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EBS뿐 아니라 지상파3사 계열, 종합편성채널 등에서도 보험업체 영업을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EBS ‘머니톡’이 키움에셋플래너의 보험 영업을 위한 방송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키움에셋플래너 협찬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이 업체 소속 직원들이 전문가로 출연하고, 시청자 재무설계·보험상담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기만적으로 수집해 이를 자사 보험설계사들에게 판매했다.

[관련기사 : EBS ‘머니톡’ 보고 상담했더니 개인정보 팔아 8만원]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 EBS '머니톡' 화면 갈무리.

경제채널·민영방송·지상파 계열 채널서 횡행

키움에셋플래너 내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EBS뿐 아니라 SBSCNBC ‘플랜100세’, KNN ‘머니톡’, TBC ‘행복설계 알짜배기’ 등 재무설계 프로그램에 제휴(협찬)를 맺고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KNN의 경우 EBS ‘머니톡’을 그대로 편성했고, 상담 안내 번호만 달랐다.

FM에셋은 TV조선 등 종편에 방송을 편성했다. TV조선은 지난해 ‘보험사용설명서’를 종영했고, 현재 TV조선2 채널에서 재방송을 하고 있다. 메가 주식회사에서 기획한 ‘120인생 유비무환’은 MBC드라마넷, KBS드라마 채널에서 방영한다. 리치앤코는 SBSCNBC ‘원스톱재무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을 받았다.

▲ TV조선 '보험사용설명서' 화면 갈무리.
▲ TV조선 '보험사용설명서' 화면 갈무리.
▲ KBS드라마, MBC드라마넷에서 편성된 '120 인생 유비무환' 화면 갈무리.
▲ KBS드라마, MBC드라마넷에서 편성된 '120 인생 유비무환' 화면 갈무리.

이들 방송은 여러 보험상품을 비교해 판매하는 보험업체(보험대리점사)가 협찬 계약을 맺고, 상담을 유도해 보험사가 개인정보를 수집해 영업하는 방식이다. 공통적으로 전화 연결 시 보험사 이름이 아닌 방송사 채널 및 프로그램 이름으로 소개한 다음 개인정보 수집 과정에서 업체 이름을 설명했다. 

이들 방송은 협찬을 한 업체의 보험설계사들을 ‘재무전문가’로 출연시켰다. 키움에셋플래너는 자사 보험설계사들을 대상으로 방송 출연 패널 모집을 했고, FM에셋은 보험설계사 안내 페이지를 통해 ‘실적우수자 TV출연 기회 제공’을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방송사가 보험업계 패널들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힘들다”며 “예를 들어 5% 이자가 붙는 연금저축상품 등을 소개하는데 중간 해약 시 받을 불이익 등은 언급하지 않는 식으로 고객에게 보이지 않는 위험요소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 FM에셋 홈페이지 갈무리.
▲ FM에셋 홈페이지 갈무리.

‘양질’의 DB 제공자가 된 방송사

보험업체들이 방송을 통해 영업에 나선 이유는 양질의 개인정보(DB)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TV조선 등에서 프로그램을 내보낸 FM에셋은 보험설계사 채용 홍보 이미지를 통해 “DB를 무료로 원하는 만큼 드린다” “방송을 보고 직접 자발적으로 상담 요청을 하는 양질의 DB” “공신력 있는 방송을 통해 전문상담 컨셉의 DB”라고 홍보했다. 앞서 미디어오늘이 공개한 키움에셋플래너 내부 공지 역시 “우리의 주력인 방송DB 생산을 위해 신규 채널을 런칭하였다” 등의 표현이 있다.

보험업계는 홈쇼핑DB, 광고DB, 방송 프로그램DB, 바이럴마케팅DB, 기사형광고DB 등을 통해 영업한다. 이 가운데 가장 단가가 높은 게 ‘방송 프로그램DB’로 7만~8만 원에 거래되고, 내방 고객의 경우 1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지난해 EBN에 게재된 ‘올댓보험’ 칼럼에는 업계 시각에서 바라본 방송DB의 모습이 드러난다. 칼럼은 “최근 소위 가장 ‘핫’(Hot)한 DB는 방송패널을 활용한 DB다. 재테크를 모토로 한 정규방송을 케이블에 편성하고, 보험 중심의 재무관리 이야기를 진행자와 함께 풀어내면서 실시간으로 재무상담 DB를 받는 형식”이라고 설명하며 “하지만 편성 가능한 채널이 거의 없는 데다가, 제작비와 편성료를 지속적으로 지불할 만한 자본력과 이를 소화할 방송패널 전문 조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 FM에셋의 보험설계사 대상 홍보물.
▲ FM에셋의 보험설계사 대상 홍보물.

