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는 약 1750여 명의 기자가 등록돼 있다. 이들 중에는 ‘기자’ 신분으로 국회를 마음대로 출입하다 걸린 삼성전자 상무처럼 대관 업무를 위해 기자증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간부라는 분이 계속 의원실로 찾아왔었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국회에 이렇게 불쑥불쑥 올 수가 있나…그래서 제가 찾아봤거든요? 알아보니깐 삼성 간부라고 했는데 출입 기자로 왔다 갔다 하고 계시더라고요.”(류호정 정의당 의원) 지난 7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로 드러난 ‘삼성 기자’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으로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 32번 공천을 받았던 A씨는 2016년 초 삼성 대외협력팀 대관 담당 상무로 채용됐다. 이후 A씨는 ‘코리아 뉴스 팩토리’에 같은 해 고문 자격으로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국회 출입기자 등록시점은 2016년 6월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해당 매체는 2013년 등록된 인터넷매체로 나온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A상무는 최근 1년간 100차례나 국회의원회관에 드나들었고, 국정감사 전후인 9월~11월 사이 방문이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가열되자 삼성전자는 8일 “부적절한 방법으로 국회를 출입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당 임원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회사는 이를 즉각 수리했다”고 밝혔으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출입기자증 발급제도를 악용한 행위”라며 “삼성전자도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은 기업이 언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기자증은 기업에게 손쉬운 대관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삼성이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 남다른 대관 업무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 실체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최경영 KBS기자는 “삼성전자 임원이면서 국회 출입기자였다. 삼성이 뒤에 있지 않으면 이게 가능했을까”라고 되물으며 “삼성은 (코리아 뉴스 팩토리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입장을 내고 해당 임원을 퇴사시켰다”고 주장했다. 

‘코리아 뉴스 팩토리’는 논란이 불거진 당일(7일) 폐쇄됐다. JTBC는 “코리아 뉴스 팩토리 주소지에는 언론사가 아니라 말고기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삼성전자는 해당 직원이 왜 국회 출입기자로 등록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 10일자 사설에서 “삼성의 전방위적 로비 실태를 고려할 때, 국회뿐 아니라 정부부처 등 다른 공공기관을 대상으로도 조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삼성이 로비를 목적으로 언론사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조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연합뉴스
▲삼성. ⓒ연합뉴스

 

삼성, 기자증으로 흔적 없는 ‘음성적 대관’ 노렸나 

국회 안팎에선 이번 사건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10년 이상 경력의 한 여당 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에서 이런 일은 처음 봤다. 대관의 신세계를 열어 신박하다는 반응도 있다. 아마 다른 기업 대관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해당 보좌관은 “국회는 언론사로 등록하고 기사만 내면 발급을 해주니까 (출입이) 가능한 일”이라고 전하며 “사무처에서 이런 케이스를 솎아내려고 할 텐데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관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하는 경우 보통은 출입 신청서를 쓰고 약속이 있다고 밝힌 뒤 약속한 의원실과 통화를 거쳐 출입약속을 확인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당연히 출입 기록도 남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고, 방문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 방문증을 제출해야 해서 번거롭다. 때문에 과거 대관 담당자들이 주로 활용하던 게 ‘입법보조원’이다. 

입법보조원은 보좌관의 업무를 돕는 보좌진으로, 국회 상시출입이 가능하며 대게 의원실 당 2명을 무급으로 채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암묵적으로 의원실에서 대관 담당자들에게 발급해주면, 담당자들이 발급해준 의원실에 호의를 베푸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입법보조원 특혜문제가 불거졌다. 박순자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관 업무를 보는 아들에게 입법보조원 출입증을 발급했다 드러나며 논란이 불거진 것. 이 사건 이후 입법보조원을 통한 대관 업무는 더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대부분 출입증을 끊고 들어가는데, 장기출입증을 받는 형태로 대관을 이어간 것은 오히려 대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국회 출입증은 크게 상시출입증과 장기출입증, 일시취재증으로 나뉘는데 삼성전자 상무는 장기출입증을 받았다. 상시출입증은 언론사의 공익성과 인지도 등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반면, 장기출입증은 3개월간 월별 10건 이상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확인받으면 발급이 가능하다. 

▲국회 정문 앞. ⓒ연합뉴스.
▲국회 정문 앞. ⓒ연합뉴스.

그러나 출입증 발급을 위해 ‘언론사’를 이용한 행위를 단순히 ‘상당한 노력’으로 평가할 순 없다. 기자증을 갖게 되면 어떤 의원실을 방문했는지 기록이 남지 않는다. 이를 통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음성적인 대관에 나서려 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아직까지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현업단체의 비판 성명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언론계에 남긴 파장도 적지 않다. 당장 이 같은 행위가 이어져도 의원실에서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한 적발이 어렵고, 대관을 위해 언론사를 만들어 기자증을 발급받는 일도 여전히 합법적으로 가능해서다. 

국회 사무처는 향후 진상규명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삼성전자에 법적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 출입 기자 제도를 악용하는 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언론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개선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언론환경개선자문위를 열어 후속 대책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사무처는 앞서 지난 7월 장기출입등록기준을 강화한 바 있으며 13일에는 출입증 갱신 절차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상시배정되지 않은 언론사를 추려 출입 내역이나 기사 작성 건수 등을 통해 ‘이상 패턴’을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한다고 해도 당사자에게 직접 대관이냐고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하면서 “현재 점검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사 등록제 폐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인터넷매체와 종이신문의 경우 언론을 통제하는 나라를 제외하면 등록도 안 하고 허가도 안 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라며 “언론사 브랜드는 이용자로부터 판단 받는 게 맞다. 등록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등록제를 악용해 쉽게 ‘언론 행세’ 하는 곳을 막으려면 뉴스 이용자로부터 인정받는 곳을 위주로, 기사를 열심히 쓰는 곳을 기준으로 출입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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