대면 및 비대면(Zoom)으로 개최했다. 박석재 전 천문연구원장은 유튜브를 통해 로저 펜로즈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송재원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로저 펜로즈의 블랙홀 규명을 두고 초기엔 저명한 물리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조차 반대했다며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특이점’의 존재가 기존 물리힉 법칙에 어긋나며 일반상대성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송 교수는 수학자였던 로저 펜로즈 교수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연구하면 중력붕괴 현상과 사건의지평선 및 특이점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며 “특이점의 생성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결과, 너무나 흔한 현상이라고까지 했다”고 전했다.

송 교수는 “블랙홀 연구가 상상에서 시작했으나 이론적으로, 관측적으로 발견하고 검증에 이르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심리적 장벽과 이론적 한계를 깨야 했고,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져줬다”고 밝혔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지난 6일 노벨물리학상에 절반을 로저 펜로즈 교수에게, 나머지 절반은 레인하드 겐젤과 안드레아 게즈 캘리포니아대 교수에 수여했다. 노벨위원회는 펜로즈 선정 배경을 두고 “블랙홀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증명에 독창적인 수학적 방법을 사용했다”며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의 사망 10년후인 1965년 1월, 로저 펜로즈는 블랙홀이 실제로 형성 될 수 있다고 증명했고, 그것을 상세히 기술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도 블랙홀이 그 심장부에 모든 자연 법칙을 중단시키는 ‘특이점’을 숨긴다면서 펜로즈의 연구가 아인슈타인 이래 일반상대성이론에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로저 펜로즈 교수가 자신의 블랙홀 연구를 어떻게 직접 설명해왔는지를 살펴봤다. 로저 펜로즈 교수는 그의 최신 저서(2018년 11월 출간)인 ‘유행(패션), 신조, 그리고 공상-우주에 관한 새로운 물리학’에서 블랙홀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두고 “1963년에 독일 천문학자 마르텐 슈미트가 최초의 퀘이사 ‘3C 273’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고 썼다. 퀘이사는 강한 전파를 발산하는 전체로, 항성(별)처럼 밝기 때문에 준성(Quasi-stellar Object)이라고도 한다. 펜로즈는 “1964년에 나는 하나의 별 또는 별들의 집합이 중력붕괴를 일으켜 블랙홀로 변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중력붕괴는 천체의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중력과 이를 억제하는 압력의 평형상태가 깨져 폭발적으로 수축하는 현상이다.

펜로즈는 2004년 내놓은 저서 ‘실체에 이르는길’(The Road to Reality, 2004-번역본 2010년 박병철 역)에서는 “블랙홀이란 무엇인가, 거칠게 말하자면 내부로 향하는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우주공간의 한 지역”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탈출속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지구 표면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위쪽으로 던지면 어느정도 오르다 최대 고도에 도달한후 다시 지면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위로 오르려는 돌의 운동에너지와 끌어당기려는 중력에너지의 합이 0이 되는 속도를 탈출속도라고 한다. 인공위성의 경우 이 속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구로 추락하지 않고 지구를 돈다. 블랙홀은 탈출속도(v)를 빛의 속도(c)로 대체했을 때의 중력이 더 큰 전체다. 펜로즈는 “즉, 탈출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뜻”이라며 “이런 천체는 중력이 너무 강해서 가장 빠르다는 빛조차도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해석했다.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펜로즈 옥스포드대 교수 등 3인의 캐리커쳐. 사진=노벨상위원회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펜로즈 옥스포드대 교수 등 3인의 캐리커쳐. 사진=노벨상위원회

 

펜로즈는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탈출속도가 광속보다 빠른 천체가 실제로 존재하며, 이 같은 천체를 블랙홀이라고 한다”며 “무거운 천체의 내부압력이 무자비하게 안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면 블랙홀이 된다”고 썼다.

블랙홀은 크게 사건의 지평선과 특이점으로 구성된다. 펜로즈는 어떤 물질이 중력에 의해 붕괴되어 계속 안으로 들어가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곳에 이르면 탈출속도가 광속과 같아지고, 여기서 붕괴가 더 진행되면 탈출속도는 광속보다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그 중심부에 들어가면 특이점이 존재한다. 특이점은 밀도가 무한대가 되는 지점이다. 펜로즈는 “천체가 중력으로 붕괴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면 이론상 특이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펜로즈는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시공간 특이점은 우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미스터리이며, 지금의 물리학 수준으로는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다”고 썼다.

이밖에도 펜로즈는 블랙홀이 발전소 역할도 한다고 했다. 블랙홀은 회전하는 블랙홀과 정지한 블랙홀로 나뉘는데, 회전하는 블랙홀의 경우 ‘사건의 지평선’ 바깥 영역에 ‘에르고스피어’라는 구역이 있다. 펜로즈는 어떤 에너지(입자)가 에르고스피어 내부로 진입해 둘로 갈라져 하나는 블랙홀로 들어가고 하나는 바깥으로 튕겨나오는데, 바깥에 나오는 에너지는 오히려 에너지가 더 커진다고 썼다. 이를 ‘펜로즈 프로세스’로 부른다. 블랙홀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음의에너지를 취하고 나가는 입자는 양의에너지를 받는다는 이론이다.

이를 두고 박석재 전 천문연구원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유튜브 ‘천문&역사’)에서 펜로즈 프로세스를 두고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얻어낸다는 것”이라며 “블랙홀이 남의 에너지를 빼앗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줄수도 있다는 1969년도의 논문”이라고 소개했다. 박 전 원장은 “펜로즈 프로세스(과정)이 나오니 천체물리학자들은 별이 블랙홀로 들어가다가 쪼개져서 튕겨나오면 에너지를 블랙홀에서 꺼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그러나 별이 광속에 가까워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다만 블랙홀 에너지를 꺼내기는 동역학적으로는 어렵지만 전기역학적으로는 가능하다는 후속연구도 있다”고 덧붙였다.

▲로저 펜로즈의 특이점. 자료이미지=송재원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로저 펜로즈의 특이점. 자료이미지=송재원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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