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지역방송이 위기라고 말한다. 누구나 어디서든 말한다. ‘남북은 통일되어야 한다’, ‘환경훼손이 심각하다’라는 말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들어온 말이다. 종편이 등장할 즈음엔 오히려 피부에 확 와닿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들이 말하는 위기감은 점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왜일까.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당사자가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기라 말하면서도 위기관리는 말에 그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미디어 환경 변화로 광고가 급감한 것만이 지역방송 위기의 전부일까. 지역방송, 그것도 지상파 방송의 역할이나 지역민과의 소통 부족에서 오는 위기는 그보다 훨씬 위험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지역방송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사라져도 되는 것일까. 참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역방송이란 무엇인가. 지역에 있으면 지역방송인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곳에 있는 방송은 지역방송인가. 지역방송 정책입안자나 지역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부터 대답해 보자. 필자가 교육 현장이나 집담회 자리에서 만난 시민은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지역민이 우리의 방송이라 여길 수 있는 방송이 지역방송이다. 지역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어야 지역방송이다. 조금이 아니라 듬뿍임을 강조하였다. 나의 출근길 정보와 내가 사는 지역의 날씨가 충분히 나와야 지역방송이다. 우리 동네 맛집과 우리 지역 인물을 소개해야 지역방송이다. 얼마나 선명하고 명쾌한 정의인가. 정책입안자나 경영진이 두부판에 두부 자르듯이 권역을 나눠 놓은 것이 지역방송은 아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대로 모름지기 지역방송은 생활·문화·정치 공동체이다. 지역민이 유용하다 느끼는 정보와 공감하는 문화가 담겨 있어야 지역방송이다.

지역민의 정의대로라면 지역방송은 공공재이다. “맑은 공기, 안전한 거리, 좋은 학교 그리고 공공 보건 만큼 핵심적인 공공재”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공공재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면 늘 해오던 방식 이상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우선, 지역민을 직접 만나보자. 방송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형식적 만남이 아니라 지역방송을 구하기 위한 진솔한 만남 말이다. 여러 계층을 골고루 만난다면 더욱 좋겠다. 생각지도 못한 묘책을 발견하거나 당장 제작할 만한 아이템도 얻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곧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이 적시한 “지역사회의 공론의 장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지방자치의 실현,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역사회의 통합 및 지역문화의 전승과 창달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핵심 역할을 구현하는 일일 테다. 지역 정보의 생산도, 생산된 정보의 유통도 실존하는 지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부산MBC에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시도가 있다. 지역민이 참여하는 방송이 그것이다. 오는 10월29일이면 15주년을 맞는 <라디오 시민세상>은 단연 돋보인다. <라디오 시민세상>은 지역 시민사회와 미디어 활동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부산MBC가 협업하여 만드는 시민 중심의 방송이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시민이 하고, 부산MBC는 지원과 송출을 담당한다. 15년 동안 매주 부산지역 곳곳에서 발생한 사건, 행사, 그리고 시민의 삶을 방송했다. 지역 소규모 사업장의 파업 소식,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당사자 발언,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살이, 부산시와 기초단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날카로운 비판과 제언, 척박한 토양에서도 민들레처럼 피어난 인디 문화 소개, 크고 작은 지역 축제와 행사 안내가 라디오 방송으로 채워졌다. 방송에 참여한 시민은 지역방송의 소중함을 느끼며 대부분 응원의 말씀을 남겨 주었다.

▲ 부산MBC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빅벙커’
▲ 부산MBC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빅벙커’

올해 새롭게 선보인 TV의 ‘우리동네 톡톡’도 주목할 만하다. 시민기자가 찍고 취재한 사진과 동영상을 부산MBC의 SNS에 모으고 담당 작가와 피디가 기술 지원으로 완성해 방송한다. 무엇보다 지역민의 눈에 비친 부산을 소개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 또 부산지역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빅벙커>에는 지역 이슈를 꿰뚫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가와 전문가가 자문하고 직접 출연도 한다. 평소 지역 문제를 연구하고 실천 활동을 해온 만큼 실용적 해법과 사이다 발언이 눈에 띈다. 지난 여름 부산을 강타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시민의 밤과 새벽을 공포로 몰아넣을 때 유튜브 방송으로 제보를 받고 소통했던 실험도 대단했다. 지역의 재난 방송이 어떠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하는 신선한 시도였다. 이러한 부산MBC의 작지만 과감한 노력은 사라져가던 지역방송이란 네 글자를 지역민의 마음에 불러왔다.

지역방송의 위기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는 없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노력이 쌓이고 겹쳐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뭐라도 해보자. 모두가 예언했듯 가만히 있으면 망할 일만 남았으니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거다. 아니, 잘할 수 있었는데, 안 했거나 미뤘던 일부터 하자. 지금까지 나온 지역방송 구출 방법은 법제도 개선으로 공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스스로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방송사가 되는 것뿐이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지역방송사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드러낼 때만이 실현가능하다. 언젠가 지역방송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더라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할 지역민의 마음은 미리 모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지역민을 믿고 그들 가까이 다가가라. 답은 거기에 있다.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 사진=금준경 기자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 사진=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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