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좌표 찍기’가 잇달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택 앞 출근길을 취재하는 사진 기자의 얼굴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일이 발단이다.

추미애 장관이 사진을 올리자 언론의 비판 보도가 이어졌다. 16일 “취재한다며 출근 방해 기자 사진 찍어 SNS에 올린 추미애”(국민일보) “추미애 ‘집앞 뻗치기 왜 하나’ 기자 얼굴 SNS 올려 논란”(중앙일보) “추미애 ‘취재진 때문에 출근 못하겠다’ 좌표 찍듯 기자 얼굴 찍어 SNS 올렸다”(서울신문) “‘기자가 사생활 침해 선 넘어’ 찰칵...선 넘은 추미애의 좌표찍기”(한국일보) 등 기사가 지면에 나왔다.

같은 날 한국기자협회·한국사진기자협회가 성명을 내고 추미애 장관에게 게시글 삭제와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다음 날 17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성명을 인용해 추미애 장관을 비판했다. 20일 전국언론노조도 성명을 내고 “정치인들은 언론인 개인을 공격하는 잘못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과 요구가 이어졌지만 추미애 장관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

기자는 추미애 장관의 사생활을 침해했나

추미애 장관은 사진 기자의 얼굴을 찍어 올리며 “아파트 앞은 사생활 영역이니 촬영 제한을 협조 바란다는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는데 기자는 그런 것은 모른다고 계속 뻗치기를 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아파트 앞’은 사생활 영역일까.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집 밖이고, 출근을 직접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서 취재가 이뤄졌다”며 “아파트 앞이 특정 개인의 사생활 공간이 아닌 만큼 이 정도 취재하는 걸 두고 사생활 침해를 주장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언론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사생활 침해인지 판단하려면 장소 외에도 당사자의 위치와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니 공인의 성격이 가장 강한 그룹에 해당해, 사생활이라도 공개 가능한 영역이 많다. 자신의 차를 타고 여행을 가려는 모습을 찍었다면 비교적 취재의 공공성이 약해질 수 있지만 관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상황은 사생활 요소보다는 공공성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윤석열 검찰총장 자택 지하주차장에 출입한 서울의소리 취재진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실과 비교한다. 서울의소리 역시 공인에 대한 취재 정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인데, 건물 관리인을 속이고 건물 내 주차장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추미애 장관 사례와 단순 비교하기에는 차이가 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기자 실명 걸었으니 ‘좌표 찍기’ 괜찮다?

정치인의 이른바 ‘기자 좌표 찍기’는 앞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7일자 1면에 “정치인에게 좌표 찍히는 기자들” 기사를 내고 이재정·정청래·홍익표 등 여당 정치인이 기자의 이름을 거론하며 지지자들의 비판을 유도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도 이후 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씨는 “기자만 좌표를 찍을 수 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좌표 찍기’를 일방적 보도에 대한 ‘방어권 행사’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봉우 미디어 활동가는 추미애 장관 사례와 이재정 의원 사례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찍어 올린 추미애 장관의 행동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이재정 의원의 사례는 자신에 대한 보도가 부당해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재정 의원은 자신을 향한 보도가 왜곡됐다고 지적하며 기자를 실명 비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사견임을 전제하고 “‘좌표 찍기’가 누구에 의해서 일어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특정 기자가 악의적인 보도를 계속해 시민이 개선을 요구하는 거라면 소비자 운동 차원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공론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 장관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건 다른 문제다. 이 상황에서는 기자가 약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자를 어떻게 볼지도 논쟁거리다. 공인인 추미애 장관에 대한 취재가 가능했던 것처럼, 역시 공인으로 볼 수 있는 기자에 대해서도 추 장관의 촬영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봉우 활동가는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이름과 소속이 공개된 준공인에 가깝다. 이를 감안하면 이름을 공개하는 정도를 ‘좌표 찍기’라고 규정하는 건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언론법에 밝은 변호사는 “기자 가운데 방송에 자주 나오는 등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 공인으로 본 판례가 있다”며 “달리 말해 단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공인으로 보지는 않는다. 기자들이 몰려있거나 누군가를 둘러싸는 모습 등 취재 양상에 대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기자 개개인을 언급하거나 사진을 찍는 건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장관의 출근길 보도, 꼭 필요했나 

장관 집 앞 출근길이 보도 가치가 있는지도 논쟁거리다. 이와 관련 심석태 교수는 “(출근길 취재가)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며 “취재는 기본적으로 자유의 영역이고, 사진은 우연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석태 교수는 “찍어도 되는 것과 찍어선 안 되는 것을 정하고, 취재를 해야 하는 사람이 취재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언론을 공격하는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언론이 취재에 나설 때마다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언론통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최순실 게이트 당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앞에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취재한 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언론노조는 20일 성명에서 “일부 언론이 유력 정치인이라고 해서 출근길 또는 자택 앞에서 사회적 이슈와는 거리가 먼 사생활 영역의 질문이나 신변잡기식 무차별 취재를 관행으로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기보다는 편견을 조장하고 낙인찍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 2016년 새누리당 공천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대구시 동구 용계동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 자택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 2016년 새누리당 공천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대구시 동구 용계동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 자택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기하던 취재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도배업자 차량을 보고 진열을 정비하고 있다.사진=손가영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기하던 취재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도배업자 차량을 보고 진열을 정비하고 있다.사진=손가영 기자.

16일 한국기자협회·한국사진기자협회가 발표한 성명과 20일 언론노조가 발표한 성명 모두 추미애 장관의 이른바 ‘좌표 찍기’ 행위를 비판했지만 언론노조 성명에는 언론 보도 관행에 대한 지적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언론노조는 성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봉우 미디어 활동가는 “집 앞에서 뻗치기 취재를 하는 것 자체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조국 장관, 윤미향 의원, 추미애 장관 이슈가 이어지면서 기자들이 집 앞 취재를 통해 생산하는 기사가 의미 있냐는 지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추미애 장관의 행동이 옳다는 게 아니라 기자 사회가 아무런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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