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채널A가 2014년 어린이 탈북민 신혁이의 지난날 상처를 짚어본다는 취지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신혁이가 북한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마당에서 3년 동안 혼자 생활하며 고통 받는 모습이 조명된다.

현재 신혁이가 생활하고 있는 탈북아동공동체우리집의 마석훈 시설장은 “북한은 이 불쌍한 아이를 못 먹여서 거리를 헤매게 만드는 나쁜 놈들이라는 내용”이라며 “신혁이한테 ‘너 거기서 어떻게 3년 동안 살았냐’고 물어봤다. 배고파서 장마당에 갈 때마다 인민들이 불쌍하다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렇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북한 국가체계는 망가졌을지 몰라도 인민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언론인권센터가 16일 온라인 중계를 통해 진행한 ‘남북평화를 위한 저널리즘의 방향’에서 마석훈 시설장은 언론이 탈북민을 대하는 방식을 비판했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 채널A 화면 갈무리.

마석훈 시설장은 “언론이 탈북자들에게 질문하는 걸 보면 얼마나 고통 받았고, 탈북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고, 남한에 오니 무엇이 좋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하니 답이 그렇게 나온다”며 “북조선에서는 무엇을 하고 노는지, 봄에는 무슨 꽃이 피는지 질문하는 언론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표자료를 통해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이 탈북민을 ‘체제우위 홍보’ ‘대북적대 활동’에 활용한 점을 지적한 뒤 “진보는 어떤가. 임수경 의원이 ‘배신자’ 발언을 했지 않나. 진보라는 그룹은 탈북자 문제를 숨기고 외면했다.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석훈 시설장은 진보 언론이 신은미씨와 브로커에 속아 한국에 와 귀국을 요구하는 평양시민 김련희씨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점을 지적했다. “모든 진보단체와 언론이 김련희 선생님을 통해서 목소리 전달하는 모습도 보기 안 좋다. 김련희, 신은미 선생님도 훌륭한 역할을 하시지만 다양한 분들이 있지 않나.”

유튜브 채널 ‘왈가왈북’ 진행자인 탈북자 홍강철씨와 평양시민 김련희씨는 주로 보수 언론을 비판했다. 홍강철씨는 “남한 언론을 믿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까지 인터뷰 많이 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 자신이 공모하는 세력에 유리한 말만 쓴다. 그렇지 않으면 기사 안 내보낸다. 북한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탈북민 홍강철씨. 사진=언론인권센터 웨비나 캡처.
▲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탈북민 홍강철씨. 사진=언론인권센터 웨비나 캡처.

‘평양 시민’ 김련희씨도 “9년 전 한국에 와서 가장 안타까운 게 언론이었다”며 “남과 북은 7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서로가 상대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우리는 항상 북한이라고 하면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북은 무조건 나쁜 놈, 죽일 놈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게 안타웠다”고 했다.

허찬행 미디어인권연구소 공동대표는 탈북민 월북 관련 보도를 분석해 △ 갈등 부추기는 추측성 보도 △ 제도적 관점이 아닌 개인적 문제 중심 보도 △ 사실확인에 충실하지 못한 자극적 보도 △ 관리 대상으로서의 탈북민, 제도의 문제제기 부족 문제 등을 지적했다.

탈북민, 나아가 제대로 된 북한 보도를 위해 ‘상호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마석훈 시설장은 “이름부터 바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세상에 ‘남조선’이 없 듯이 ‘북한’은 없다. 우리는 북한을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있다. ‘남한’과 ‘북조선’처럼 상대방을 인정하는 이름부터 부르는 방식부터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 마석훈 시설장의 발표. 그는 탈북민 어린이가 그린 통일 포스터를 보여주며 그들은 흡수통일이 아닌 '대등한 통일'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 마석훈 시설장의 발표. 그는 탈북민 어린이가 그린 통일 포스터를 보여주며 그들은 흡수통일이 아닌 '대등한 통일'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홍강철씨는 대북전단에 반발하는 북한 민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삐라 반대하면 빨갱이로 매도하는데 수령과 당과 대중을 혼연일체,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김정은은 돼지야’ ‘김일성은 가짜야’라는 삐라를 보내면 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남한에서도 특정 대통령 지지자 앞에서 그 대통령을 비판하면 안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언론의 성향을 떠나 ‘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분단기에 서독 동독이 서로 긍정적 보도만 한 건 아니지만 서독에선 통일을 위해 어떤 보도를 해야 하는지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며 “가장 보수적인 신문 중 하나인 빌트도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정치에서 이익을 찾기 위해 미래를 끌어와서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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