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만 봐서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라임자산운용의 전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이 지난 8일 법정에서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줬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 이후 김봉현이란 인물은 연일 지면에 등장했다.

다음날인 9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현 정권의 ‘펀드 게이트’로 사건을 규정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5000억원대 고객 예탁금 환매 중단 사태를 야기한 옵티머스 펀드 사기꾼들이 지난 5월 작성한 내부 문건에 “소송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및 정부관계자들과 회사가 직간접으로 연결됐다. (금감원 조사를 막지 못하면) 권력형 게이트 사건화가 우려된다”는 부분을 인용했다. 

▲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 12일자 조선일보 사설

 

또한 조선일보는 검찰이 확보한 또 다른 문건에 20여명의 정관계 인사 실명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 “펀드 관계자들이 말하는 ‘프로젝트 수익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권력형 게이트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썼다. 10일 사설에선 ‘강기정 5000만원’ 발언에 대해 “라임 펀드 전주 김봉현씨는 오래전부터 검찰에서 똑같은 진술을 했다고 한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12일 사설 “펀드 게이트, 돈 안 줬다면 왜 줬다 진술하겠나”에서 “형사처벌을 각오하고 주지도 않은 돈을 줬다고 거짓 진술할 이유가 있을까”라며 김 전 회장의 발언을 기정사실화했다. 

▲ 1조6천억원대 피해액이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전주(錢主)이자 정관계 로비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4월26일 오후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1조6천억원대 피해액이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전주(錢主)이자 정관계 로비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4월26일 오후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15일엔 김 전 회장이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인용하며 그가 “민정·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고 단독보도 하는 등 김 전 회장 주장을 충실하게 옮겼고, 이를 근거로 같은날 “靑 민정수석실이 비리 소굴인 나라”를 사설 제목으로 뽑았다. 

김 전 회장의 발언을 신뢰할 경우 정부·여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반면 강기정 전 수석은 김 전 회장을 “질 나쁜 사기꾼”이라고 하거나 이 사안을 “김봉현씨의 사기와 조선일보의 장난”이라고 했다. 

16일 김 전 회장의 옥중입장문(옥중서신)이 알려지면서 김봉현의 수식어가 뒤바뀌었다. 김 전 회장이 서울신문에 제공한 옥중입장문을 보면 그는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정치인 등에도 돈을 건넸는데 여당 쪽 인사의 수사만 진행 중이라고 했다. 윤 총장의 편향수사 의혹, 야권도 ‘펀드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황이 나온 것이다. 

19일 조선일보는 사설 “펀드 사기꾼의 이상한 폭로, 정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또 시작”에서 김 전 회장이 ‘민정·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라고 한 문자를 근거로 “정권 비호를 받고 있음을 과시하던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회장을 사기꾼으로 표현하며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또한 이 신문은 김 전 회장이 “검찰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한 것을 두고 “추미애 장관과 여권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을 펀드 사기꾼이 똑같이 한다”고 비판했다. 

옥중입장문 공개로 여야 공수가 전환된 모양새다. 강 전 수석은 김 전 회장을 사기꾼 취급하다가 입장문 공개 이후 “이번 사건은 김봉현의 사기 사건이 아니라 검찰 게이트”라고 입장을 바꿨다. 조선일보는 강 전 수석이 이처럼 말을 바꾼 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지만 자신들 역시 김 전 회장의 말에 신뢰감을 부여하다가 정권과 연결된 사기꾼이라고 관점을 바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19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김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100% 믿을 수는 없겠지만 시기와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며 “신빙성이 상당히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옥중입장문 이후 여권에서 윤 총장과 야권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김 전 회장의 주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16일 옥중입장문이 공개와 관계없이 김 전 회장은 금융사를 활용한 대규모 사기범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발언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피해자들이 지켜봐야 했다. 또한 정쟁의 도구로 김 전 회장 주장을 이용하는 바람에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다수 국민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는 중에 정작 피해자들을 어떻게 구제하고 앞으로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할지 고민할 시간을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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