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중요한 이슈를 외면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정보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0월12일,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가 다룬 다양한 이슈 중 공론화가 필요하지만, 보도되지 않은 이슈 두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1. 8번째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지난 10월8일 서울 강북구에서 CJ대한통운 소속으로 일하던 택배노동자 김 씨가 배송작업 중 숨졌습니다. 과로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는 올해만 8명 째입니다. 김 씨는 배송에 나선 지 1시간여 만에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자신의 택배 차량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김 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사망했습니다.

대다수 신문, 택배노동자 과로사 외면

올해만 여덟 번째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지만, 10월12일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중 이 소식을 전한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었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1면에 택배노동자 사망 소식을 배치했고, 한겨레는 사설에도 사망사고를 언급했습니다. 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 10월12일 ‘8번째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신문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0월12일 ‘8번째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신문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문제 본질 짚고, 제도개선 촉구한 경향‧한겨레

이날 8번째 택배노동자 사망사고를 다룬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했습니다. 경향신문 <숨돌릴 틈 없는 ‘택배 과로사회’ 40대 노동자 배송 중 또 숨졌다>(정대연 기자)는 “택배노동자들은 올해 들어 과로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노조가 요구하는 핵심 대책은 분류작업에 대한 택배사의 인력투입”이라며 노조의 핵심 요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겨레 <올해만 8명째… 또 숨진 택배노동자>(배지현 기자)는 “가족과 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지병이 없는 건강한 택배노동자였다”, “코로나19발생 뒤 30% 가까이 늘어난 택배 물량 때문에 거의 매일 1시간 안팎의 추가 근무를 한데다 ‘대목’인 추석 전후엔 가족을 부양하려 상품 분류작업까지 도맡았다고 한다”며 김 씨가 가혹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사설-잇단 ‘택배 과로사’, 정부·업계 대책 너무 더디다>에서 “무엇보다 택배회사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인력을 충원해 이른바 ‘공짜노동’으로 일컬어지는 분류작업의 부담이라도 우선 줄여줘야 한다”, “국회에 제출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의 본회의 통과도 절실하다”며 사설까지 할애해 정부와 업계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공통으로 지적한 ‘무임금 분류작업’은 그간 수차례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운전노동자와 분류노동자를 구분해 문제를 해결하고, 택배노동자의 가혹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20대 국회에서 지난해 8월 발의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택배업계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을 반대한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들 주장으로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재발의된 만큼 문제해결을 위한 언론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2. ‘장충기 문자’에 등장한 판사 언론전담 재판부 복귀

2018년 사회 각계 인사가 당시 삼성전자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돼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뉴스타파 <‘삼성 홍보했다’ 생색낸 고위법관이 이부진 소송 맡아>(2018년 4월23일)에 따르면 강민구 부장판사도 장충기 사장에게 문자를 보낸 인물입니다.

강 판사는 2016년 장 사장에게 새해인사와 함께 “오늘 이마트 장을 보는데 삼성페이가 정책상 막혀 있다 합니다. 뿌리가 같았던 이마트가 이러니 참으로 답답합니다”라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뉴스타파의 이건희 회장 성매매 영상 폭로 사흘 뒤 강 판사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는 양생법, 오래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내용이 담긴 칼럼을 장 사장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본인 동생의 인사를 청탁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자 내용도 확인됐습니다.

결국 뉴스타파 보도로 강 판사가 장 사장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 공개되자 대법원은 강 판사가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삼성그룹 차녀 이부진 씨의 이혼소송을 맡을 수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장 사장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이해충돌 가능성을 고려한 것입니다.

언론 이해충돌 우려에도 한겨레만 지적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올해 초부터 6개월 동안의 연구기간을 마치고 서울고법 민사13부로 복귀했습니다. 민사13부는 언론관련 항소심 재판을 총괄하는 곳입니다. 언론의 폭로로 장충기 당시 삼성전자 사장과의 문자가 공개된 강 판사가 언론관련 재판을 총괄하는 자리에 배치된 것입니다. 지금 민사13부에는 MBC <PD수첩> ‘고 장자연’ 편을 상대로 한 조선일보 소송을 비롯해 뉴스앤조이를 상대로 한 에스더기도운동본부의 소송 등 주요한 언론소송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강 부장판사가 연관된 ‘장충기 문자’를 비판한 MBC <스트레이트>와 관련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민사13부에 올라가 있습니다. 2018년 6월3일 방영된 <네이버 삼성만 나오면 왜?>입니다. 미디어오늘은 <MBC가 비판한 ‘장충기 문자’ 판사, MBC 소송 재판?>(9월18일 정철운 기자)를 통해 “MBC에서는 ‘스트레이트’에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리 없는 강민구 판사가 재판에 나서는 것이어서 기피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판단에 따라 이해당사자가 될 소지도 있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습니다.

이런 지적은 10월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등장했습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서울고법 민사13부로 배치된 강민구 판사 문제를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도,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도 강 판사의 언론전담 부서 배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는데, 이 내용을 다룬 신문은 한겨레뿐이었습니다.

▲ 10월12일 ‘강민구 부장판사 언론전담 재판부 복귀’ 신문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0월12일 ‘강민구 부장판사 언론전담 재판부 복귀’ 신문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한겨레는 <‘장충기 문자’로 언론 비판받은 그 판사, 언론전담 재판부 맡아>(10월12일 장예지 기자)에서 “강 부장판사는 언론전담 재판부로 부임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 8월7일에는 <문화방송>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 비판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며 이해충돌 가능성을 따졌습니다. 이어 “그 자체로 이해충돌이 되는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의 국정감사 발언을 두고 “대법원은 강 부장판사의 복귀와 언론사건 전담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이번 경우처럼 언론 보도로 비판을 받던 당사자가 해당 언론사 사건을 맡게 됐을 때 이해충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은 아직 없다”며 법원의 미흡한 문제의식과 제도적 미비도 언급했습니다.

최근 언론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과 공직자 및 그 가족들의 다양한 이해충돌 논란을 화두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민구 판사의 사례처럼 정작 언론과 관련된 중요한 이해충돌 문제는 대부분 신문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언론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이행충돌 문제만 천착할 게 아니라 언론사건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법관의 이해충돌 문제부터 깊이 들여다볼 일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10월1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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