칼럼은 보험업체의 방송을 ‘케이블’(유료방송채널)로 전제하고 ‘편성 가능한 채널이 거의 없다’고 밝혔는데 올해 EBS ‘머니톡’ 등 지상파 주요 방송사 프로그램 런칭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방송은 신뢰하게 돼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자발적으로 연락한 사람들은 가입률이 높다”며 “EBS와 같은 공영방송사는 더 높은 신뢰를 받게 된다”고 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EBS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EBS ‘머니톡’을 통해 2만여 건의 상담 신청이 이뤄졌다. 키움에셋플래너 내부 자료 역시 “지상파 방송이 늘어나면서 DB(데이터베이스)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상파 채널 확대는 콘텐츠 신뢰도 측면에서 우수하며 새로운 시장 확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등 ‘지상파’ 프로그램의 효과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문제를 인지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한 곳도 있다. 한 유료방송채널 관계자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심의실 등 내부 의견이 있어 종영했다”고 설명했다. 

상담 안내에 ‘보험사’ 제대로 고지해야

EBS ‘머니톡’은 홈페이지 상담 신청 과정에서 키움에셋플래너에 개인정보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홈플러스에서 경품 응모권을 받으면서 보험사에 개인정보가 넘어간다고 작게 명시하는 식으로 기만적 개인정보 수집을 해 위법 판결을 받은 사건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가 나온 뒤 EBS ‘머니톡’은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상담 신청하기’ 메뉴에 업체 이름을 쓰고 개인정보 수집 화면 상단에 ‘키움에셋플래너’로 개인정보가 넘어간다는 안내문을 띄우고, 하단에 별도 클릭 없이 보이지 않던 약관 본문을 바로 보이게 배치했다.

그러나 EBS ‘머니톡’은 키움에셋플래너의 다른 방송보다 여전히 고지 수준이 약하다. TBC ‘행복설계 알짜배기’는 홈페이지 상단에 ‘키움에셋플래너’ 로고를 눈에 띄게 배치하고 “재무설계는 공식 제휴사인 키움에셋플래너에서 제공”한다는 문구가 있다. 리치앤코 상담으로 연결되는 SBS CNBC의 ‘원스톱재무상담’은 방송 시작 때 ‘방송 내용은 참고할 사항일 뿐이며 해당 보장 내역의 가치 상승 및 하락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안내 문구를 내보낸다. 

▲ TBC와 EBS 홈페이지 사이트 갈무리.  같은 업체에서 협찬한 프로그램이지만 고지 방식에 차이가 컸다.
▲ TBC와 EBS 홈페이지 사이트 갈무리. 같은 업체에서 협찬한 프로그램이지만 고지 방식에 차이가 컸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 개편 전과 후. 이 외에 상담신청 메뉴에도 키움에셋플래너 명칭이 들어가도록 수정됐다.
▲ EBS 머니톡 홈페이지 개편 전과 후. 이 외에 상담신청 메뉴에도 키움에셋플래너 명칭이 들어가도록 수정됐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방송이 보험판촉 도구로 전락했다. 연계편성이 홈쇼핑 판매 도구가 된 것과 비슷하다”며 “보험업체가 특정 업체 보험설계사를 출연시키는 건 방송 편성의 독립권 침해로 볼 수 있다. 정치적 독립 못지않게 경제적인 독립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연우 교수는 “개인정보 제공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인지하지 못한 채 동의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재무상담으로 포장하지만 특정 업체에게만 개인정보가 넘어가는 게 핵심 문제”라며 “패널을 구성할 때 보험업체 소속인 경우 소속을 밝히거나 여러 업체 관계자가 출연하게 하고, 방송 자막 등 상담 안내를 할 때 어느 업체가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점 등을 언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사들이 상담 안내 등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키움에셋플래너는 “보험료는 열심히 내고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바꾸고 싶은 의도가 컸다”며 “방송을 통한 정보제공으로 기존의 관행 속에 있던 분들은 불편하시겠지만, 소비자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신다”고 밝혔다.

키움에셋플래너는 또한 “(유선 기준) 추가 상담을 원할 경우 소속 전문가에게 개인정보가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고 그에 따라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다”고 했다. 보험설계사에게 개인정보 DB를 7만~8만원에 판매하는 데 대해서는 “(보험설계사에게) 마케팅 비용 분담금으로 지급된 것”이라며 “법률 검토상 문제가 없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