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는 여행업도, 여기 직원들도 잘 모른다. 지난 4월 말 새로 오자마자 직원들 유급·무급 휴직 동의부터 받았고, 최근 ‘250명 해고’ 계획을 일방 통보했다. 그것도 ‘일주일 내’로 희망퇴직서 내란다. 안 내는 사람은 위로금도 없이 정리해고래서 대부분이 우는 심정으로 퇴직서 썼다. 그런데 ‘대표의 안타까운 심경’이라고?”(NHN여행박사 직원 A씨)

지난 20일 언론은 NHN여행박사 양주일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취중 편지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 사장의 슬픈 심경’처럼 보도했지만 실제 맥락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영진의 일방 정리해고 강행을 미담처럼 포장했단 지적이다.

NHN여행박사 직원 A씨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양주일 대표의 취중 편지를 안타까운 심경을 담아 전한 기사들에 많은 직원들이 황당함을 넘어 분노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일방적인 해고 절차에 분통을 터트렸는데, 언론이 대표의 말만 듣고 상황을 왜곡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20일 양주일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취중 편지'를 보도한 기사.
▲지난 20일 양주일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취중 편지'를 보도한 기사.
▲지난 20일 양주일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취중 편지'를 보도한 기사.
▲지난 20일 양주일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취중 편지'를 보도한 기사.

양주일 대표가 최근 조직장들에게 보낸 편지는 20일 매일경제의 “[단독] ‘그 알량한 돈 때문에’…300명 정리해고 여행박사 사장의 마지막 편지” 기사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매체 13개에 보도됐다. 지난 7일 희망퇴직을 실시한 NHN여행박사는 직원 290명 중 220명 가량이 퇴직서를 썼다.

양 대표는 편지에 “누군가는 모든 게 계획이지 않았냐고 분노하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6개월 전 부임할 때 만해도 좋은 회사 만들어 보겠다는 건 진심이었다”고 적었다. “마음 같아서는 (퇴직 위로금을) 두 달, 세 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원이다.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다”며 “제정신으로는 한 마디도 못할 것 같아 술 좀 마셨다”고도 썼다.

사내 일각에선 양 대표가 ‘구조조정을 위해 모회사에서 내려 온 사람’이라고 소문이 돌았다. 여행업 종사 경험이 없는 NHN 계열사 임원인데다 부임 직후 인사관리 기류가 눈에 띄게 바뀌어서다.

직원들은 이전 경영진으로부터 “(모회사) 임원을 만나고 왔는데 급여 지급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걱정말라”는 말을 들은 터였다. 유급휴직 동안 받는 휴직급여는 평균임금의 70% 이상이고,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여행업계에 휴직급여의 90%까지 지원했다. 즉 여행사는 휴직급여의 10%만 부담하면 됐다. A씨는 “직원들은 당시 경영진의 말을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의지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4월 말 양 대표가 새 대표로 부임했다. 이전 경영진이 새로 추진한 사업이 적자를 내자 4월 경 회사에서 나간 직후다. 양 대표는 여행업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는 모회사 NHN에서 게임제작지원 그룹장과 UIT센터장을 거쳐 계열사 NHN티켓링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음원서비스 자회사 ‘NHN벅스’ 대표이사다.

양 대표는 부임 직후 직원들에게 ‘5월부터 최소 인력만 출근한다’며 휴직을 통보했다. 5월을 3일 앞둔 때였다. 일부 국내 영업팀과 각 팀장을 제외한 전 인원이 대상이었다. 동시에 올해 남은 6개월 동안의 유급휴직 동의서 제출도 요구했다. 직원들은 3일 동안 급히 업무와 짐을 정리하면서 1개월 단위 휴직 동의서 6장에 일일이 서명해 제출했다.

6월23일 유급휴직 2달 째가 되자 회사는 무급휴직 동의서를 또 요구했다. 8월부터 내년 1월까지 6개월 간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며 이틀 내로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회사는 이 경우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평균임금 50%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회사의 직업능력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직원 1인당 10만원이 추가 지급됐다. 직원들은 퇴직을 하더라도 내년 1월까지 상황을 보자며 모두 무급휴직에 동의했고 직업 능력 교육도 참여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지난 7일 희망퇴직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무급휴직 3달 째였다. 제출 기한은 ‘1주일 이내’였다. 기한 내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되며 이 경우 1개월 치 급여인 위로금은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수 직원이 메일과 전화로 본사 측에 문의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연결조차 되지 않아 더 불만이 고조됐다.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중 NHN여행박사 페이지 글 갈무리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중 NHN여행박사 페이지 글 갈무리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중 NHN여행박사 페이지 글 갈무리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중 NHN여행박사 페이지 글 갈무리

 

“1주일 새 200명 잘렸는데... 언론, 누구 말에 방점찍나”

직원들은 현 대표가 고용 유지를 위해 애쓰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반문한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통보하며 ‘6개월 중 3개월만 무급휴직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며 이달 31일까지 지원금 지급을 승인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은 3개월 무급휴직 지원금은 다시 신청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사측은 “경영 여력이 부족한 관계로 부득이하게 신청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A씨는 “왜 희망퇴직 기한 일주일을 앞두고서야 ‘사실 3개월 만 무급휴직 지원금을 승인받았다’고 알려줬느냐”며 “우리가 자필 서명했던 6개월 분의 무급휴직 동의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인지, 일주일 시간을 주며 희망퇴직을 시키는 것까지 모든 게 계획적이었던 건 아닐까”라고 물었다.

정리해고는 이미 7월부터 정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양 대표는 7월 말 조직장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단호하게 회사는 폐업했다 가정하시고 각자 방향을 찾으시면 좋겠다”며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 기간이 1년, 2년 지나 여러분께 연락드리고 다시 모실 때 흔쾌히 손잡아 주신다면 대단히 기쁘겠지만 마냥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는게 정상은 아니겠지요”라고 썼다.

수개월 간의 과정이 직원들과 투명한 논의 없이 일방 추진됐다는 불만도 높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우리 모두 곧 끝내야(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6개월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일주일 만에 220명을 해고한 양 대표를 비판했다.

A씨는 “(취중 편지에) 1억원이 없어서 울고 싶다는 것에 직원들이 코웃음 치게 되는 것은 회사는 서울, 부산 등에 건물을 보유해 임대 수익도 내고, 일본에 소유한 호텔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급휴직 3개월 분을 연장해 줄 운용자금이 없다고 한다”며 “언론은 이런 논리를 그대로 받아써준다”고 꼬집었다.

A씨는 또 “양 대표는 여행박사를 정리하고 벅스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며 “희망 퇴직 통보를 받고 발을 동동 굴리던 직원들 문의에 제대로 답도 하지 않은 회사다. 사적 감정이 담긴 메일을 조직장에게 보낼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실관계가 어떻고 과정이 어땠는지 직원들에게 알려주면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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