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도공, 사장 김진숙)가 최근 직접고용한 노동자들(기존 비정규직)과 갈등을 사전에 예상하고 징계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징계 근거를 확보하고, 경징계부터 단계적으로 징계 수위를 조절하는 등 구체적으로 징계를 대비한 문건이 나왔다. 실제 도공은 직고용 노동자 중 60명을 징계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의 원래 업무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을 위해 만든 도공 자회사에선 다시 비정규직 750여명을 채용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이들이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도공에서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도공은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만들어 이 회사 소속 노동자들에게 톨게이트 업무를 맡겼고, 본사에 직접고용한 노동자들에겐 청소·민원 등 다른 업무(현장지원직)를 부여했다. 

▲ 지난해 9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모습. 사진=한국도로공사 제공 영상 갈무리
▲ 지난해 9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모습. 사진=한국도로공사 제공 영상 갈무리

 

대법 판결 이후 노동자들은 경북 김천 도공 본사 등에서 농성을 하며 판결 취지대로 본사에 직고용해 톨게이트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도공은 톨게이트 노동자 약 6500명 중 1400여명을 본사 현장지원직으로 직고용했고 나머지 인력은 자회사로 갔다. 법원 판결과 달리 환경미화 등 업무를 맡기면서 본사 직고용 노동자들의 불만은 직고용 시점부터 내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공(미래전략처)에서 받아 공개한 ‘2020년 현장지원직 운영 및 관리방안(2020.4.)’ 자료를 보면 해당 문건은 현장지원직(직고용 노동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신규업무를 발굴하고 갈등관리를 통해 조기 안정화를 추진하기 위해 작성했다. 이에 TF를 만들고 내놓은 개선방향에서 “업무지시 불이행 직원 관리방안 마련”을 언급했다.

▲ 한국도로공사 내부 문건. 도공은 직고용 노동자들이 업무지시에 불이행할 것이라는 걸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자료=박영순 의원실
▲ 한국도로공사 내부 문건. 도공은 직고용 노동자들이 업무지시에 불이행할 것이라는 걸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자료=박영순 의원실

 

박 의원이 공개한 ‘업무지시 불이행 직원 관리방안’이란 문건을 보면 도공은 본사 직고용이 완료된 올 상반기에 이미 직고용한 노동자들이 특정업무 지시에 거부할 것을 예견했다. 노동자들은 도공에 신규직무 발굴과 위험업무 배제 등을 요구했다.

해당 문건을 보면 도공은 ‘현황·문제점’으로 “청소 등 특정업무 지시 거부”, “작업지시 거부로 인한 업무공백 및 직원 간 갈등 발생”을 이미 파악했다. 대응방안에는 징계절차가 자세하게 나왔다. 징계근거로는 ‘지시거부’, ‘불완전한 노무제공’ 등을 꼽았다. 작업지시를 거부할 경우, 어떻게 복귀명령을 내릴 것인지, 징계를 위한 근거자료를 어떻게 남길 것인지 안내했다.

▲ 한국도로공사 내부 문건. 직고용 노동자들이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떻게 징계근거를 확보할지, 구두와 문자로 몇회 서면으로 몇회 명령을 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중징계보단 경징계부터 단계적 실시하라는 내용도 있다. 자료=박영순 의원실
▲ 한국도로공사 내부 문건. 직고용 노동자들이 업무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떻게 징계근거를 확보할지, 구두와 문자로 몇회 서면으로 몇회 명령을 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중징계보단 경징계부터 단계적 실시하라는 내용도 있다. 자료=박영순 의원실
▲ 한국도로공사 인사위원회 개최 결과. 자료=박영순 의원실
▲ 한국도로공사 인사위원회 개최 결과. 자료=박영순 의원실

 

박 의원이 공개한 도공 징계현황을 보면 도공은 지난 5월부터 화장실 청소를 거부한 현장지원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인사위원회를 열고 43명을 감봉, 17명 견책 등 60명을 징계했다. 

이와 관련 지난 12일 국회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이들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징계받은 내용이 지적됐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현장지원직 직고용으로 일반직원들 불만이 커졌고, 현장지원직 인건비가 한해 454억원 이상 소요될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정규직 전환 목적은 고용안정성과 근무환경의 개선이 목적이지만 도공 측의 고용 부담은 높아지고 노동자는 더 나빠진 환경에서 근무하게 됐다”며 “무분별한 정규직 전환으로 노노, 노사갈등만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다수 매체가 이를 전하며 ‘정규직 전환했더니 무단이탈했다’는 내용을 강조해 보도했다. 

대법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고용 판결, 이를 무시한 도공의 자회사 전환 정책, 올 상반기부터 징계를 위해 근거자료를 수집해 온 도공의 문제점 등이 빠진 반쪽짜리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과거 도공 소속 정규직이었지만 외주화로 용역업체에 밀려났다가 대법 판결로 원래 위치를 확인했을 뿐이다. 

게다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를 위해 만든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지난 8월 기준 ‘기간제 대체인력’ 748명을 채용했다. 정규직화를 위해 만든 자회사에 비정규직을 뽑은 것이다. 출범 1년밖에 안 된 자회사에 비정규직을 뽑은 사실은 도공과 자회사가 인력운영에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현장지원직들이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를 요구하고 갈등을 야기하는데 자회사에서 부족한 수납원으로 전적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 근본적 해결방안이 있느냐’는 박 의원 질문에 도공 측은 “향후 자회사 경영여건 고려하에 자회사 전환을 검토하겠다”며 “현재 수행중인 고속도로 환경정비 업무 외 지속적으로 신규 직무를 발굴해 현장지원직의 직무만족도를 높이겠다”고 답했다. 

이에 박영순 의원은 “정규직 전환은 시대의 요구이자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비점이 대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도공은 요금 수납업무 요구 등 갈등 발생을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다 해당 직원들을 징계했고 자회사는 수납업무 인력을 부족으로 ‘기간제 대체인력’을 뽑은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도공과 자회사의 정책 실정에 따른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노사 상생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의 기조에 맞게 도공은 징계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구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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